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남해
why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날 때는 기대를 채우기 위함보다는 무언가 비우기를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차와 비행기, 기차나 버스에 올라탄다.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 일까. 지금에 집중할 수 없는 지금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도시와 생활에서 분 아니 초 단위로 밀려드는 수많은 자극의 썰물로부터 어떻게든 뭍으로 기어 나오고 싶은 바람은 매일의 구석 어디에나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린다. 일상에서의 탈출을. 마음을 먹고 일탈을 결심해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비우러 가는 길의 끝자락, 아마도 최소한의 선택만 남으면 충분하다. 머무름 자체로 진정한 휴식이 되는 목적지가 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엄마의 두 팔처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전경 앞에 한국이 아닌 시공간을 뛰어넘은 우주 그 어딘가의 땅이 펼쳐진 곳. 그 위로 찰랑찰랑 물이 담기는 자연, 그리고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보호와 위로를 받으며 지금이라는 시간과 서있는 자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곳. 무엇을 위해 떠나왔는지조차 상기시킬 필요 없이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곳. 바로 이때를 가리키는 '이제' 말이다. 어제도 다음도 아닌 바로 지금에 집중하기 위한 '이제 남해'로 떠나야만 한다.

people

물과 바람과 대나무의 땅을 관찰하며

여행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주)이제는 브랜드의 첫 번째 지점으로 이제 남해를 작업했다. 인간의 삶을 설명할 때 과연 여행을 떼어 놓을 수 있을지 자문하며, 여행의 작용과 의미, 가치, 목적까지 여러 방면으로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브랜드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당시, 국내외 크고 작은 스테이를 직접 경험하면서 국내에는 호텔과 리조트를 제외하고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서 온전히 쉼에만 집중한 공간이 드물다고 느꼈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와 기획을 가진 좋은 스테이가 생겨나고 있으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하였으며 그 점이 매우 아쉬웠던 것이다. 수년간 호텔을 직접 운영 및 관리하며 노하우를 쌓아가던 중 오직 쉼 그 자체만을 위한 공간의 필요성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들어서는 순간,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쉴 수 있는 공간 ‘이제’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하는 고민조차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제라는 스테이를 선택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을 위해서. 그렇게 이제는 시작되었다.

디자인은 최재영 디렉터가 이끌고 있는 공간 브랜드이자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더 퍼스트 펭귄'이 담당했다. 선구자라는 뜻을 가진 스튜디오 이름처럼 획기적이고 감각적인 공간 브랜딩과 디자인으로 반짝이는 그룹이다. 상공간 등을 주로 작업하던 이들에게 스테이 프로젝트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 더 퍼스트 펭귄의 최재영 디렉터는 진행이 확정된 이후 사이트를 팀원과 함께 다시 방문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땅이 주는 인상과 모습을 관찰했는데,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물이 들어가고 나가는 펄의 모습만 각인되었다면 다시 찾아왔을 때에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뒤쪽의 이미지와 자연의 맥락을 읽게 되었다. 펄 너머는 대나무 군락지였다. 뒷산에 대나무 군락지가 조성되어 바람이 불면 대나무가 바람에 서로의 몸을 부딪히거나 잎을 흩날리며 청량하고 신선한 소리를 냈다. 대나무 군락지에 들어가 조용히 머무르기도 하며 주변의 자연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후, 남해 '이제'의 설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location

자연의 소리에 파묻힌 고요한 섬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남해. 남해군이라는 남쪽 바다의 이름은 신라 경덕왕이 지어 이미 1,300여 년이나 된 오래된 지명이다. 경상남도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주요 섬은 남해도와 창선도 2개의 섬인데 사천시, 동해군의 육지와 대교로 이어져 있다. 죽방 멸치와 독일 마을, 다랭이 논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제 남해는 옛날 도로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차가 주로 다니는 새로운 길과 조금 떨어져 있는데다 남해라는 지역 특성까지 더해져 굉장히 고요하다. 차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 등 여러 자연의 소리 속에 파묻힐 수 있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탈출에 적합한 사이트다. 이제 남해 바로 앞 바다의 물이 빠지면 바다의 땅, 펄이 드러난다. 보통 갯벌로 대변되는 서해안 지역의 펄과는 너무나도 다른 질감이다. 실제로 펄이라기보다는 흙밭, 화성의 표면 같은 질감과 인상이다. 바다를 단순히 물로만 인식하지 않고 땅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장소이자 아름다운 위치이다. 또한 망망대해로 펼쳐진 바다가 아니라 주위를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결코 적막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포근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MAKING STORY

