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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녹
why

아늑한 풍경의 중첩 위로 쌓는 그리움

잘 살아낸 하루의 끝, 포근한 이불 위로 몸에 힘을 빼고 쓰러지듯 눕는 행복. 그런 행복으로 온 맘과 몸을 가득 채워야 할 때가 있다. 마음과 다리에 애써 주었던 힘이 풀려 자리에 푹 주저앉고 싶을 때, 햇볕 아래 바싹 마른 이불처럼 온 맘과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곳 혹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이 그리움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로 이어지고 모두가 알고 있으나 자신만을 위한 어딘가에서 또 다른 그리움을 한 겹 쌓아가게 만든다. 힘을 내 내딛는 걸음의 먹이, '추억'을 쌓는다. 매일을 잘 살아내기 위해. 모두가 다 아는 제주의 바닷가 옆 작은 골목, 계단 몇 개를 내려가 안착한 낮은 제주 돌집. 옛집의 태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에 쌓인 오랜 세월의 그리움 위로,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저마다의 그리움을 다시금 쌓아가는 장소가 있다.

제주의 돌과 물, 불과 향이 겹겹이 쌓여 있는 '아녹'. 아녹은 아늑하다는 제주 방언이다. 아늑한 풍경이 중첩된 이곳에서는 저마다 아늑한 그리움을 쌓는다. 자연의 재료와 세월에 포근하게 감싸 안긴 채 그리움이라는 추억을 쌓는다. 그리움으로 남은 추억은 곧 힘이 된다. 일상이라는 비슷비슷한 나날의 여행, 그러면서도 내일을 알 수 없기에 피어나는 두려움과 불안의 매일이라는 여행을 향해 느긋한 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힘 말이다.
people

자연의 원초성에 귀를 기울이며 옛것과 새것을 잇다

공간을 기반으로 토털 디자인을 추구하는 지랩은 최근 각광받는 스테이 형식의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만들어왔다. 공간이 곧 경험이 되는 작업을 이어가며, 프로젝트가 위치한 동네와 지역의 특성, 규모 등 지역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공간이 공간으로 존재하기보다 지역과 유기적인 연결을 이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내게 만드는 작업이다. 아녹 역시 그런 고민을 기저에 두었다. 쓰러져 가던 기존 건물을 마주한 첫 순간부터, 기획하고 설계하며 이름을 짓고 경험과 콘텐츠를 넣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귀덕리라는 제주 서쪽 바다 마을의 지역성을 고민하며 아녹이 가진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유형으로 풀어낼 원재료의 물성을 찾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제주 자연이 건네는 원초적인 이야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며 살려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의 기준, 그 경계를 신중하게 가르고 옛것과 새것을 매끄럽게 연결했다. 이후 아녹에 머물며 아녹함을 경험할 이들이 그다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도록.

location

아녹함을 보호해주는 낮고 포근한 땅

생소한 이름을 가진 귀덕리.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는 대부분 평평하고 고른 땅으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제주 서쪽 바다에 인접한 이곳은 밭담, 즉 현무암을 이용해 밭의 가장자리에 낮게 쌓은 담길이 이어져 제주의 독특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이곳의 담은 잣담으로, 담과 담 사이, 밭과 밭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작은 돌을 무리로 쌓아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독특한 형태를 만든 것이다. 밭담이 많은 길목과 연결된 진질길에 아녹이 위치해 있는데, 이 진질길은 중산간 마을에서 물질하러 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육지와 바다를 이어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작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밭담이나 잣담으로 인해 큰 돌 위주의 올레길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밭담의 마을 바닷가 쪽, 날씨에 상관없이 항상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 귀덕 궤물동산에서 옹포 사거리까지 한림 해안 도로가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해변 가장자리를 따라 나 있으며 많이 알려지지 않아 고요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곳이다. 이 도로의 중간 즈음을 지나 안쪽 길로 들어서면 바다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아녹이 자리한다. 특유의 낮은 지형이 인상적이다. 길보다 조금 낮게 내려앉아 생긴 단차, 자연히 생겨난 안전한 벽에 포근히 둘러싸인 모습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제주의 날씨, 무섭고도 험한 바람과 거친 파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MAKING STORY

