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문지방 영역 너머로 들이고 손님으로 맞이하는 환대(hospitality)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내안의 자기중심성을 게워내고, 꽉 채우지 않으며,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비워둬야 한다. 공간적, 심리적 밀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타인을 환대하는 일은 말처럼 또 생각만큼 쉽지 않다. 누군가 내 곁에 오고, 내 삶의 영역에 들이는 일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이다(정현종,「방문객」). 바람이 온 세상의 만물을 조건 없이 감싸 안듯 그 바람의 결을 “흉내”낼 때야만 비로소 조금은 가능해질 환대이다.
그렇다면 필시 ‘환대’일 바람에도, 바람이 들고 지나갈 어떤 여백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다수의 사람들을 방문객으로 맞아 공간에 들이는 스테이라면 더욱 말이다. 공간이 사람과 관계 맺고 다양한 삶의 맥락 속으로 흘러들게 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의도를 빼고 색을 지우는, 비움의 움직임도 필히 요구된다. 공간으로 환대하는 일은 고매한 취향이 아닌, 사람과 그들의 삶을 담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님을 환대하는 스테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으로서 그 색을 더 선연하게 각인시키려 노력하는 제주의 독채 스테이가 있다. 서귀포시 상효동에 자리한 에디토리얼 제주이다. 반듯한 사각형의 틀이 다채롭게 변주를 이루는 백(白)의 건물이 한라산과 포근한 오름들을 품고서 한적한 대지위에 내려앉았다.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흰 캔버스 같은 공간에, 푸르른 제주의 풍경을 색다른 프레임으로 경험하게 한다. 에디토리얼 제주의 전병학 대표는 서울보다 제주에서의 삶을 일찍이 꿈꿨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실행에 옮긴 덕분에 3년 전, ‘스튜디오 스테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에디토리얼 제주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가족 단위로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제주의 독채 스테이이자 새로운 전시콘텐츠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 플랫폼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는 제주 스테이의 시장 속에서 차별화를 꾀하고, 시간이 지나도 지속가능한 힘을 발휘하게 할 새로운 접근이었다.
흰 페이지를 그리드에 맞춰 레이아웃하듯, 공간을 정갈하게 레이아웃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스테이로 다가서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스테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때에 따라 마주하는 삶의 문턱들에 이제는 스테이 본연의 기능과 가치에 더 충실하고, 무엇을 채우기보다 비워내는데 더 집중함으로써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환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블랭크 하우스’(Blank House)라는 프로젝트의 첫 이름 그대로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일상의 하루가 저마다의 기억 속으로 에딧되어 작품처럼 남을 수 있는 흰 여백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people
무엇을 채우기보다 비워냄으로써
사람을 환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진심으로 열망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마음을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킨다”고 했다(임경선,『태도에 관하여』). 그러한 진심어린 열망이 있었기 때문일까. ‘무작정 시작한 일’이라 했지만 에디토리얼 제주의 전병학 대표는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자신이 꿈꿔왔던 제주에서의 삶을 에디토리얼 제주와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를 얻는 대신 서귀포시 상효동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 지랩을 찾아간 것이 20대 후반의 나이, 학부 졸업을 이제 막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시각 디자인의 분야로 단단한 커리어를 쌓고 서울에서 보다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속도대로 일상을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에 제주 살이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였다.
