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에 형태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낮고 길게 몸을 숙여 대지를 편안하게 보듬으며, 팔을 넉넉히 펼쳐 우리가 뛰어놀 마당을 마련하고, 혹시라도 허기질까 걱정하며 든든한 식사를 내어 주는 모습. 제주시 조천 와흘리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지은 스테이 일일시호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길목마다 고요한 정취가 깃든 이 정겨운 동네에서 진정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일일시호로 향해야 한다. 본래부터 가족이 머무를 집으로 계획했던 만큼 이곳의 공간은 더없이 편안한 표정으로 당신을 반긴다. 가장 완벽한 실용과 미학의 주방이 여기에 있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디자이너이기도 한 호스트의 세심한 관점에 따라 넉넉한 공용 공간과 다양한 집기를 갖추고, 폭 7m의 큰 창 너머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든 파티를 즐길 수 있을 만한 야외 주방이 따로 마련되었다. 공간을 무척 절묘하게 열고 닫아 프라이버시도 걱정 없다. 와흘리의 자연을 스테이로 끌어들이면서도 오붓하고 아늑한 구조를 유지해 잔잔한 바람결에 흔들리는 억새 사이에서 그저 마음 놓고 뛰어놀기만 하면 된다.
자신을 비우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지만, 일일시호에 방문한 이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가득 들고 돌아간다. 머무름을 통해 충만해진 마음과는 또 다른 신체적 충만함이 있다. 손에 잔뜩 묻은 보드라운 흙이나 소매 끝에 달라붙은 이름 모를 씨앗, 좋은 땅에서 맺힌 열매, 그리고 건강한 먹을거리와 놀거리로 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좋은 공간에 감응해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배우게 되는 스테이. 건강한 삶의 방식을 되찾게 하는 일일시호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people
삶을 디자인하는 이들의 만남
가족이 머무를 집을 만들기 시작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제주의 삶을 전하고자 한 배용식 호스트. 스테이 일일시호의 출발점은 한 가족의 취향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공간 콘텐츠 기획, 브랜드 운영에 조예가 깊은 배용식 호스트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박선영 호스트의 감각이 공간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울러 감각이 남다름에도 일일시호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스테이가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편안히 머물 수 있으며, 건강한 먹거리와 즐길거리로 제주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일일시호와 함께 꿈을 꾸며 그 상상을 건축으로 실현한 이는 프래그먼트 스튜디오의 서동한 디자이너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설계부터 산업 디자인까지 공간을 아우르는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야외 주방 등 기존 주거와 다른 공간 요소, 그리고 다채로운 활동 프로그램을 포괄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듯, 대지와 구조의 한계를 새로운 도전으로 여기며 호스트의 바람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만든 것이다.
제주 조천읍은 배용식 호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었다. 부담스럽지 않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네, 그러면서도 곳곳에 특별함을 간직한 공간이 자리잡고 있는 매력적인 곳. 부부의 첫째 아이 태교 여행부터 조천을 향할 정도였다고. 또한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땅을 돌아볼 때에는 조천에 위치한 와흘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계기는 사소하고도 운명적이었다. 와흘리에서 산으로 향하다 보면 제주의 단 하나뿐인 심야 식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평소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호스트에게 작은 영감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동네를 둘러보니,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바리스타 챔피언이 운영하는 카페와 유기농 재료로 디저트를 만드는 가게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자연을 조용히 벗하기에도 좋고, 도시에서 오더라도 편리함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말 그대로 ‘살기 좋은 동네’.
배용식 호스트의 안내를 따라 와흘리를 마주하게 된 서동한 디자이너에게도 이곳은 특별한 지역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주도 하면 자유로운 바다의 이미지나 성산의 안개 서린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는데, 와흘리에서는 제주의 내륙으로 점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시와도 살짝 거리가 있으나 그렇다고 완전한 대자연 속은 아닌 곳. 주위의 모든 것과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홀로 숲속에 걸어 들어가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한다.