이름처럼 더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기획 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문장들을 실체로 옮기기 위해 선택된 네 가지 주제 돌, 물, 불, 향. 이 네 가지 요소를 많은 이들의 보금자리에 사용되어 온 여러 재료와 자연스럽게 연결해야만 했다. 먼저 돌은 제주의 장면을 발견하는 요소로 활용했다. 제주 돌로 담을 쌓아 경계를 짓거나 정원과 공간 곳곳에 두어 시선이 닿는 곳에서 제주의 장면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또 스파 동 바닥에 돌을 깔고 욕조 역시 자연석, 통석으로 만들었다. 물은 욕조와 사우나를 실내로 끌어들여 온기를 한층 높이도록 계획했다. 몸을 씻거나 요리를 하는 등 물을 사용하는 공간에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잘 쓰지 않는 재료를 과감히 사용했다. 나아가 샤워 공간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오픈하거나, 공간의 개폐감을 오히려 더 아늑하게 형성하는 등 공간에 변주를 더했다. 불은 과감하게 그러나 안전하게 표현하고자 기존 흙벽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메인 동의 벽과 이어진 선반에 에탄올 화로를 설치했다. 불의 색과 온기를 실내에서 즐길 수 있어 아녹하고 또 아늑한 시간과 공간을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의 시도를 거쳐 황토를 손으로 비벼 바르며, 아녹의 온도를 드러내는 질감과 색감을 세심히 만들어낸 점도 주목할 만하다. 향은 소박하고도 투박한 그랑핸드 럼버잭 향을 선택해 머무르는 순간을 잔잔한 여운으로 추억할 수 있도록 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할 아녹과 어울리는 향이다. 한편 향은 향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직접 내려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를 경험하며 또 다른 향으로 공간을 채울 수도 있고, 건강한 기운을 담은 약초 입욕제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후각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제주 바닷가에 놓인 나뭇가지를 골라 공간의 오브제로도 활용했다. 제주의 안팎을 섬세히 관찰함으로써 아녹 어디서든 제주가 가진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발견할 수 있게 됐다.

가장 어렵고도 흥미로웠던 선택은 기존의 오래된 돌집이 갖고 있었던 풍경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었다. 일차적인 철거 이후 무너지기 직전의 나무 구조물과 서까래가 드러났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 아닌, 서까래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재가공하고 조립해 구조물을 살리는 작업을 선행했다. 또한 기존 창과 옛 주택의 여러 문을 때로는 막고 때로는 살리거나 적당히 절개해 아녹에 적합한 개구부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공간이 마당과 관계를 맺게 하면서, 아녹의 옛 터에서 지냈던 이들이 바라보고 간직했을 옛 시절의 시선을 지금 이 순간으로 연결되게 했다.#
"투박하고 소박한 본래의 재료를 존중하며 제주의 질감과 촉감을 담아내자. 그렇게 제주를 한껏 느끼면서도 돌담으로 둘러싸여 따스함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자."

디자이너가 아녹을 의뢰받고 기획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완성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생각하고 또 가슴에 심어 두었던 문장이다. 차가운 바람과 거친 파도를 오래도록 막아줄 아늑한 돌집을 그려 나가면서 콘텐츠와 오브제를 구성하고 배치하는 모든 과정을 이 문장이 함께 했다. 건축주와 감각적 경험에 대한 대화를 깊이 주고받으며 시각뿐 아니라 촉각, 청각적 경험 등을 아우르는 여러 감각 기반의 경험을 안배하고자 노력했는데, 긴 고민 끝에 아녹의 네 가지 주제로 돌, 물, 불, 향을 선정하고 이를 기준 삼아 공간과 콘텐츠를 기획했다.

먼저 돌은 오래 자리를 지켜온 돌담과 두 채의 독립 공간에 나누어 배치해 외부와 내부에 흐르는 시간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주고자 했다. 이어서 불은 고재 마루와 황토로 만든 흙벽, 안락함과 안정성을 겸비한 벽 방향에 배치했으며 물은 실내 욕조와 사우나의 경험으로 치환했다. 마지막으로 향은 아녹이 가진 아늑함을 닮게 해 추억이 깊이 깃들도록 했고, 나아가 원두커피처럼 움직이면서 우러나는 향을 선택해 풍부하게 연출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즐기는 아늑하고도 오롯한 휴식. 질감과 공간의 온기가 주는 나른함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여행의 여유를 머금을 수 있도록. 제주의 시간과 삶이 녹아있는 아늑한 휴식이 될 수 있도록.#
SPACE

부족함 하나 없는 온기와 안락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아래로 향하는 몇 개의 계단이 있다. 곧게 걷거나 올라서는 일보다 안정적인 걸음이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걸음에 들뜬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두 채의 돌집과 그 사이에 제주 자연을 그대로 옮겨 둔 듯한 정원이 있으며, 아녹을 감싸는 돌담 아래에도 작고 정갈한 정원이 자리한다. 이끼와 억새, 제주에 식생 하는 식물들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가로로 길게 난 정원을 중심으로 메인 동과 스파 동 두 개의 객실로 나뉜다.

