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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독일박
why

한권의 책으로 일상의 결핍을 채우는 시간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쏟아내는 새롭고도 감각적인 자극들에 책 한 장, 책 한권에 오롯이 집중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은 “느림을 동반”하고 “시간을 요하는 일”이라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루이스 버즈비, 『노란 불빛의 서점』). 책은 “읽힐 때에만 온전히 존재하는 가능성”인, “음악의 악보나 씨앗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움틔우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주의집중이 필요하다(레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좋은 책과 말일수록 천천히 읽고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정신의 비용’은 필수지만 스마트폰 하나면 쉽고 지적 부담도 적은 방대한 양의 정보들에 접속 가능한 탓에 좀처럼 치르려 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진단처럼 책을 읽는 일은 이제 “시대를 거스르는 실천”이 되어버린 것도 맞다(박총, 『읽기의 말들』).

그럼에도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하는 책과 처음과 끝이 분명해서 우리에게 돌아가야 할 곳을 분명하게 일러주는 종이책의 물성은 가히 대체불가하다. 책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서 느린 걸음처럼 한 장 한 장 읽어 가다보면, 책은 나를 읽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무심코 펼쳐든 책에서 내 마음을 읽는 글귀를 만나 위안을 얻는가하면, 자주 생각하면서도 이를 붙잡을 재간이 없어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길어 올린다. 책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의 가풀막을 오르다 그대로 주저 않고 싶을 때 부드럽게 손잡아 일으켜 준 손길”이 되어주기도 한다(박총, 같은 책).

서촌 누하동의 좁은 골목길 끝, 포도나무 아래 만나는 일독일박은 비밀스러운 작은 중정을 품고 있는 고즈넉한 작은 한옥 스테이다. 일독일박은 그 이름 그대로 한권의 책과 머무르는 쉼의 하루를 선물한다. 우리에게만 온전히 허락된 것 같은 중정의 하늘 아래 책을 읽고 창호에 새겨드는 빛으로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책이 피워내는 느림의 자장에 삶의 속도를 잠시 잠깐 늦추는가 하면, 책의 온기로 삶의 온기를 채운다. 천천히 한 줄 한 줄 의미를 되새기면서 일상을 다시금 차분히 이어갈 내면의 힘을 얻는다.

스테이폴리오와 지랩은 한권의 책을 읽기 위해 하루를 묵는다는 생경한 발상으로 쉼에 있어 조상들의 오랜 지혜를 전한다. 조선 시대 풍류를 이야기하는 누와에 이어 선보이는 두 번째 장소다. 젊은 문신들에게 책 읽는 시간을 하사했던 세종대왕의 사가독서제(賜暇讀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서촌의 오랜 결로 녹아 있는 책의 이야기를 쉼을 위한 고립과 몰입의 장소로서 제시한다. 책을 매개로 책과 책 사이, 사람과 책 사이를 잇고 여백에 머무르게 하는 일독일박으로 사색적 머무름을 잊은 우리에게 책과 함께 하는 느림의 여정으로 초대한다.
people

서촌의 사이로 맺어진 사람들이 만든 공간, 일독일박

책은 사람을 잇고, 또 다른 책을 연결한다. “확실히 책은 사람을 부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는데(박총, 같은 책), 책과 관련한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서촌도 마찬가지. 서촌과 책이 자연스레 불러들인 인연들이 한데 만났다. 일독일박은 서촌의 작고 낡은 한옥을 사서 손수 고치고 매만지며 4년 넘게 살아온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공간을 스테이폴리오에 맡기고 싶어 하면서 시작되었다. 한옥 본연의 미감을 살리면서도 시대 적절한 해석을 불어넣는 그들의 행보에 이사로 비워두게 된 한옥을 흔쾌히 내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부부의 한옥은 그들의 감성으로 세심히 매만진 단아한 느낌의 한옥에, 고유한 삶의 방식과 취향이 자연스레 배여든 삶의 흔적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시선이 닿는 곳곳마다에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마치 ‘반려사물’처럼 삶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권의 서점을 기획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된 느낌이 있어 자연스레 책을 공간의 콘셉트로 잡아나갔다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발견한 사가독서제로 서촌의 오랜 결로 녹아 있고 쉼의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책의 이야기를 길어 올렸다. 서촌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스테이라는 쉼의 공간과 아날로그적 책의 감성이 맞닿는 지점을 단단히 묶는다. 그리고 이는 ‘한권의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의 현재적 가치를 공간 경험과 이야기로 일깨우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책과 책 사이, 책과 사람 사이를 비워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둘러싸여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안기는 공간이기 보다 그저 자연스레 책에 손이가고 읽고 싶어지는 공간을 만들려 했다. 책도 책이지만, 쉼이라는 스테이 본연의 기능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었다. 한권의 서점 지기들과 세심히 선별한 책들로 넘치지 않을 만큼만 배치하고, 일관된 톤 앤 매너로 한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한국적 감도를 유지하였다.