MAKING STORY
작은 집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과 대지의 특성, 그리고 아이가 있는 가족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구조를 고려해야 했다.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 거대한 콘크리트 매스로 본동을 완성하고 보니 이웃집이 지나치게 가까웠으며 언덕에 자리한 묘지가 시야에 걸리는 이슈가 있었다. 동네의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터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개선할 방안이 묘연했다. 이에 프래그먼트 스튜디오를 만난 후, 공간의 중심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는 해결책이 이루어졌다. 기존의 낮고 긴 콘크리트 건물과 유사한 형상의 파빌리온을 평행하게 배치하고 서로 마주보게 함으로써, 시야를 단정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다양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공간의 가장자리를 적절히 개폐해 자연 요소를 들이면서도 울타리처럼 아늑한 구조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고 활동적으로 놀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더했는데, 이러한 가치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 7m에 달하는 큰 창과 너른 잔디밭, 파빌리온이다. 배용식 호스트는 여행을 떠나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항상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말하던 문장을 떠올렸다. 만지지 마, 뛰면 안돼, 항상 조심해야 해. 하지만 가족 여행을 떠나 모든 구성원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또한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약이 최소화되어야만 했다. 일일시호는 거실과 침실까지 벽 때신 긴 통창이 이어지는 구조다. 부모는 주방과 거실 등 어디에 있더라도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뛰노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 마음이 놓이고, 아이들 역시 시야에 항상 부모의 자취가 담기므로 안정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내부 주방과 파빌리온에 위치한 외부 주방 역시 가족의 머무름을 배려한 결과다. 가족이 모여 요리하고 식사하며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파빌리온은 모래 놀이, 체험 프로그램, 모닥불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져 일일시호의 작은 복합문화공간을 담당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완성된 공간 구조는 조경과 건축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모든 요소는 ‘프레임’으로서 공간과 환경을 이어준다. 7m에 이르는 본동의 긴 창, 파빌리온의 틈, 그리고 본동과 파빌리온을 잇는 터널에 이르기까지. 외부에서 바라본 일일시호는 큼직한 매스감이 강조되었으나 내부로 들어서면 강약을 주어 탄생한 여러 프레임이 자연 환경을 담아내는 것이다. 특히 본동과 파빌리온을 연결하는 터널은 서동한 디자이너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한쪽에서는 안방의 일부가, 다른 한쪽에서는 주방의 일부가 보이며, 이곳에는 조명도 설치하지 않아 외부 환경을 깊숙이 빨려 들어가듯 조우하게 된다.
SPACE
낮고 고요한 자세로 제주의 삶을 품다
소담한 자태로 이어지는 귤나무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서면 멀리서 일일시호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아주 낮고 조용한 동네의 분위기를 존중하듯 일일시호의 자세도 무척이나 고요하고 차분하다. 낮고 길게 뻗어 하늘을 넓게 담았다. 어느 곳도 담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지만, 작은 언덕처럼 솟은 콘크리트 단 위를 공간이 가로지르고 있어 그 자체로 제법 프라이빗하다. 넉넉하게 마련된 집 앞 터에 주차를 하고 몇 개의 계단을 따라 오르면 7m 길이의 창을 따라 잔잔한 햇볕이 스며드는 내부가 나타난다. 골조는 다소 서늘하고 단단한 느낌인데 내부는 외부에서 느낀 모던한 결을 살리면서도 따스한 무드를 풍긴다. 전체적인 톤을 유지하되 공간마다 키 컬러를 달리 했다. 현관 옆에 있는 작은 방은 디자이너의 서재. 블랙 컬러를 메인으로 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깔끔한 라인감의 벽 선반과 디자인 가구, 벽에 걸린 예술 작품, 그리고 수평과 수직으로 벽을 길게 절개해 만든 창이 하나 되어 자연스러운 몰입의 온도를 맞추어 준다.
살랑이는 반투명 커튼을 따라 공용 공간 깊이 들어서면 하나로 이어진 거실과 주방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거실에서는 고급스러운 안마의자와 무심히 놓인 잡지와 에세이, 하나씩 들여다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 굿즈를 만나게 된다. 아울러 일일시호에는 실내와 실외에서 총 두 가지 주방을 경험해볼 수 있는데, 실내 주방은 세련된 버건디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으며 실외 주방은 적벽돌을 활용해 콘크리트의 물성과 오묘한 조화를 꾀했다. 내부 주방에는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었던 감각적인 플레이트부터 피자 커터까지 다양한 집기가 구비되어 집보다 더 풍족한 요리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기본적인 조미료나 향신료 또한 마련되어 호스트의 배려가 느껴진다. 내부의 활용된 소재는 대부분 친환경으로 채택해 어린 아이들, 아토피 등의 질환을 가진 분들도 편안히 머무를 수 있다. 주방 구석의 벽처럼 비밀스러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정원을 바라보며 온욕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이 나타난다. 또한 안쪽의 독립된 침실은 통창을 계획하되 터널을 향해 열어 한결 프라이빗하면서도 특별한 뷰를 선사한다.