메인 동은 침실과 다이닝 공간, 좌식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다. 좌식 라운지 옆 벽은 기존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손으로 황토를 여러 번 비벼 바르며 세월의 흔적을 살린, 땅의 힘을 품은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벽이다. 흙벽과 연결된 선반 위에 에탄올 화로가 있어, 바로 앞 고재 마루와 서까래를 살린 좌식 라운지에 앉아 불멍을 누리며 무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 정원 쪽으로 난 큰 창을 열고 나가면 내부의 고재 마루가 툇마루까지 이어져 내외부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데, 이 덕분에 외부 정원의 풍경과 내음이 안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총체적인 감각의 경험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공간 여기저기에 닿아 있는 은은한 향은 그랑핸드의 럼버잭 향인데 손바닥으로 느낀 불의 온도, 코끝에 닿는 자연의 향, 발에 닿는 마루의 촉감과 어우러져 공간의 아늑함을 한층 끌어올린다. 여러 레이어가 중첩되어 완성하는 포근함. 침실과 라운지 공간 사이의 다이닝 테이블은 무척 넉넉하여 최대 인원 4인이 함께 머물며 밀린 대화와 안부를 나누고 추억을 쌓기에 부족함이 없다. 간결하고 정직한 선이 특징인 기민석 작가의 넓고 낮은 의자가 함께 함으로써 편안하고도 군더더기 없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스파 동은 욕조와 사우나, 침실로 구성된다. 자연석으로 만든 욕조는 크고 넓고 깊어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 피로를 풀고 아늑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기존 마당을 향해 있던 창은 특별한 액자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의 물의 경험을 산뜻하게 마무리 짓는 것은 부드러운 질감의 텍스처다. 목화 순면을 사용해 만든 소미당의 소창 로브와 수건을 마련했다. 온기에 온기를 더해 은은한 나무 향이 피어나는 사우나 경험 역시 비일상적인 공간을 이루는 데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다. 아울러 욕조에서도 침실에서도 통창 너머로 스파 동의 정원과 복원한 돌담, 제주의 하늘과 계절을 바라볼 수 있다. 정원을 유유히 오가거나 작은 그늘에서 쉬는 아녹냥도 함께. 단차가 있어 살짝 높은 침실에 들어서면 편안한 질감과 색을 가진 나무 마루를 밟게 된다. 스파 동의 침실은 높은 천장 덕분에 안정감 있는 메인 동과 달리 탁 트인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물로 달군 몸을 한 템포 식히기에 알맞은 공간이다. 정원으로 나 있는 창으로는 제주의 시간이 보인다. 시간과 계절을 자연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INTERVIEW

stayfolio
Anok
아녹의 기획과 아늑한 분위기를 완성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랩 박중현 대표 :
스테이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아녹하다’(‘아늑하다’의 제주 방언)라는 단어를 가지고 관련된 경험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료 선택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특히 중요한 재료는 흙과 돌이었습니다. 메인 동 벽면에 표현된 흙, 그리고 스파 동 바닥과 욕조를 이루는 돌의 느낌을 더욱 온전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를 한층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재료로 목재를 썼습니다.

메인 동의 분위기는 그저 어두워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흙의 질감과 컬러를 표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시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둘 채우면서 공간을 정리해 나갔어요. 흙을 손으로 비벼가면서 흙벽의 색을 만들고, 제주 바닷가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활용해 오브제를 올리고, 고재상에서 여러 가지 소품을 찾아가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완성했어요. 여기에 한지사와 소창으로 공예와 디자인을 오가는 소미당의 고소미 작가님이 제작한 소창 패브릭 커튼으로 공간의 빛이 완성되었고요.
아녹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신다면.
지랩 박중현 대표 :
아녹에 처음 갔을 때 고양이들이 엄청 많았어요. 아무도 살지 않았던 흔적 안에서 고양이 5마리가 발견됐는데, 이 고양이들이 어쩌면 오랜 시간을 거쳐온 아녹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이 굉장히 특별한 경우인 거죠. 집을 짓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물과 자연의 이미지가 의도치 않게 공간을 채우는 순간 이곳에서의 경험이 더 특별해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동물을 무서워하는 분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머무신다면 주변의 여러 생물과 조금 가까워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리모델링 프로젝트다 보니 공간에 담긴 예전의 기억을 어떻게 새로운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디자인했는데, 앞서 말씀드린 요소들이 이 점을 자연스럽게 살려주는 것 같습니다.