처음부터 제주의 스테이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그렸던 삶은 루시드폴처럼 감귤농사를 짓는 낭만적인 농부였지만 알아볼수록 자기와는 맞지 않은 일임을 직감했고, 그보다는 언젠가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이자 다양한 편집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어 스테이로 운영하고 싶었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그래픽 디자인의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회랑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불어넣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테이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제주도에 땅을 보러 다니고, 건축사 사무소를 직접 찾아 나서는 등 지난하고 녹록치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제주에 살 생각에 고되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제주도로의 이주를 걱정하셨던 부모님을 설득해 땅을 매입할 수 있었고 때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차분한 응집력과 순수한 열망으로 노력을 거듭해나간 끝에 그는 결혼과 제주도로의 이주라는 새로운 시작과 2017년 5월, 에디토리얼 제주를 오픈할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에디토리얼 제주를 운영한지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든 지금, 시간과 함께 변화된 삶의 모양만큼이나 에디토리얼 제주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전시 컨텐츠를 소개하고 기획하는 큐레이팅보다 사람들에게 보다 더 편안하고 의미 있는 머무름을 전하는 공간 경험을 편집에 더 집중한다. 여러 프레임들이 중첩을 이루는 여백의 공간을 자신의 취향이나 관점이 아닌, 사람들을 들이고 환대하는 공간으로 비워두고 열어두기 위해서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많이 달라졌다. 에디토리얼 제주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공감하고 내부 분위기와도 이질감 없이 녹아드는 작품들로 걸어두려 한다. 최근에 진행한 제로퍼제로 스튜디오와의 콜라보 전시는 지기 부부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을 제로퍼제로의 따뜻한 감성이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제작해 전시하는 경험 그 이상으로, 제로퍼제로의 가족시리즈에서 육아의 힘든 과정을 실제로 겪고 있는 지기 부부에게 어떤 위안 가득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러한 따뜻한 공감과 서정을 줄 수 있는 전시 컨텐츠를 큐레이팅하되, 스테이의 지속가능한 가치를 지켜가는 방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때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맥락에 따라 공간에 대한 태도나 마음가짐을 디자인해가는 지기 부부는 그 모습 그대로 하룻밤 머무는 이상의 경험과 삶에 깃드는 영감을 전달한다. 누군가에게는 내 집 짓기라는 꿈을, 또 다른 이에게는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게 만든다. 이는 공간과 호스트의 환대가 손님 개개인의 일상을 환대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젊은 부부의 마음이 전해져서일 것이다.
에디토리얼 제주가 위치한 상효동은 제주 서귀포시 중심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지역이 넓은데 반해 인구밀도가 낮고 산과 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 특별한 느낌을 주는 지역이다. 무엇보다 상효동은 북으로는 한라산이, 중산간 주변으로는 영천악과 칡오름, 그리고 인정 오름이 남북으로 나지막하게 자리해 있어 제주의 바다와는 다른 제주다움의 녹음을 만끽할 수 있다. 제주의 자연을 느끼기에 너무 외지지도 않고 제주의 어느 쪽으로 가기도 수월해서 제주의 바다와 자연, 그리고 새로운 문화 등 무엇이든 균형감 있게 삶을 유지하고 싶은 지기에게 적절한 위치로 다가왔다.
물론 자신에게 맞는 동네를 찾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다. 저마다 느낌이 다른 제주의 동서남북에 직접 머무는 것으로 제주살이를 위한 첫 단추를 꿰어갔다. 학기 중에는 제주에 계속 머물 수가 없어 수업이 끝나면 제주도에 내려와 땅을 보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일상인 때도 있었다. 그렇게 추려나간 곳이 산방산이 있는 서귀포시 사계리였지만 이미 땅값이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발품을 팔아 무작정 알아보는 것만으로는 좋은 땅을 합리적인 가격에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쯤, 부모님의 오랜 지인분의 도움으로 제주의 바다가 아닌 한라산과 오름의 풍경을 조망하는 ‘내륙’ 쪽으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닿게 된 상효동의 터는 탁 트인 한적한 대지 위에, 한라산의 중산간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었다. 싱그럽게 열린 감귤 밭이 주변을 두르면서 제주의 현무암 암반과 제주의 자생식물들이 자라고도 있었다. 제주의 정취를 신비롭고도 짙게 품고 있는 땅이었다.
그는 이러한 제주 자연을 최대한 품을 수 있는 건축물을 짓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이 집이 언제나 자연을 마주하고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보통 성토라 해서 땅의 오목한 부분을 채워 땅을 평평하게 한 뒤 건축물을 짓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땅에도 그것만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의 권고에 따라 성토의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였다. 인위적인 측면을 줄이고 땅에 대한 윤리를 지킨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디자인으로 스며들었다. 땅에 자연스레 뿌리내리는 자연스러운 집을 그리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었다.