책과 관련한 경험을 넘침 없이 담았다. 마음에 드는 책의 글귀를 필사하는 것은 물론 책 속 문장을 누군가의 손 글씨로 적어둔 ‘책잡이’로 책을 소개한다. 책과는 상관없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글을 쓸 수 있도록 문구류를 직접 제작해 종이책의 촉감을 더했다. 책가도(冊架圖)의 콘셉트로 만든 책갈피며, 기록할 록(錄), 문서 책(冊)을 새겨 넣은 책자로 일독일박만의 고유한 색을 불어넣었다. 주음야독(晝飮夜讀)이라는 웰컴 드링크로는 동네의 삶을 스테이로 녹여내기도 했다. [주음야독은 서촌에 위치한 ‘참바’의 임병진 바텐더와 함께 만든 논알코올 칵테일이다.]

이러한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지랩과 스테이폴리오는 잊혀 가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을 한결 더 단단히 이어줄 오래된 것의 감성과 감각을 일깨운다. 앞으로도 서촌 곳곳에 숨어 있는 숨은 스팟들을 지스테이와 연결하는 서촌유희라는 큰 틀 아래, 로컬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콜라보레이션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서촌에서 이들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는 충분하다.
location

서촌의 골목과 책 사이로 느리게 걷는 하루

빠르게 흘러가는 서울 도심 속 그 흐름에 비껴나 있는 동네가 있다. 인왕산 자락 아래 경복궁 서쪽 마을, 서촌이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과 기억을 가득 품고 있는 좁고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펼쳐진다. 개발의 논리를 앞세워 매일 다른 옷을 새로이 갈아입는 서울의 풍경과 다르게 이곳에서만큼은 고즈넉한 골목길 사이로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한옥과 생활의 더께가 쌓여 있는 옛 길의 흔적들은 현대의 모습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원하는 삶의 모양대로 꾸밈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촌에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다른 곳에서는 쉬이 느낄 수 없는 어떤 독특한 정취와 서정이 깃들어 있다. 통인 시장길과 세종마을길에 들어서면 사람다운 정감이 넘쳐나고, 한 모퉁이만 돌아서면 작은 규모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만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작지만 뚜렷한 색깔을 가진 가게들이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며 서 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삶을 가꾸며 서촌의 고유한 결을 이어간다.

서촌에 쌓인 책과 관련한 역사적 켜도 깊고 너르다.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서촌에서 나고 자랐다. 당시 준수방이라 불리던 서촌에서 세종대왕이 태어났으며, 송강, 정철, 이항복의 집터가 있고, 근대에는 윤동주, 노천명, 이상 등이 머물렀다. 책은 이렇듯 서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단단한 결이자 이야기이지만 어쩐지 책방만큼은 오래 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좋아했던 동네 서점 가가린마저 사라지자 스테이폴리오 이상묵 대표는 세평 남짓한 사무실 1층의 빈 점포를 ‘한권의 서점’으로 오픈하기로 결정하였다. 서촌 고유의 결을 잇기 위해서다.

이번은 스테이의 공간으로 책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책이 주는 물질적 감촉과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작은 한옥을 만나 서촌의 느린 서정을 이어간다. 좁지만 재미난 진입로를 거쳐 한 번 두 번 세 번 꺾어 들어가다 보면, 포도나무 넝쿨 아래 작은 나무 대문을 만난다. 책을 펼치듯 열고 들어서는 디귿자 한옥이다. 낮에는 느린 걸음으로 서촌의 골목길을 걷고 밤에는 완벽한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에 머물면서 한권의 책을 읽는 하루다. 일독일박은 그러한 골목길 끝에서 서촌으로의 여행을 완성시킨다.
MAKING STORY