일일시호에서는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도, 문득 공간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공간의 방향이 명확해서다. 호기심에 이끌려 터널을 따라 파빌리온으로 걸어 나서고, 캠핑 의자에 걸터 앉아 잔디밭 너머로 저무는 태양을 바라본다. 파빌리온은 모던하고 깔끔한 생김새와 달리 정겨운 즐길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화로를 꺼내 고구마와 마시멜로를 구워먹을 수도 있고, 목공 프로그램을 경험하거나 아이들의 작은 놀이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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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stayfolio
Daily Shiho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 논의된 점들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어떤 니즈가 반영되어야 했나요?
[배용식 호스트]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요. 일일시호에서는 부모가 밥을 준비하든 거실에서 쉬든 큰 통창으로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반대로 아이들도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점 하나만 보시고 오시는 손님들도 계세요. (웃음) 그리고 실제로 사는 집 같은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일일시호에는 모든 집기류가 있습니다. 세탁기에 건조기까지 있어서 바닷가에서 놀고 들어온 후에도 편해요. 내부를 안방, 서재 등의 이름으로 구분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여행과 주거 사이의 경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고자 했어요.
일일시호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배용식 호스트] 건물을 처음 지은 후 명절에 가족 공모를 했습니다. 선정된 분에게는 제주도 여행을 보내 드리겠다고 했어요. 그중 장인 어른께서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셨고요. 항상 장인 어른께서는 저희에게 ‘그저 평온하고 즐거우면 그 자체로 가장 이상적인 거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이걸 한자로 표현하면 ‘일일시호일’이 되는데, 와흘리에서 공간을 경험하다 보니 저도 그냥 다른 근심 걱정 없이 즐겁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일시호’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여담이지만, 장인 어른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50개였어요. 깜짝 놀랐죠. 선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웃음)
일일시호의 공간적 매력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서동한 디자이너] 저희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외부 주방이었어요. 이전에는 계속 서울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외부에 물을 사용하는 공간을 만들 때에는 유지 보수 문제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호스트님이 공유 주방을 운영하시기도 해서, 외부 주방을 재미있는 구조로 디자인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외부 주방을 포함한 파빌리온은 면을 교차해서 만든 틈으로 자연이 언뜻 보이게 의도했어요. 본동은 상대적으로 닫혀 있는 공간, 파빌리온은 반 정도 열려 있는 공간으로요. 경계를 적절히 풀어주면서 또 구분지어주려는 맥락이 있었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이 실제로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엄격하게 가이드를 만들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울타리 안에서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놔 두는 모습이요. 일일시호를 떠올리면 자유롭고 넓은 품으로 큼직한 경계를 만들어서,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아버지가 연상돼요.
주방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배용식 호스트] 비슷한 시기에 용산에서 도시산장이라는 이름의 식료품점이자 공유 주방을 시작했어요. 주방을 무척 중요시 생각했고, 또 먹거리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았죠. 게다가 막상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맛집을 가기 힘드니까 숙소에서 먹기 시작한 점도 영향이 있었어요. 숙소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확인했던 점이 주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를 관광지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풍부한 해산물이 나는 지역적 특징과 생활적인 요소로 바라봤어요. 다양하고 건강한, 그리고 신선한 식재료를 즐기는 것이 제주를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주 전통 가옥에는 물주방이 따로 있어요. 외부와 연결되어서 생선이나 해산물을 가다듬는 곳이요.
머무는 분들이 일일시호의 주방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길 바라시나요?
[배용식 호스트] 초반에는 조식을 해드실 수 있는 재료를 기획했었어요. 서울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다 보니 제주의 건강한 베이커리나 샤퀴테리, 계란 같은 식재료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제주 로컬 브랜드를 발굴하고 다양한 재료로 아침을 차려 드시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는 유료 서비스로 운영했었는데, 내년부터는 재료를 조금 더 추려서 기본적인 경험으로 제공해드리려 합니다.