MAKING STORY
얼핏 보기에 단순하면서도 복잡함이 깃든 공간 구성이라 시공에 있어 정교한 매만짐과 섬세한 완결성이 더욱 요구되었다. 간결한 선과 면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프레임들과 그리드의 변주가 공간 전체에 절제된 미니멀한 느낌을 주려면 서로 다른 부분들이 맞닿는 경계지점 처리, 미감이 두드러져야 했다. 에디토리얼 제주의 시공은 지랩(Z_Lab)의 창신기지 크래프트베이스와 이화루애, 그리고 하도하도에 이르기까지 지랩의 여러 프로젝트를 연이어 책임져주신 어반플롯(URBANPLOT)의 서호성 소장님께서 맡아주셨다.
시공을 진행하면서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내부에 창을 다시 내거나 비어 있는 중정을 두르는 전창의 크기와 수를 줄였다는 데 있다. 타협이 불가피한 예산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통창을 통해 중정 사이로 모든 빛을 그대로 들이는 게 우려되어 수정한 사안이었다. 회랑과 복도에는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빛의 양을 적절히 들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전창 대신 높이가 서로 다른 창들을 두었고, 주변 풍경을 여러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조정 했다.
“제가 좋아하고 선택한 스튜디오의 작품, 그 스토리를 설명하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상황과 짓고 싶은 집의 방향, 예산 범위 등을 적어 여러 건축사 사무소에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집을 짓기 위한 다음의 단계를 밟아나갔다. 지랩(Z_Lab)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여러 건축사 사무소를 접하였지만 어느 조건 하나 누락됨 없이 고루고루 맞는 곳은 지랩이 유일했다. 지랩은 다양한 가능성으로 편집이 가능한 공간에 대한 건축적 해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 유연한 소통 능력 및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지랩으로서도 병학씨가 제안하는 ‘스튜디오 스테이’의 컨셉이 새롭고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주의 (독채) 스테이시장이 마을의 지역성을 품고서 지역 주민과 상생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2세대에서 벗어나 한층 더 복합적인 문화 공간에 대한 수요로서 변모해가는 접점에 있었기에, 이번 프로젝트를 제주의 3세대 스테이의 표본이자 선례로 만들고 싶은 욕심과 평대파노라마, 유월별채, 월령 선인장을 잇는 신축 프로젝트로, 지랩만의 PI(Project Identity)를 구축하게 할 작업으로서도 의미가 컸다.
SPACE
제주의 풍경을 저마다 다르게 담아내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프레임의 공간
오랜 노력 끝에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에딧될 백(白)의 공간이 한적한 중산간의 마을 위에 내려앉았다. 한라산과 포근한 오름들, 그리고 그 땅에 켜켜이 쌓였을 기억과 다가올 시간까지 품고서 말이다. 백의 이미지가 어떤 비워진 상태, 그래서 그 비워진 곳을 무언가로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을 연상시키듯, 에디토리얼 제주는 그러한 비움이 있는 여백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경험들로 채워지길 바라는 지기들의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았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가족단위로 편안하게 머무르는 독채 스테이이자, 전시 콘텐츠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 플랫폼으로 차별화를 더한 만큼 내부 공간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주의 자연을 투명하게 들이고 있는 비움의 공간, 중정이 에디토리얼 제주의 그 큰 틀을 구성한다. 이 중정을 중심으로 거실과 주방, 다이닝 공간, 그리고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가진 2개의 침실들이 에워싸듯 겹쳐 들고, 공간 내부 기능과 동선들은 이 중정을 중심으로 순환하고 소통하며 관계 맺는다.
이러한 중정을 포근히 두르고 있는 회랑의 공간과 흰 벽면은 에디토리얼 제주만의 작은 갤러리가 된다. 빛이 투명하게 드는 회랑을 걷고 거닐면서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하고 주변 자연의 풍경까지 차경한다.