일독일박 프로젝트의 시공 및 가구 제작은 그리즈(GRIDS)에서 맡아주었다. 그리즈와는 누와에 이어 함께 하는 두 번째 프로젝트다. 책가도를 은유한 책장 및 가구 디자인을 협업해 완성하였다. 격자무늬 창살과 프레임이 많아 무늬가 비교적 적은 한지로 간결하게 접근하는가 하면, 조도 및 조명 디자인에 신경 썼다. 폴 헤닝슨의 PH시리즈로 공간에 부드러운 빛과 감성을 더하고, 스테이바인더(Staybinder)의 IoT서비스로 공간 내부의 빛과 음악을 조절, 선택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중정의 공간에도 섬세한 매만짐을 더했다. 정화조 위치와 배관 문제 때문에 욕조 대신 작은 족욕탕을 만든 것이 아쉬움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책과 함께 하기에는 더 적합한 공간으로 녹아들었다. 대나무로 감싼 벽과 어느 곳에 있어도 시선에 닿는 자작나무 한 그루는 한옥의 소박한 멋스러움을 배가시킨다. 이번 일독일박 프로젝트에도 어김없이 꼬또네(COTONE)와 수토메 아포테케리(Sutome Apothecary)가 함께 하였다. 꼬또네의 패브릭과 수토메 아포테케리의 향은 살에 닿는 촉감과 온기, 그리고 향으로 머무르는 경험의 기억에 깊은 각인을 남긴다.#
일독일박의 주인 부부는 오래되고 낡은 누하동 도시 한옥을 현대 생활에 맞게 고치되, 고유한 한옥의 멋과 담박함을 살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매만졌다. 수선이 잘 이루어진 곳인데다 부부의 감성으로 세심히 가꾼 덕분에 건축적으로는 손댈 필요가 없었다. 다만 독채스테이라는 특성에 맞게 단정히 정리하고 비워낼 필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은 본래 옷방과 세탁실이 있었던 다락 아래의 다이닝 공간이다. 최대한 비워내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을 배치하고 독서를 비롯한 식사와 다도 등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도록 꾸몄다.

낮은 층고의 2층 다락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두고는 여러 이견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낮은 소반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으로 꾸며 여백의 미가 깃들도록 했다. 홍송은 높은 내구성을 자랑하며 한옥자재로는 최고급 소나무 목재에 해당하지만 불그스름한 색감이 있어 이를 덜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 톤 다운하는 어두운 색감과 질감으로 톤 앤 매너로 잡아 무게감을 더하고, 책을 읽는데 편안함을 주는 가구들로 제작, 배치하였다.#
SPACE

책과 책 사이에 머무르게 하는 또 하나의 공간

느린 골목길 풍경을 지나 들어서는 일독일박은 책으로의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견인의 공간이다. 한줌의 자연을 마당 안으로 온전히 들이고 있는 디귿자 한옥은 비밀스런 중정을 품고 책과 사람을 자유로이 머물게 한다. 바람이 스미고, 바람의 결이 새겨진다. 책이 여는 세계에 나를 내맡기고 침잠하게 하는 하룻밤으로 책장을 넘기며 삶의 결을 다듬는다.

책을 읽고 그 여운을 글로 남기는 일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도록 접근한 공간이다. 여럿이서 원하는 곳에 앉아 ‘따로 또 같이’ 책을 읽고, 책을 매개로 손에 쥔 책을 내려놓고서 이야기를 나눈다. ㄷ자 구조로 침실과 다이닝룸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어느 곳에 있어도 시선이 이내 닿고 부딪친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한옥의 작은 중정과 중첩되는 겹겹의 창들에 책을 보느라 한껏 좁아져 있던 시선에 트인 여유치를 준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제안도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대문을 책을 펼치듯 열고 들어서면 한옥 처마 밑, 따스한 햇살 아래 중정의 자작나무가 반긴다. 좌측으로는 세심한 집기들로 꼼꼼하게 구성된 키친과 거실이 있다. 은은한 빛을 투과하는 한지, 중정을 향해 있는 창가에는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호 문 너머에는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침실이 자리한다.

포근한 이불 아래 눈을 뜨면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새겨지는 은은한 빛의 물결에 시선이 닿는다. 또 손을 뻗어 마당 쪽으로 창을 열면, 중정의 자작나무와 새겨지는 그림자가 나를 반기는 공간이다.