지랩 공간 디자이너 김수진 :
건축주분과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대화를 굉장히 많이 주고받았어요. 건축주께서 감각적으로 예민한 직업을 가지고 계시기도 했죠. 그래서 일단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 경험, 청각적 경험을 아울러 어떤 다양한 경험을 고객에게 줄 수 있을까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어요. 시각적으로 거친 질감의 벽 같은 것들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어떤 재료가 새로운 촉각적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또 어떤 디퓨저나 향수가 고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음악이 들어가면 이 공간을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지 같은 것들도요.
아녹 만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설명해 주세요.
지랩 박중현 대표 :
아녹만이 가진 아늑하고 안온한 분위기, 그리고 바다 마을이라는 특성과 돌, 불, 물, 향을 집어넣은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어요. 우연히 만난 고양이를 포함해서요. 그리고 처음부터 꾸준히 고민해온 요소가 깃든, 고즈넉한 고재 마루 위에서 따듯한 난로를 켜 두고 LP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녹이 가진 건축적, 공간적 특징들은 ‘이 공간 자체가 주인공이다’라고 말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가까이 보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공간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재료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경험과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일상과 다른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요. 특히 흙벽이 굉장히 중요해요. 흙으로 벽을 만드는 것이 옛날 제주도에서는 많이 했던 방식이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건축 재료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대부분 콘크리트로 대체되는 상황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최근에는 옛 펜션의 황토방을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녹에서는 흙벽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이 디자인했기 때문에 이를 느끼고 이해하는 경험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리적 특성이 궁금합니다.
지랩 박중현 대표 :
귀덕리가 특이하게도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밭담이 많이 보여요. 밭담이 엄청 많은 동네예요. 길 이름은 진질길이라고 해서, 중간산 마을에서 물질하러 가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요. 근처에는 엄청 작은 돌로 만든 밭담이 있는데, 큰 돌로 이루어진 올레길과는 달리 밭 주변의 작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담입니다. 특히 귀덕리의 담은 잣담이라고 불려요. 사람들이 담과 담 사이, 밭과 밭 사이를 이동해야 해서 낮고 작고 단단한 돌담을 만들고 잣담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구역을 자연스럽게 나누면서 밭을 형성하는 담과 이 동네의 이야기가 아녹으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시퀀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차를 타고 공항에서 쭉 달리다 보면 굉장히 구불구불한 밭이 이어지는 동네가 나타나고, 밭과 밭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녹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아녹에 배치된 가구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지랩 공간 디자이너 김수진 :
예전에 목공 하는 지인분의 공유 작업실에 놀러 갔다가 기민석 작가님이 만드신 스툴을 발견했어요. 스툴은 작은 가구인데도 사용감, 비례감 같은 것들이 중시되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아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에 아녹을 디자인하면서 기민석 작가님의 스툴이 기억나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아녹 다이닝 공간에 들어간 식탁과 의자는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는 가구보다 조금 더 낮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조금 낯선 높이의 가구예요. 하지만 기민석 작가님께서 여러 번 목업 작업을 거친 끝에 사용감과 비례감을 포함한 작은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라운지 공간에는 49년 동안 목공 작업을 하고 계시는 서기열 작가님의 가구도 들어가 있습니다. 기존 고재를 살려서 조립한 마루에는 조립식 좌식 의자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이 가구는 마루 위에서 편안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조립해서 한쪽에 정리해두면 작은 소파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제가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서기열 작가님께 부탁을 드려서 제작한 가구입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금능 이모네

이모라는 명칭처럼 정감 가는 사장님이 내어 주시는 보말죽과 전복죽은 든든하고 건강한 아침 식사로 제격이다. 2인분씩 주문할 수 있는 보말 칼국수에 깔끔한 반찬을 곁들여 먹는 것도 추천한다. 식당에 앉으면 바로 앞에 비양도가 보이는 아름다운 전경은 덤.