자연과의 반복적인 조우를 허락하는 앞마당, 중정과 회랑, 뒷마당을 연결하는 프레임들 덕분이다. 중산간의 오름들과 한라산의 아름다운 선, 그리고 마당의 푸르른 녹음들이 창 마다에 저마다 다르게 걸린다. 간결한 선과 면의 미감이 두드러지는 프레임에 담기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일상의 장면, 그 찰나 역시 프레임으로 담긴다. 안과 밖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창들은 저마다의 삶을 프레임에 담고서 바라보게 한다. 그 일상의 경험과 순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살아갈 공간으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집과 공간 곳곳에 배여 나오는 ‘취향 있음’과 배려 가득한 마음으로,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 남아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한다.
루프탑과 함께 앞뒤로 넓게 비워둔 마당도 에디토리얼 제주만이 가진 또 다른 매력적인 공간이다. 300평이라는 넓은 대지를 두고서도 이를 꽉 채우듯 건물을 여러 채 짓거나 미려한 정원으로 꾸미지 않은 것은 비어 있는 마당이 주는 고유한 느낌을 유지하고, 다양한 활동들로 채워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주변 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루프탑의 공간은 낮과 밤의 시간을 다르게 담으며 기억에 새겨질 순간의 조각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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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에디토리얼 제주 전병학 대표님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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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JEJU
에디토리얼 제주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 그 일련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에디토리얼 제주라는 스테이를 준비하고 운영하기 전까지 저는 (학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휴학을 자주한 탓에 남들보다 조금 긴 학부생활을 했었요. 호기심도 많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디자인과 사진 관련 일은 물론, 인턴으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고 청년 창업 국가 지원금을 받아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다양한 실무적인 경험을 쌓고 이제 막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졸업을 할 때가 되니 지금까지 배워오고 몸담아 왔던 디자인의 일을 평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취업을 하고 정해진 틀에 따라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버겁기만 하고 저와는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바쁜 일상들 속에서 미래에 대한 고민들로 치일 때쯤이면 제주에서 보냈던 시간들과 추억들이 계속해 떠올랐어요. 그리고 제가 루시드폴을 정말 좋아하는데, 때마침 그가 제주도에 내려가 감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어요. 그 모습에서 어떤 가슴 뭉클한 감동과 영감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서 막연하게나마 꿈꿔왔던 제주에서의 삶을 이제 ‘진짜’ 살아보고 싶은 열망이 생겨났어요. 물론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죠. 제주에 이렇다 할 연고도 없이 혈혈단신(?) 내려가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주변의 우려대로 정말 힘들고 행여 잘못된다 하더라도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상당히 무모했고 막무가내로 실행에 옮겼다는 생각도 들지만, 제주에 사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제 삶에 좋게 흘러들고 녹아들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삶의 방향을 크게 틀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주 토지 가격이 지금만큼 치솟아 있을 때가 아니어서 부모님을 설득하기 한결 더 수월하기도 했었고요.
지기님에게 제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서울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제주가 굉장히 이국적으로 다가왔어요.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섬인만큼 공항이 주는 묘한 설렘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제주는 산과 바다가 어느 것 하나 크게 치우침 없이 한 데 잘 어우러진 곳이잖아요. 한라산 주변으로 퍼져 있는 오름들, 곶자왈도 그렇고요. 단독적인 미가 깃들어 있는 자연에 문화와 예술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모두 하나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거기에다 제주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감각적인 힙 플레이스들이며, 사람들까지 있어서인지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그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루시드폴처럼 그러한 낭만적인 농부의 삶을 꿈꿔서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감귤 농사에 대해 알아보면 볼수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보다는 제가 잘할 수 있고 제게 맞는 일을 찾는데 집중했어요. 결국에는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들이고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는 반듯한 틀이 있는 백(白)의 공간에, 제가 지금까지 공부해왔던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좋은 작품들을 알리고 전시하는 새로운 컨셉의 스튜디오 스테이를 만드는 것으로 접점을 찾아나갔어요.