공간에 활용된 소재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서동한 디자이너] 저는 콘크리트 자체를 인공적인 소재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인간이 면과 직선을 만들다 보니까 상업적인 느낌이 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환경의 일부라고도 생각하거든요. 어떠한 석재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요. 대신 포인트가 될 부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일일시호의 주요 공간인 야외 주방에는 적벽돌을 사용해 살짝 힘을 줬죠. 내부 주방 가구에도 붉은 톤을 입혔어요. 인테리어 소재로는 친환경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어요. 가족 단위의 손님과 어린 아이들이 많이 오니까요. 바닥은 먹어도 될 정도에요. (웃음)
일일시호에 머무른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배용식 호스트] 오셨던 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시더라고요. 재방문이 꽤 있는 편이에요. 이럴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정말 집에서 머무르듯이 장기 숙박 하고 가시는 손님도 계세요. 매년 겨울마다 연말을 보내러 오시는 분, 일주일 내도록 묵고 가시는 분. 이렇게 편안하게 장기 숙박이 가능한 숙소는 흔치 않다고 자부합니다. 이정도로 집기류가 잘 갖춰진 곳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요리를 잘 하시는 이모가 오신 적 있는데, 빈 손으로 오셨다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싸고 돌아가시는 거예요. 주방이 쾌적하고 모든 도구가 있는 데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야채가 참 맛있잖아요. 그래서 이모님들은 일일시호에 머무르면서 제주도 김치를 배우시더라고요. (웃음) 이 외에도 음식을 잔뜩 해서 돌아가세요. 이런 모습 볼 때마다 ‘그래, 저렇게 사용하려고 일일시호를 만들었지’ 라는 생각을 하죠.
가장 기분 좋게 느껴지는 시간대는 언제이신가요?
[배용식 호스트] 식탁에서 다같이 아침을 먹는, 8시에서 9시 사이의 시간이요. 집에서 먹는 아침의 분위기와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아이들은 밥 먹어라 할 때까지 밖에서 놀거든요. 아이들을 부를 때 즈음, 저녁 차리기 직전의 해 지는 모습이 정말 예뻐요. 특히 파빌리온의 틈 사이로 보는 하늘의 색이 아름답습니다.
[서동한 디자이너] 일일시호에서 생활해보니까 8시, 9시의 시간대가 참 좋았어요. 공기도 무척 상쾌하고, 햇빛과 외부 풍경, 콘크리트 그림자의 대비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공간이 지닌 매력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배용식 호스트] 일일시호는 현재 진행형인 건물이에요. 매번 새롭게 완성해가고 있어서요. 요즘 고민중인 공간은 파빌리온의 터널이에요. 여백의 공간이죠. 터널에 식물을 채워 볼지, 야외 영화관처럼 만들지, 와이프와 항상 이야기를 나눠요. 그래서 더 즐겁기도 하고요. 어떤 하나의 여지, 그리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여행지
와흘메밀마을
10만 평에 달하는 넓이의 메밀밭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제주의 끝없는 수평선을 닮은 푸른 지평선 사이를 거닐어 보자. 5월 혹은 11월에 와흘리를 들린다면 메밀꽃이 만개한 축제 기간을 절대 놓치지 말 것. 일일시호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해 더욱 편리하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와흘0626
문을 들어선 순간, 발 디딘 땅이 일본 도쿄로 바뀐다. 백여 가지의 일본 술을 잔으로 즐길 수 있는 일본식 심야 주점. 꼬치부터 야끼소바까지 다양한 안주 역시 하나같이 훌륭해, 일본에서 온 부부의 내공 서린 손맛이 느껴진다. 배용식 호스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던 유일무이한 심야 주점이다.
조천밀밀면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떠오르는 조천밀밀면. 적당한 밀도의 면발에 침샘을 자극하는 양념을 버무린 비빔밀면과 은은히 바다 향이 나는 온밀면 모두 최고의 선택이다. 밀면을 주문하면 기본으로 흑돼지불고기를 슬쩍 내어 주시는 정감 어린 맛집.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카페
트라인커피
제7회 코리아 바리스타 챔피언쉽 1위에 입상한 윤혜원 바리스타의 제주 카페.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크림롱블랙과 하겐다즈 아몬드 아포카토는 맛과 비주얼 모두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빈티지 찻잔이 줄지은 디스플레이 장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덤.