신축이 아닌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 하는 프로젝트다 보니 룸이나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모든 객실이 외부 환경과 연결됐으면 하는 기획을 성립시키지 못했고, 중간층의 방 몇 개가 단독의 룸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생겼다. 신축이었다면 어떤 구조적인 해법이나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한계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창을 최대한 크게 찢어 외부 자연을 내부로 끌어왔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객실은 실내와 실외가 수평적 혹은 수직적으로 반드시 연결되게 했다. 또한 동선 역시 홀 웨이를 지나지 않고 바로 룸으로 접근할 수 있는 리조트나 독채 느낌을 내고 싶었으나 구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아이디어를 최대한 발전시켜 1층 객실에서는 프라이빗한 동선을 실현했다.

디귿 자 형태로 두 동이 붙어 있는 기본적인 건물 배치를 존중하며 어디로 열어주고 어디로 막아줄 것인가의 선택이 굉장히 중요했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으나 결국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면서 객실에 머무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바다가 보이는 바깥쪽을 확실히 열어주었다. 기존 시안에서는 반대쪽으로도 열려 있었으나 호텔을 처음 목도했을 때 호텔이 주는 하나의 인상, 호텔이 던지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란 판단에 안쪽으로는 오히려 폐쇄적인 제스처를 취하게 됐다. 또한 이 제스처는 소재로 이어져 노력 끝에 남해 일대의 인상적인 땅의 색과 가장 흡사한 벽돌을 찾았다. 이를 토대로 땅의 이야기와 건물이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을 설계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적층 방식으로 시공되는 벽돌은 빈틈없이 쭉 발라진 듯 어떤 면으로 존재할 때 느껴지는 강렬함과 그 면에 빛이 맺혀졌을 때의 질감을 고려해야만 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안쪽을 폐쇄적으로 막는 것이 여러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가장 매력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중정을 품은 두 동의 건물 안쪽은 닫고 바깥쪽은 활짝 열어둔 형태는 이러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주)이제는 이제(IJE)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확정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색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로컬리즘의 확장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남해를 시작으로, 이후 만들어질 지점들은 각각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이제라는 브랜드의 기획 의도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어디에 있어도 말 그대로 이제, 지금 이 순간(at this moment),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공간이기를 바랐으며, 일상을 벗어난 경험의 시간을 뜻하는 '이제'의 가치를 깊이 녹여내고자 했다. 이제의 각 지점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니지만 어떤 지점을 언제 방문하든 '휴식'과 '치유'를 제공한다. 이제의 가치를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해 더욱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 쉼의 시간을 건네길 원한 것이다. 이제 남해점만 본다면 료칸 스타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앞으로 오픈 예정인 여러 지점(2022년 8월 오픈 예정인 경주, 2023년 오픈 예정인 기장, 광안리 등)과 맥을 함께 두고 본다면, 지점마다 확연히 다른 특색 있는 디자인과 차별화된 기획 의도가 느껴질 것이다. 아울러 이제(IJE) 남해는 브랜드의 첫 번째 지점인 만큼 특별한 분들과 작업을 진행했다. 디자인에 더 퍼스트 펭귄, 조경에 라일 스튜디오, 가구에 요고 가구, 비품에 아로마티카와 톤28까지. 또 객실에 비치된 아로마 오일 워머는 임정주 작가님의 작품이며, 레스토랑 그릇은 신동범 스튜디오, 판 스튜디오, 월화수 목공방과 함께했다.

이제 남해의 위치가 가진 고요함은 바쁜 일상이나 도심에 지쳐있는 사람들이 다른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 있는 맥락이었다. 이곳의 공간은 화성을 연상시키는 남해 바다의 물 빠진 특별한 땅을 이곳의 고유한 특성으로 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큰 기획의 방향은 (주)이제가 제안했다. 스파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가장 실무적이고 구체적인 숙제였다. 가족탕이라는 개념의 공간도 있고, 가든이나 옥탑 루프탑이 있는 객실에는 별도의 야외 욕조를 만들고. 한 번의 호텔 경험에 세 가지 타입의 욕조를 넣는 것이었다. 각각의 다양한 상황과 환경으로 욕조와 스파를 경험하게 하면 좋겠다는 의도가 충분히 읽혔다. 더 퍼스트 펭귄은 (주)이제의 기획을 곱씹을수록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물이지만 물에 들어가는 환경이나 느낌이 많이 다를 거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각각 다른 욕조 경험을 줄 수 있을지 재밌게 고민하고 풀기로 했다. 따라서 평소에 쓰지 않은 혹은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어떻게 열어줄 것인가를 이제 남해의 전반적인 주제이자 설계의 기반으로 잡았다. 외부 벽체에 촉각적인 소재를 도드라지게 써서 빛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중정의 대나무 군락으로 바람을 시각화하거나, 공간에 화로를 집어넣는 등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SPACE