중정의 우측은 큰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 공간으로, 함께 모여 식사와 다도, 그리고 책의 이야기가 오간다. 그 옆 원목의 사다리를 오르면 빗소리와 빛이 떨어지는 열린 창 아래 또 다른 이부자리가 있는 다락을 만난다. 발끝 아래 부서지는 햇살과 고스란히 드러난 서까래와 천창을 보며 잠들거나, 이불 위에 앉아 책을 읽는 아늑한 경험을 안긴다. 가지런히 놓인 소반 위에는 종이의 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방명록 노트와 책갈피와 필기류가 놓여 있어 연필 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글귀를 필사하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을 수 있다.

우리에게만 온전히 허락된 것 같은, 디귿자 처마 하늘 아래 빛이 부서지는 중정의 공간은 일독일박에서의 하룻밤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자연의 변화, 시간의 흐름을 안과 밖 큰 구분 없이 들이는 한옥 툇마루에 앉아 족욕탕에 발을 담그며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를 푼다. 그리고 그간 부족했을 자연에 대한 갈망과 땅의 기운을 채운다. 서촌의 작은 한옥으로 조급한 세상에서 벗어나 책으로 파고들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가 생겼다.
INTERVIEW

지랩과의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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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우연한 계기로 일독일박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누하동의 작은 한옥을 어떻게 발견하고 스테이의 공간으로 접근할 수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박중현] 서촌의 오래되고 낡은 작은 한옥을 사서 직접 고치고 매만지며 살아온 건축주 부부가 자신들의 공간을 스테이폴리오에 맡기고 싶어 하시면서 시작되었어요. 서촌차고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랩의 클라언트로 만나 뵌 분들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지인의 소개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죠. 서촌의 색과 결에 맞게 한옥의 가치를 현대적으로 지켜가는 움직임에 공감을 해주신 덕분인지 이사를 가시면서 일독일박의 한옥을 전세로 내어 주셨어요.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스테이폴리오와 프로젝트 기획 및 디자인, 브랜딩 과정을 함께 했고요. 때마침 <한권의 서점>을 진행하고 있던 터라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어요. 책을 오롯하게 즐길 수 있는 장소, 또는 한권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스테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서촌이라는 동네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 결을 지켜가고 싶어 하는 분들을 만나 실현할 수 있었어요.
일독일박의 한옥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과 첫인상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이곳이 기존의 전통 한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나형] 서촌에서도 보기 힘든 층고와 천창을 가진, 독특한 디자인의 한옥이었어요. 작고 좁은 골목길 끝에 만나는 단정하고 정갈한 느낌의 ㄷ자형 한옥에, 오래된 포도나무가 입구를 지키며 대문을 품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 건축주의 감성으로 하나하나 매만진 한옥인데다 4년 넘게 산 주거 공간이어서 그런지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이었어요. 고유한 삶의 방식이 공간에 배여 들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생활의 필요에 의해 소중히 가꾼 흔적과 삶이 묻어나는 한옥이었어요. 반려동물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계셨는데, 고양이가 자유롭게 마당을 넘나들 수 있도록 창호 아래 부분을 뚫어놓으셨더라고요. 그런 작고 큰 부분들에서 공간과 삶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보이는 공간마다에, 시선이 닿는 거의 모든 곳에 책이 놓여 있었어요. 다락을 둘러싼 벽은 거의 책으로 채워져 있었고요. 그 정도로 많았어요. 책이 삶의 일부가 되어 건축주 부부의 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었어요.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책이라는 사물의 존재에 압도된 게 있어 자연스레 책이라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콘셉트를 잡아나간 것 같아요. 일독일박은 건축주의 한옥에 간 첫 느낌과 인상에 집중해 풀어나간 프로젝트라 할 수 있어요.
일독일박을 만드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가독서’를 모티브로 일독일박의 콘셉트를 잡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나형] 일독일박의 한옥을 접하고 나서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책이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힘이 들 때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글과 책에서 진심어린 위로나 공감을 얻게 되는 순간이 분명 있더라고요. 책을 읽으며 나에게 침잠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지친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이 가능해요. 일과 삶에 필요한 영감을 얻는 것이죠.