에디토리얼 제주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다 보니 친구나 지인 대부분이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덕분에 좋은 작업물들이 많았죠. 스테이와 전시 공간(또는 작은 갤러리)과 같은 기능이 잘 결합된 공간플랫폼 또는 스튜디오스테이를 만들어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작품들을 선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존의 스테이와는 차별화된 공간적, 디자인 관점이기도 했고요. 스테이라는 건축 공간의 특징상 한 번 완성이 되고 나면 변화시키기가 어렵잖아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독특한 콘텐츠가 필요할거라는 생각도 들어 접근한 방향이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사람들이 에디토리얼 제주에 와서, 부단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그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의 영감을 얻었으면 했어요. 앞마당과 중정, 회랑 그리고 뒷마당을 투명하게 연결하는 창들 사이로 저마다 다르게 걸리는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느끼고, 백색의 회랑들을 걸으면서 전시된 작품들까지 감상하면서요. 처음에는 호스트의 취향을 큐레이팅하는 스튜디오 스테이라는 공간의 콘셉트에 맞게 ‘좋은’ 작품들을 찾으려 노력했었어요. 하지만 스테이를 오픈하고 손님들을 막상 대하다 보니 내부에 전시된 작품이나 그림이 좋았다는 리뷰보다 대부분 예쁘고 좋은 공간에서 잊지 못할 추억과 시간들을 보내고 간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스테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운영방식에 있어 중점을 두는 가치가 바뀌게 되었어요. 저희 부부가 아이를 출산하고부터는 더욱이요.
어떠한 관점의 변화를 겪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에디토리얼 제주를 오픈하신지도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드신 만큼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을 듯합니다.
새로운 전시 콘텐츠를 마련해 외부의 사람들을 새로이 끌어 들이기보다 제주도로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더 좋은 기억과 추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스테이 본연의 기능에 더욱 집중하고 있어요. 작품이 돋보이기보다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보내는 하룻밤 자체가 잊지 못할 경험이자 기억으로 편집될 수 있도록 이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스테이에 무엇을 채워 넣기보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전에는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한 장면(scene)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뒀었는데 이제는 어딘가 비어 있는 공간적 느낌을 주려 해요. 그래야지 내부에 각자의 짐을 펼쳐내도 꽉 채워지는 느낌 없이 좋은 경험을 머무르는 내내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많이 비워져 있을수록 오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경험에 집중할 수도 있고요. 사람마다 취향이나 보는 관점이 다른데, 스테이의 취향이 정해져 있거나 한정지으면 오히려 영감을 받거나 경험들로 채워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집 앞뒤로 크게 나 있는 마당도 마찬가지에요. 식물과 조경에도 관심이 많아 한 때는 세련된 조경을 꿈꾸고 여러 가지 특색 있는 나무들을 심어 오밀조밀 꾸며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비워져 있어야지 걸어 다닐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크고 단순해 보여도 말이에요.
유일하게 채워 넣고 바꾼 부분이 있다면, 에디토리얼 제주에 아이를 데려왔을 때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을 제하고 조금씩 바꿔나간 일이에요. 저자신이 육아하는 사람이 되다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이를 데리고 자기 편하도록 침대 방향을 바꾸는가하면, 아기 욕조나 의자를 갖다 두었어요. 손님이 없을 때는 아이를 데리고 와 직접 묵어보면서 손님의 위치나 입장을 헤아려 보려 노력하기도 해요. 또 본래는 시멘트 마감이었던 중정의 바닥을 나무 데크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기존의 세련된 느낌도 좋았지만 무언가 거칠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나무가 가진 따뜻한 색감과 물성을 더하고 싶었어요.
‘editorial’이라는 네이밍에 대한 고민은?