의도된 설계 그리고 촘촘한 경험

경상권에서 출발하는 이들에게는 가까울 수 있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꽤나 먼 거리다. 마침내 이제에 도착하면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인상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다. 안면이 있는 누군가의 집 앞에 들어선 듯한 큰 게이트를 만나고, 게이트가 천천히 열리는 짧은 찰나에 기대치와 설렘이 증폭된다. 이제 남해에 드디어 들어서고 리셉션 앞에 주차를 하면 사각형 박스 형태의 리셉션 공간에서 문진표를 작성해 개개인에게 맞는 오일과 티를 추천 받는다. (주)이제는 객실 수를 염두에 두기 앞서 아로마 테라피를 무조건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스테이 내에서 최대한 의미 있고 여운이 길게 남는 진심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 것이다. 수소문 끝에 전문 아로마 테라피스트를 만나 이제의 기획과 의도를 설명하고 사용 방법과 오일 블렌딩 등에 대해 한달 넘게 컨설팅 받은 결과, 이제에 방문하는 이들은 총 일곱 가지의 오일, 네 개의 블렌딩 조합을 추천 받을 수 있다. 추천받은 오일은 객실에 비치된 워머(임정주 작가의 작품)와 스톤을 이용해 아로마 테라피를 이끌어낸다. 바다가 보이거나 바다와 산이 함께 보이거나 산만 보이는 각각 다른 타입의 객실은 실내와 실외, 다른 환경의 두 가지 욕조가 있고, 장작을 태워 불멍을 누릴 수 있는 실외 화로까지 준비되어 있다. 2층 단독 객실을 제외한 모든 객실에 해당된다. 실내 욕조는 히노키 편백 나무를, 외부 욕조는 대리석 화강석을 썼다. 같은 객실에 있는 욕조지만 몸을 물에 담갔을 때 완전히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실내 욕조는 전체적으로 아늑하고 촉촉한 느낌이지만 실외 욕조는 날이 선선하거나 추울 때 얼굴과 상체는 차갑고 물속에 담겨 있는 하체는 따뜻하다.

별도로 구성된 별채 탕은 1일 1회 45분, 객실 예약 순서에 따라 체크인 전일 또는 예약 당일 유선으로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욕조가 구비된 공간 중에 가장 내밀하고 고요하게,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프라이빗한 분위기에서 티와 스파를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다. 높은 담벼락이나 대나무 처마 등을 설치해 내부를 안정적으로 가려줘 밀도 높은 스파 경험을 할 수 있다. 별채 탕은 쓰임에 따라 역할이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들과 함께일 때는 욕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커플이 대화 나눌 수 있는 공간일 테고 연인이나 부부가 사용할 때는 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지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활용성 아래 더 재미있고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다양한 스파와 물의 경험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객실에서 별채 탕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제 뒷산의 대나무 군락지를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중정을 빙 둘러 가야한다. 중정은 바람을 시각화한 공간이다. 두 동 사이의 열린 틈으로 부는 바람에 대나무가 흔들리는 모습과 소리가 바람을 시각과 청각으로 보여준다. 약 1,000주 가량의 대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지나가는 길목에서는 벽돌을 쌓아 만든 단단한 면에 시간의 흐름, 빛의 움직임이 보인다. 의도된 설계와 길어진 동선이 촘촘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한편, 머무르는 곳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제의 핵심 포인트인 요리와 식사. 이제 남해의 석식과 조식은 이용료에 포함되어 있다. 석식은 해산물을 주제로 한 한상과 한우 투뿔의 스키야키, 남해 유자로 만든 셔벗이 제공되는데 놀라울 정도의 퀄리티를 자랑한다. 조식 역시 진하게 끓인 걸쭉한 전북죽이 제공돼 아침의 속을 편안하게 달랠 수 있다. 각 지점이 위치한 지역의 특색을 고스란히 담으려는 노력이 선명히 보인다.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까지. 완벽한 머무름이다.
INTERVIEW