그렇게 책이라는 콘텐츠와 서촌이라는 지역성, 이 두 가지에 집중하다 발견한 것이 조선시대 사가독서라는 (유급)휴가제도였어요. 세종대왕은 심신이 지친 집현전 학자들이 독서를 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하였는데요. 서촌 지역은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다 책을 읽는 쉼의 시간으로 나를 채우고 다시금 일상을 이어가는 우리 조상의 오랜 지혜를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제안하게 됐어요.
오프라인의 시대가 저물고 종이 매체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요즘, 스테이의 공간과 아날로그적인 책의 감성이 맞닿는 지점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스테이에 머물며 ‘한권의 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의 현대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요.
종이 매체의 힘이 약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책을 통해 저마다의 감성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성을 전달받기에 그것의 매력과 매체로서의 힘은 대체 불가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장소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자발적 고립과 몰입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스테이의 공간에서, ‘한권의 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누리는 것은 분명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시공간의 톤 앤 매너가 일관되게 형성되어 있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면 영감의 깊이와 교감의 농도가 분명 다를 거고요.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끊임없는 관계망에 접속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책을 통한 치유 그리고 산책과 같은 사유 행위만큼 삶의 쉼표가 되어줄 선물은 없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며 깊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독서는 이제 사가독서제처럼 쉼의 개념과 맞닿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시선과 감성으로 세심히 선별된 책을 스테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에 머물며 누리는 시간은 분명 긴 여정의 여행만큼이나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삶의 영감을 자아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독일박의 네이밍 과정도 궁금합니다.
일독일박이라는 네이밍은 사실 저희가 낸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상암동에 위치한 동네서점 ‘북바이북’에서 한권의 책을 오롯하게 즐길 수 있는 스테이 ‘일독일박’을 짧게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첫 어감과 실제 북바이북을 사랑해주신 팬덤분들이 남겨주신 숙소후기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고 있었어요. 아쉽게도 상암의 북바이북도, 일독일박도 사라졌는데요. 서촌의 가가린이라는 서점도 문을 닫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서점의 몰락’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촌에 의미 있는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서점의 공간을 수평적 호텔과 함께 생각한 것 같아요. 건축주와도 예전 ‘일독일박’의 이야기를 드리게 되면서 자연스레 북테라피 스테이 콘셉으로 좁혀나간 것 같고요. 그렇게 북바이북의 김진양·김진아 대표님께 허락을 받아 네이밍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서로에게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책 읽기에 더욱 적합한 스테이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랩만의 접근 방식이나 방향이 있었을까요.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나형] 우선은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심리적 안정 상태에서 손이 책에 자연스레 가닿도록이요. 책에 압도되어 강압적으로 읽으라는 느낌을 주기보다 ‘읽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북스테이 본연의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2층의 다락도 책으로 가득 채운, 이색적인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비워내는 데 더 집중했고요. 결과적으로는 여백이 있는 담박한 공간으로 꾸민 것이 책을 읽기에는 더 좋은 분위기로 거듭난 것 같아요.

[김기수] 북스테이는 많은 게 사실이에요. 일독일박은 다른 북스테이에 비해 책의 양이 훨씬 더 적고요. 하지만 그러한 점이 일독일박만이 가진 강점이라 생각해요. 그만큼 북 큐레이션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죠. 지랩 디자이너들과 <한권의 서점> 팀이 함께 의논을 해 결정했어요. 일독일박을 즐기러 올 사람들의 취향을 최대한 고려해 그들이 좋아하고 또 읽고 싶어 할 것 같은 책들로 세심히 선별했죠. 공간의 특성과 연출되는 상황에 따라 책들을 다르게 배치했어요. 이를테면, 침실에서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진집을 발끝 스탠드 옆에 두고, 키친에는 요리 관련 책을, 큰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 공간에는 깊이가 있어 읽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책들을 각각 두었어요. 또 책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서촌의 ‘참바’와 콜라보 해 만든 ‘주음야독’이라는 웰컴티로 동네 경험을 스테이에 녹여내고 책과 어울리는 콘텐츠 및 다양한 즐길 거리들을 만들었어요.
일독일박은 서촌의 고즈넉한 한옥에, 책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와 공간 브랜딩의 역할이 잘 발휘된 스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에 일관된 브랜드적 경험과 가치를 불어넣기 위한 과정들과 일련의 노력들이 궁금합니다.
[박중현] 저희가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은 책을 어떤 분위기 속에서 읽게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책을 자연스레 접하게 할까에 대한 생각들이었어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스테이 내부에 책을 읽게 만드는 공간과 분위기를 조성·연출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책에 관한 콘텐츠와 더불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 공간 곳곳에 스며들게 하는 일이었어요. 이를 일관된 공간 경험으로 풀어내는 (브랜딩)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고요. 책을 접하는 방법도 단순히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책의 글귀를 필사하거나 책과 상관없이 글을 쓰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공간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그에 따라 가구 디자인이나 공간 배치도 달리 했고요. 책을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기 위해 접근한 프로젝트라 브랜드 디자이너인 기수씨의 역할이 컸어요.