월령작야

너무 멀리 가지 않고도 계절마다 특별한 회를 먹을 수 있는 작은 술집. 가성비가 훌륭해 아는 사람들은 자주 찾는 맛집이다. 이곳은 해 질 녘이 되면 창 가득 아름다운 노을이 담긴다. 해지기 전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에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밤을 맞이해 보는 건 어떨지.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카페

카페 이면

외부 창이 동화의 한 장면 같아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카페. 일일이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커피가 정말 맛있다. 신발을 벗고 돌담이 가득 담기는 창 옆자리에 앉아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은 여행의 한 장면을 완성한다. 공간과 시간을 추억하기 좋은 드립백도 구입할 수 있다.

STAY

가득 차오르는 마음의 온기를 위하여

자연의 곁과 품이 그리울 때가 많다. 어디에 머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머무느냐인데 아녹은 무엇을 생각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배치된 여러 경험을 편안한 리듬과 동선으로 겪게 한다. 제주 자연의 재료 안에 포근하게 안겨 어떠한 방해로부터 보호받으며, 머무는 동안 상상에만 그쳤던 낭만을 현실로 만끽할 수 있다. 물과 돌, 불을 피부로 느끼고, 걸음과 목 넘김으로 향을 느낄 수 있다. 언제든지 생각을 내려놓고 몸을 데울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욕조, 사우나가 있고, 다시 몸을 식힐 수 있는 아늑한 정원이 있다. 여러 경험 안에서 비일상적으로 움직이고, 느끼는 만큼 세상이 점점 더 넓게 확장된다. 그렇게 제주를 추억하고, 제주 안 아녹에서의 시간을 추억하게 된다. 자연을 곁에 두고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아녹에서의 머무름은 채울 수 없었던 마음의 온기를 가득 채워준다. 이름 따라간다는 옛말이 있다. 머무는 시간이 깊어 갈수록 아늑함이 깊어진다. 아녹은 아늑함 그 자체로 머무는 이들에게 곁과 품을 내준다. 두 팔을 넓게 벌려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아준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포근하게 채우는 곁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비어 있는 곁을 포근하게 채울 수 있다. 누가 무엇이 어떻게 해주는지 해석하려는 시도는 이곳에서 무의미할 뿐이다. 보이지 않지만 가지런히 그리고 친절하게 배치된 여러 겹의 경험을 여러 움직임과 낮은 속도, 느릿한 리듬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마루에 앉아 밤하늘을 보고, 흙벽을 마주하고 불을 보고, 포근하게 감싸는 색과 결의 보호를 따라 머물기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

DESIGN

물과 불, 로망을 채우는 곳

물을 누리고 불을 누릴 수 있는 실내 공간. 꿈꿔본 적은 있지만 이뤄본 적은 없다. 과감하게 실내로 끌어들인 불은 시간을 뒤흔든다.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주도 한국도 그 어디도 아닌 나만을 위한 동굴 안에서 보호받는 시간. 툇마루까지 쭉 뻗은 실내 고재 마루는 외부의 경험과 내부의 경험 간 경계를 지운 탁월한 선택이다. 외부 공간을 갖지 못한 대다수의 집에 대한 로망을 가득 채워준다.

Hospitality

너와 나의 아늑함을 부풀린다

몇 겹의 이불을 덮어도 찬기가 든 마음에 온기는 쉽게 찾아들지 않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지 않나. 아녹은 몇 겹의 이불을 쌓고 쌓아 내밀한 마음의 구석까지 온기를 불어넣는다. 쓰인 자연의 재료에서부터 몸을 달구고 식히는 내외부의 경험과 머문 이들이 쌓아간 방명록에서도 온기가 불어온다. 머문 시간은 그 위로 쌓은 이야기가 되어 자신과 타인의 아녹함, 아늑함을 더 부풀리기까지 한다.

PRICE

제주를 재료로 경험하며

제주를 오브제로 경험하는 특별한 공간. 불, 물, 향, 돌. 비벼 바른 흙벽과 높게 쌓은 돌담, 해녀들의 불턱(해녀가 바다에 들어서기 전 준비하는 곳 또는 휴식하는 곳)을 연상시키는 안락한 욕조, 오랜 집의 세월과 제주의 바람을 가둬 둔 듯한 아녹만의 향. 다채로운 성질의 재료가 놓인 공간은 밀폐된 오감을 활짝 열어 경험하게 만든다. 공간이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물 흐르듯 매끄럽게 경험으로 치환되는 기적의 순간.

스테이명
아녹

숙소타입
민박

연락처

주소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진질길 23

인원 / 객실수
4~4명 / 1객실

가격대
₩400,000 ~ ₩500,000

체크인 / 아웃
16:00 / 11:00

편의시설
취사, 반신욕

PHOTO BY 아녹 | WRITTEN BY 김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