stayfolio
IJE NAMHAE
이제라는 이름의 배경을 말씀해주세요.
(주)이제_ 저희는 이제(IJE)라는 브랜드의 네이밍을 확정할 때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색을 담아낼 수 있는 확장성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각 지점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이제(IJE) 브랜드의 기획 의도를 담을 수 있는 공간. 어디에 있어도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 at this moment, 이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공간. 그래서 일상을 벗어난 경험의 시간을 뜻하는 이제(IJE)로 브랜드 네이밍을 확정하게 되었어요. 이제(IJE)의 각 지점은 다양한 특색을 지니지만, 어떤 지점을 방문하든 '휴식'과 '치유’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이제의 가치를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고, 이 공간의 첫 번째가 남해점입니다.
이제 남해의 기획 과정이 궁금합니다.
더 퍼스트 펭귄 최재영 디렉터_ 큰 기획의 방향은 클라이언트가 주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스파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욕조가 세 개나 된다. 그래서 각각의 좀 다른 경험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가족탕이라는 개념의 공간도 있고 가든이 있는 객실 혹은 옥탑 루프탑이 있는 객실에는 야외 욕조를 또 만들고. 그렇게 되면 사실 한 번의 호텔 경험에 세 가지 타입의 욕조가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갸우뚱한 부분이 있었는데,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환경으로 스파를 경험하게 하면 좋겠다는 의도가 그런 공간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의아했으나 곱씹을수록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같은 물이지만 물에 들어가게 되는 환경이나 느낌이 무척 다를 거라 생각해서, 어떻게 하면 다른 욕조 경험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 중 재미있는 결과물이 많이 나왔어요. 아무래도 신축이 아니니까 이 점이 가장 큰 실무적 숙제였어요.
룸이나 프로그램 구성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모든 객실마다 외부 환경과 연결했으면 좋겠다는 공식을 세웠는데 완벽히 성립시키지는 못했어요. 중간층는 방 몇 개가 단독의 룸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게 조금 아쉽지만 리노베이션이다 보니까 어느 정도 타협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객실은 실내와 실외 공간이 수평적 혹은 수직적으로 반드시 연결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같은 욕조라도 실내외 욕조의 느낌과 소재가 각각 다릅니다. 실내 욕조는 히노키, 편백 나무고 외부 욕조는 대리석 화강석을 썼거든요. 같은 객실에 있는 욕조지만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또 물에 몸을 담갔을 때 공기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실내에 있을 때는 아늑하면서 습한 느낌이지만 서늘한 계절에 실외에 나갔을 때는 얼굴과 상체는 차갑고 물속에 담긴 하체는 따뜻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니까요. 이런 느낌을 상상하면서 다양한 스파 경험을 설계했으며, 이 설계의 핵심이 실내와 실외 공간을 붙어있게 합니다.
건물이 가진 힘 있는 외관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더 퍼스트 펭귄 최재영 디렉터_ 건물이 디귿 자 형태로 두 동이 붙어 있는 기본적인 배치 자체는 건들지 않고 존중했어요. 다만 이제 어디로 열어주고 어디로 막아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면서 객실에 머무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해 바깥쪽을 확실히 열어줄 수 있게끔 설계했습니다. 사실 원래 시안에서는 안쪽도 굉장히 많이 열려 있었어요. 하지만 고민하던 중, 오히려 호텔을 딱 처음 목도했을 때 호텔이 주는 인상이나 메시지가 강렬히 느껴지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 안쪽은 폐쇄적인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구조는 결국 소재와 연결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제에 사용된 소재는 남해 일대에 있는 땅의 색과 흡사한 벽돌을 찾았어요. 