에디토리얼은 ‘편집 디자인’(editorial design)이라는 출판물의 디자인을 두루 일컫는 용어에요. 시각 디자인의 한 분야죠. 집을 완성하고도 한동안 이름을 짓지 못해 꽤나 고생했었어요. 건축 설계 당시 건축가님들과 집에 대한 느낌을 서로 공유하고 컨셉을 잡아나갈 때 편집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했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리드에 맞춰 정갈하게 디자인된 여러 가지 텍스트들과 이미지들이 무드 보드에 있었는데, 그러한 인쇄물이 주는 느낌이 이 스테이의 공간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에디토리얼’이라 이름 지었어요.
제로퍼제로(zeroperzero) 그림들이 인상적입니다. 테이블 위에 웰컴 기프트로 놓인 에디토리얼 제주 카드들도요. 제로퍼제로 작품들로 걸어두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스테이나 공간 경험에 대한 관점이 바뀌다보니 스테이 내부에 전시할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크게 바뀌었어요, 제 개인적 취향을 불어넣는 큐레이팅이나 ‘좋은’ 작품을 찾는데 주력하기보다 저희 공간과도 이질감 없이 잘 녹아들면서도 의미도 함께 생겨나는 그런 작품들을 선정하려 해요.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있는 가족 분들이 많이 오세요. 저희 부부 역시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다보니 원래도 좋아했던 제로퍼제로의 가족시리즈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육아의 힘든 과정을 실제로 겪고 있어서 그런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일상의 장면 속에서 어떤 희망에 찬 위안을 얻을 수 있었어요.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가 생겨난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아이가 좀 더 크면 앞으로 함께, 같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겠구나 싶어서요. 저희 스테이에 오시는 분들께도 그러한 위안과 희망, 그리고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제로퍼제로는 제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학교선배가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스튜디오이기도 해서 좀 더 수월하게 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덕분에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을 제로퍼제로의 따뜻한 감성이 담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요. 이를 포스터 카드로도 제작해 월컴 기프트로 손님들께 드리고 있어요. 남자아이, 여자아이 버전을 각각 따로 만들어서요. 앞으로도 스테이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는 선에서 좋은 전시 콘텐츠를 만들어 좋은 공간 경험과 함께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앞으로 지켜나가고 싶은 에디토리얼 제주만의 가치나 이곳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향취나 느낌이 있다면?
에디토리얼 제주의 가치는 이곳에서 보낸 좋은 추억과 시간들로 인해 자신이 살고 싶은 저마다의 공간을 꿈꾸고 상상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또는 제주에서의 삶을 순간 탐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오시는 분들께 그러한 설레임을 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이상하게도(?) 손님들로부터 ‘제주에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비용은 얼마나 드나’ ‘제주의 삶은 어떠한지’ 등의 질문들을 꽤나 구체적으로 많이 받았거든요. 청소를 해야 하는데 체크아웃하시는 손님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나간 적도 많고요. 이러한 질문들을 받으면 난감하기도 하지만 참 좋기도 해요. 호텔에서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도 호텔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요. 에디토리얼 제주는 하룻밤의 숙소 그 이상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새로이 디자인하고 싶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테이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께 그러한 공간 경험을 줄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여행지
새연교, 새섬
해질 무렵의 풍광이 특히 좋은 새연교. 새연교 건너에 있는 새섬에는 20분 정도 걸리는 정갈한 산책로가 있고, 반딧불이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쇠소깍, 하효쇠소깍해변
쇠소깍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신기한 지형을 만난다. 이어서는 현무암이 부서져 형성된 검은모래가 있는 하효쇠소깍 해변을 만날 수 있다. 제트보드나 조각배타기, 쇠소깍 주변을 도는 열차 등 즐길거리도 많이 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베케
에디토리얼 제주의 지기 부부가 적극 추천하는 카페. 잘된 조경의 완벽한 예를 전창의 액자로 담아 커피한잔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세컨드뮤지오 x 프레임커피
에디토리얼 제주 지기가 꼭 추천하고 여러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이곳. 1900년대 빈티지 오리지널 가구들과 조명,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 같은 셀렉트샵이자 미술관 같은 카페. 이곳에서만 유통하는 코코넛 밀크, 메이플시럽, 소금들이 있다고 하니 지인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아이템들과 아름다운 오브제들로 가득하다.