STAY
아주 길고 또 아주 짧은 일일시호의 시간
일일시호의 시간은 다른 곳과 다르게 흐른다. 시야를 가득 채운 노을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가도, 주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잘 차려진 제주에서의 한 끼를 나눌 때면 시간이 쏜살같이 달려간다. 일일시호에 첫 발을 디딘 후부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여행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본다.
4:00 pm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좋은 날
무거운 것은 땅으로 낙하하고, 가벼운 것만 위태하게 남은 가을과 겨울의 경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일일시호를 마주했다.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좋은 날이 될 것이라는 일일시호의 따듯한 메세지를 마음에 들여 본다. 낮고 고요한 풍경에 몸을 뉘이니 하루를 잘 살아낼 용기가 차오른다.
6:00 pm
노을로 붉게 물든 뺨
저 멀리 솟은 산 너머로 붉은 해가 가라앉는다. 일일시호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감상하기 참 좋은 곳이다. 공간과 나는 이 자리에 그저 가만히 머무름에도, 창의 크기와 모양, 방향이 다채로워 곳곳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옅은 분홍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나의 온도가 꼭 같다.
10:00 pm
답이 없는 질문에 빠져드는 밤
캠핑 의자를 펼치고 모닥불에 둘러 앉아 근원적인 따스함을 느낀다. 타닥거리는 화로의 불 튀기는 소리와 공간의 틈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야기가 깊어가고 답이 없는 질문에 빠져들지만, 모든 것이 괜찮은 밤이다. 같은 온기를 나누는 우리는 서로를 지켜줄 것 같다. 슬쩍 던져 넣었던 고구마는 고소하고 끄트머리가 몽땅 타 버린 마시멜로는 여전히 달콤하다.
8:00 am
반드시 챙겨야 할 아침 식사
분명 늦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니 이른 아침이다. 지난밤 깊이 잠들었는지 아주 상쾌한 기분.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준비해 본다. 여행지에서도 아침을 거르기 십상이었는데, 고즈넉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일일시호의 주방은 게으른 나를 기꺼이 움직이게 한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제주다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주방
조천의 자연이 어디에나 있다. 하늘을 지붕 삼고 잔디밭을 바닥 삼아 만든 주방이라니.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웃도어 키친에서 요리하는 경험이 색다르다. 좋은 공간은 삶을 바꾼다. 취향을 확장한다. 일일시호의 주방이 있기에 요리의 즐거움을, 제주의 다채로운 먹을거리와 제주 땅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DESIGN
모던하고 정갈한 물성과 구조의 조화
비움과 채움을 절묘하게 구성한 콘크리트 매스가 지평선을 닮은 모양새로 가지런히 엮여 있다. 풍경을 담는 크고 작은 틈, 창, 그리고 직선과 곡선을 아우르는 입체적 구조는 머무르는 이의 시선에 우연한 쉼과 예술적 감흥을 전한다. 내부 역시 모던한 감각의 인테리어가 펼쳐진다. 단정한 라인과 어울리는 공간의 매트한 촉감이나 블랙 그리고 버건디 컬러가 그림 같은 공간을 완성한다.
Hospitality
가족의 집에서 건강한 활력을 얻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집에 놀러온 것 같다. 디자인 서적이나 인테리어 소품, 굿즈, 어메니티 등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즐길거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가, 완전히 해가 저물고서는 모닥불에 호스트가 준비한 마시멜로와 고구마를 구워 먹어야 한다. 머무르기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PRICE
예사롭지 않은 취향의 공간
디자이너 부부의 또렷한 취향을 담은 오리지널 가구와 브랜드 제품, 작게는 친환경 비건 케어 제품까지 공간을 구석구석 채우고 있다. 하나하나 가치 있는 큐레이션이다. 꼭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었던 가구 혹은 소품을 직접 경험하고는, 머릿속으로 나의 집을 떠올리며 이 취향을 슬쩍 이식해본다. 과연 디자이너의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