땅이 굉정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가장 유사한 색깔의 벽돌을 찾아내어 땅의 이야기와 건물이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을 설계했습니다. 시공 과정에서도 많이 땅과의 관계성을 많이 고려했어요. 벽돌은 기본적으로 적층 되는 방식이잖아요. 그러다보니 벽돌이 빈틈없이 쭉 이어져 어떤 면으로 존재할 때 느껴지는 힘이 있고, 또 그쪽 면이 빛을 많이 받는 방향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빛이 벽에 맺혀졌을 때 인제 벽돌이 만들어내는 촉각적인 질감을 느껴지게 하려면 안쪽을 폐쇄적으로 막는 게 이런 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안쪽은 막고 바깥쪽은 열어두는 방식을 취했어요.
이제 호텔 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주)이제_ 남해점의 특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로마 테라피로, 오픈을 준비하면서 ‘무조건 하자' 결심했던 것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대한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수소문 끝에 전문 아로마 테라피스트께 저희의 의도를 설명하고, 사용방법, 오일 블렌딩 등을 컨설팅하는 작업만 한 달 넘게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총 일곱 가지의 오일, 네 개의 블렌딩 조합을 추천해드리고 있습니다. 이제(IJE) 에 방문하는 모든 고객은 체크인 시에 간단한 문진을 통해 아로마 오일 블렌드 조합을 추천받을 수 있으며, 객실에 비치된 워머와 스톤을 이용해 아로마 테라피를 체험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스파입니다. 이제의 모든 객실에는 편백나무 욕조가 있습니다. 모든 객실의 모든 투숙객분은 프라이빗 스파를 즐길 수 있어요. 객실을 따라 이어진 야외 테라스에는 또 다른 느낌의 대리석 노천탕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밖에 별도로 마련된 별채탕은 추가 비용 없이 이용 가능합니다. 이제(IJE)는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스파가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스파와 물의 경험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요리입니다. 여행의 추억에 빠지지 않는 게 요리죠. 스테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 요리와 식사입니다. 지역의 특색을 담아내기 위해 남해 특산물을 포함한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곧 오픈 예정인 다른 지점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이제를 경험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많았을까요.
더 퍼스트 펭귄 최재영 디렉터_ 재미있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바쁘대요. 와서 해야 될 일이 많으니까. 밥도 두 번이나 먹어야 되고 별채 탕도 갔다 와야 되고, 객실의 욕조도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보니 2개 다 해봐야 하고, 불멍도 해야 되고, 또 산책도 해야 하죠. 남해까지 갔는데 조금 더 부지런한 분들은 차를 타고 근거리에 한 번 갔다 오시기도 해야 하니 정말 너무 바쁜 거죠. 편안하고 오래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려고 왔는데 정작 바쁜 상황들이 벌어지지만, 이 바쁨은 번잡한 바쁨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제 남해에서 내가 경험해야 될 것들을 그냥 쭉 따라가면서 바쁨을 즐기면, 혹은 바쁨을 여유 있게 누리면 나름대로의 기승전결을 갖는 휴식의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덩그러니 키 받고 문 열고 들어가서 탁 앉았는데 그때부터는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았을 때보다, 쉼이라는 경험을 훨씬 밀도 있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촘촘히 마련된 이곳에서 더 의미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바쁨을 즐기셨으면 합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주란 식당