서양차관
바다 바로 앞의 앤티크 홍차 전문점.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지나 이 곳에 도착하면 큰 야자수가 있는 마당이 눈에 띈다. 이국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는 서양차관에는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하나 하나 맛있는 디저트와 홍차, 스페셜티를 즐길 수 있다.
STAY
삶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에서의 오롯한 하루
“너무 거대한 이야기와 너무 반짝이는 작품이 좋은 환기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박보나,『태도가 작품이 될 때』)고 했다. 어떤 작품이든 보는 이의 심리적 여백을 허용해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이나 스테이도 마찬가지다. 위계적 차이를 더해 호스트의 남다른 취향과 심미안을 불어넣고 새로운 공간 경험을 선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보살피는 ‘취향 있음’으로 그 문턱을 낮추고 누군가를 들이기 위한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본 가치에 충실하는 것이 되레 더 선명한 색과 정체성을 갖게 한다.
내게는 에디토리얼 제주가 그러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채우지 않은 그리드의 공간으로, 선과 면이 빚어내는 프레임의 공간으로 사람을 환대하기 위해 괄호를 비워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라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드넓은 대지 위에 반듯하게 놓인 흰 건물부터, 넓게 비워둔 푸르른 마당들, 그리고 제주의 빛과 바람을 투명하게 들이고 있는 중정이 있는 내부 공간까지 에디토리얼이라는 이름 그 뜻 그대로 흰 페이지를 그리드에 맞춰 레이아웃한 듯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세련됨이 있지만, 차갑지 않고 사람의 온기와 따뜻한 정감이 느껴졌다.
빛이 드는 중정과 회랑을 중심으로 다른 주거 공간들이 포근히 두르듯 배치되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에디토리얼 제주의 지기의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담고 있어서인 듯 했다.
높은 층고에 다락이 있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중정의 공간과 너른 마당이 보이는 거실, 또 온가족이 둘러앉아 한 끼의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주방 등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의 반복에도 의미 있는 차이를 더할 기본에 더없이 충실한 디자인이었다. 거기다 내 집 마당을 감싸고 있는 작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상에 깃든 미의식을 키우는 ‘취향 있음’이 있었다.
이제는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 무엇을 채우기보다 덜어내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한 지기님의 손길과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 역시 내가 지금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 시간에, 우리의 경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공간 내부에 새겨지는 빛과 그림자에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읽고, 일상과 주거공간에 대한 감응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마지막으로 물었던 질문은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었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과 시대의 흐름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가치를 유지하는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이는 에디토리얼 제주에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특질이었다. 때마다 마주하는 삶의 문턱들에 유연하게 태도와 관점을 수정해가고, 이제는 사람을 환대하는 공간으로 스테이의 기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비움’에 더 집중한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공간(디자인)과 그 공간을 매만진 사람(삶) 사이의 보기 드문 일치로 진심을 전하고, 삶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테이였다.
4:00 PM
‘눈부시게 반듯한’ 에디토리얼 제주와의 첫 대면
감귤 농장이 많았던 상효동의 여러 동네를 지나 제주의 좁고도 굽은 길에 들어섰다. 한라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마당으로 사진으로 보았던 반듯한 사각 프레임의 건물이 보인다. 역시나 기대 이상의 공간이다. 정갈하게 밝은 느낌의 잘 디자인된 공간에, 지기님의 따뜻한 환대가 더해지니 제주의 빛과 자연은 물론 사람의 온기까지 머금었다.
7:00 PM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저녁 식사
온종일 시간을 보내도 부족할거라는 생각이 들어 체크인 전 간단히 챙겨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장을 미리 봐왔다. 비치되어 있는 커트러리와 접시들에 그저 음식을 담아내었을 뿐인데, 요리를 직접 한 것 마냥 한결 여유로우면서 풍성한 식사가 완성되었다.
10:00 PM
별빛 가득한 하늘을 천장 삼아 노천욕으로 피로를 녹이다
제주 돌담이 에워싸고 있는 흰 욕조에 별빛이 쏟아질 것 같은 청명한 하늘을 마주하며 몸을 담그니 여행을 하며 알게 모르게 쌓였던 피로가 싹 사라진다.
9:00 AM
루프탑 데크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
환하게 드는 빛으로 아침잠을 깨우고서 너른 마당을 한 바퀴 걷고 루프탑에 다 같이 올랐다. 신비함이 깃든 한라산 자락을 품에 안는 것 같은 느낌을 가득 안고 앉아 있으니 적지 않은 시간동안 나를 산란하게 했던 모든 것들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11:00 AM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다
한없이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을 또 만났다. 1박2일의 시간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냈는데도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나도 에디토리얼 제주의 느낌 그대로,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달큰한 꿈을 가져본다. 공간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는 지기님의 배려 깊음과 따뜻한 마음에서 좋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하루의 일상과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삶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저마다의 기억 속에 단단히 새겨질 비움의 공간
공간을 꽉 채운 호스트의 취향과 도드라진 색이 되레 타인의 환대를 방해하고 저해할 수 있다. 새로운 공간 경험을 위해 남다른 취향과 감각을 불어 넣은 스테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환대’라는 스테이의 기본 가치에 더없이 충실한 공간을 제대로 찾고 만나기도 쉽지 않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그러한 걱정과 불안을 잠재우는 제주의 프라이빗 스테이다. 제주 자연을 액자처럼 담아 거닐고, 흰 캔버스 같은 비워둔 프레임들이 있는 공간들에 살고 싶은 집의 가치를 담아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을 우리들만의 순간과 시간들에 집중하게 만든다. “살짝 거리를 두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천천히 돌아볼 때에야 인생이라는 총체적 그림이 완성된다”고 했다. 비워둔 프레임이 있는 에디토리얼 제주에서 단숨에 소비해버리고 말 장면(scene)이 아닌, 인생의 한 맥락(context)을 하나의 그림으로 담아보자.
DESIGN
간결한 선과 면의 미감이 두드러지는 정갈하고 미니멀한 공간
스튜디오 스테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를 내걸었던 만큼, 간결한 선과 면의 미감이 두드러지는 정갈하고 미니멀한 백의 공간이다. 중정을 따라 회랑을 걸으면 창을 통해 언제든 제주의 푸른 하늘과 중산간의 미감을 마주하고 자연이라는 대가 없는 선물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Hospitality
비움의 미학으로 자신의 삶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좋은 공간일수록, 그 공간에 누가 살고 있고 어떤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서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어 가는지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에디토리얼 제주는 미래에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집으로서 세심히 매만진 공간이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지기 부부들의 디자인의 감각과 취향을 불어넣되, 일상에 깃드는 미의식으로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서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취향 있음으로 문턱을 세우기보다 오히려 낮춰서 누군가에겐 제주에서의 삶을 직접 꿈꾸게 할 만큼 그 모습 그대로 영감을 주고 있다.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일이 어렵고 그러한 비움의 미의식을 일상의 삶과 공간에 적용하기는 더욱 어려운 법인데, 이를 일찍이 깨우치고서 실천해가는 향취 있는 사람들이 있는 스테이의 공간이다.
PRICE
제주살이의 한 맥락을 경험하게 할 가치 있는 소비
에디토리얼 제주는 제주의 속살이라 불리우는 중산간의 풍경을 오롯이 품고 있는 독채스테이다. 최대 6인까지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앞뒤로 나 있는 너른 마당과, 또 따뜻한 볕과 바람이 드는 중정의 모래사장에서 누군가의 방해 없이 가족들과 아이들이 뛰어놀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두 개의 침실이 중정을 중심으로 분리되듯 배치되어 있어 여러 가족이 ‘따로 또 함께’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제주의 어느 한 일상 속으로 숨어들어 함께 있음의 시간에 집중하고 의미 있는 차이로 삶의 변주를 더하고 싶다면, 충분히 합리적이고 가치 있는 소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