현지인 가정식 백반 맛집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반찬과 국, 생선구이로 건강도 맛도 다 챙길 수 있는 든든한 한 끼를 전해준다. 가성비 훌륭한 맛집으로 재료 소진이 되면 알려진 영업시간에 상관없이 문을 닫는다. 방문 전에 미리 전화를 해보시길. 빠른 시간 방문한다면 금세 동이 난다는 회 무침도 맛볼 수 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앵강 마켓

남해 로컬 푸드 편집숍 겸 카페 공간. 남해의 특산물을 선별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로고와 패키지를 활용해 남해를 찾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공간에 머물면서 남해 유자로 만든 음료와 양갱을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하며, 남해의 멸치나 해조류 등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많아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스페이스 미조

오래된 냉동 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이다. 우리나라 최남단 항인 미조항에 있어 하루의 조업을 이어가는 멸치 어선들이 활기차게 오고 간다. 크고 육중한 건물 구조를 활용해 지역의 주제에 맞는 전시를 연다. 가끔 음악회도 연다. 한편에는 와인과 남해의 브루어리에서 생산한 맥주, 맛있는 음식과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바도 있다. 여러 라이프스타일 숍과 협업해 여러 소품을 파는 편집숍도 존재한다.

STAY

자연의 장력과 엄마의 품으로의 회귀

수평선, 바다와 나란한 높이를 걷고 바다의 시간, 바다의 밤과 낮에 어울리는 경험이 배치되어 있다. 모든 객실에는 노천탕과 실내 욕조가 있고, 시간 별로 예약해 이용할 수 있는 별채 탕까지 마련돼 있다. 물을 바라보며 물에 몸을 담그고, 마음에 차오르는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 가만히 놓이는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물'에 가장 가까이 당도해 '물' 안에 머문다. 이따금씩 나는 철새와 갈매기,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잔물결, 길고 깊고 멀리 원근감을 지닌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온'이 찾아드는데 따뜻하게 가득 물을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면 더 이상의 무엇이 필요한가 싶다. 애써 찾아야 할 것이 전혀 없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모든 인간은 '물'에서 자랐다. 물을 뿜으며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 고행의 길에 서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기 전의 엄마의 뱃속으로, 그곳에서 손과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안정과 사랑으로 자랐던 그 시기로 돌아가는 듯 하다. 회귀할 수 있는 태고적 그때로 말이다. 잠기고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바다의 땅, 달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한 그 반복처럼 우리에게도 그 힘이 필요하다. 일상에 잠겨 드러나지 못했던 내면의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이제 남해는 그런 힘으로 우리는 이끈다. 보이지 않는 손, 잡아 끄는 힘, 자연의 장력을 닮은, 이제서야 아니 이제라도 닿은 남해 바다의 그곳. 지금에 서서 지금에 집중하고 지금을 감각하고 지금을 느끼게 만드는 곳. 우리는 과거도 다음도 아닌 지금 '이제'에 살아야만 한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흩어진 감각의 조각을 모아 극대화된 감흥

일상의 반복, 무뎌진 굳은살 아래 흩어진 감각의 조각들. 그 조각들을 하나 둘 셋 차례차례 그러모은다. 청각과 후각, 미각과 시각, 촉각까지. 이제 곧바로 다음이 아닌 지금, '이제'에 집중하게 된다. 바람의 시각화, 공기의 시각화, 온도의 촉각화 등으로 본질의 감각은 제 모습을 하게 된다. 느낄 수 있는 만큼 느껴지는 감흥. 감흥의 세계는 그만큼 크고 넓고 깊어진다.

DESIGN

경험의 디자인, 자연과의 일체, 시선의 균형

남해의 땅과 닮은 색의 벽체와 소재, 실내와 실외, 완벽한 밀실에서 누리는 스파 경험. 공간이 아닌 경험이 디자인화, 공간화된 이제는 자연과의 일체화를 꿈꾸고 어느 객실에서든 그것을 이룬다. 빛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 계절의 변화가 보이도록 설계되었으며, 완벽히 차단된 안쪽과 완전히 개방한 바깥쪽의 시선이 균형미를 뽐낸다.

Hospitality

견고하게 다시 쌓는 내면의 힘

벽돌을 쌓아올린 폐쇄적인 중정 공간에 서면 비뚤비뚤 위태롭게 쌓인 마음을 돌아보게 된다. 여러 요소가 모여 한 면을 만들고 그 위로 흐르는 시간과 바람을 시각화한 중정의 움직임은 비뚤어진 마음의 겹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를 갖게 한다. 받아들임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용기. 완벽하게 차단된 안과 완벽하게 열린 바깥의 시선, 의도적으로 구성된 이제 안에서의 움직임과 감각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선 힘이 있다.

PRICE

바쁨을 여유 있게 누리다

이제에서의 머무름은 전혀 여유롭지 않다. 해야 할 것이 많다. 석식과 조식, 밥도 2번이나 먹어야 하고, 해안가를 따라 산책도 해야 하며, 물이 빠진 바다의 땅을 거닐다 노을도 봐야 한다. 실내와 실외의 욕조에 몸도 담가야 하고, 별채 탕을 이용하고 차도 마셔야 한다. 밤이 되면 장작을 태워 불 멍도 해야 한다. 바쁘다. 그러나 여유롭기 위해 바쁘다. 공간에 들어서서 좋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곤란해하는 일이 없이 무의식적으로 촘촘하게 디자인된 경험을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된다. 바쁨을 여유 있게 누리는 것이다.

스테이명
이제 남해

숙소타입
호텔

연락처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양화금로 59-7 (삼동면, 호텔 이제(IJE))

인원 / 객실수
2~4명 / 18객실

가격대
₩450,000 ~ ₩850,000

체크인 / 아웃
16:00 / 11:00

편의시설
아침식사, 저녁식사, 빔프로젝터 또는 TV, 반신욕

PHOTO BY 박기훈, Texture on Texture | WRITTEN BY 김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