기수 씨가 낸 아이디어 중에는 필사 말고도 ‘책잡이’라 해서 책에서 좋아하는 문장이나 글귀를 적어두면 누군가 그걸 읽고서 자연스레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도록 한 게 있어요. 책이 매개가 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죠. 쓰기를 위해 비치해둔 문구류도 직접 만들었어요. 혼란스러웠던 홍송의 붉은 나무들의 느낌을 적절한 톤 앤 매너로 잘 잡아주었고요. 그래서인지 일독일박은 제 개인적으로 콘텐츠와 디자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어요. 그동안 서촌의 여러 한옥들을 작업하며 보이지 않는 한계를 느끼곤 했는데, 탄탄한 콘텐츠가 공간을 채우면 여타 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공간의 색깔과 브랜드적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죠.

[김기수] 책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는 책을 읽고 나서 그 여운을 글로 남기고 싶어 하는 니즈가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책잡이와 책갈피, 그리고 방명록 노트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노트 제본 방식이나 종이 재질, 촉감 등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보통은 중철 제본식으로 하지만 일독일박에서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게 책장을 넘길 때 전해지는 좋은 느낌이 노트에서도 이어지길 바랐거든요. 책이 바로 접히지 않고 편하게 넘어가는 작은 느낌의 차이가 중요할 거라 생각했어요. 종이컬러나 질감 역시 일독일박의 공간과 이어져 일관된 톤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했고요. 사실 그러한 부분들을 저희가 의도하고 유도했다고 해서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일독일박은 다른 것 같아요. 일독일박 방명록에 많은 후기들과 느낌들을 적어주셨어요. 저희가 준비한 노트들도 다 써서 다시 제작해야할 정도라고 하니,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독일박의 공간에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지 못할 수 있는 디테일이나, 건축적 장면(혹은 상황)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스팟이 있을까요.
[김나형] ㄷ자 한옥이기 때문에 마당을 향해 창문을 모두 열어두면 창이 겹겹이 중첩되는 장면이 연출돼요. 좋아하는 책을,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앉아 읽으며 서로 우연치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죠. 액자 속 겹쳐드는 풍경과 창호의 격자무늬, 그리고 문의 아름다운 비례감에 한껏 빠져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곳을 실측하러 혼자 온 적이 있는데, 날씨가 좋아 창들을 열어두었더니 하원 하는 어린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게 하는 그런 작은 생활 소음이, 서촌의 한옥과 좁은 골목길 풍경만이 줄 수 있는 서정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백색소음처럼 책읽기에 더 좋기도 하고요.

[박중현] 자작나무가 있는 중정의 정원이에요. 원래는 수도가가 있고 비어 있는 작은 공간이었는데, 마무리를 앞두고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싹 비워내고 하얀 자갈을 깔고서 자작나무 한 그루를 심었어요. 자작나무 껍질이 하얗고 얇게 벗겨져서 종이 대용으로 쓰였다는 게 기억에 남았거든요. 직접 자작나무를 사러가 나무 모양이나 높이, 크기 등을 현장 스케치하며 고르고 고른 나무여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고, 일독일박에 잘 어울리는 장면이 연출된 것 같아요.

[김기수] 일독일박의 다락에서 잔 경험이에요.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 망설였는데, 올라가 누우니 정말 아늑했어요. 드러난 서까래와 천창을 보며 잠들고, 개구부 창으로 드는 하늘을 보며 일어나는 느낌도 특별했고요. 제가 친구들과 묶었던 날은 마침 또 비가 와서 창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어요. 다락의 이불 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협탁에 앉아 떠오르는 생각을 써내려 가는 일은 일독일박에 오시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공간 경험 중 하나에요.
서촌유희와의 관계 속에서 일독일박의 역할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일독일박은 콘텐츠로서 서촌이라는 동네가 가진 보이지 않는 힘과 대체 불가한 매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에요. 덕분에 어렴풋한 아이디어에만 머물러 있던 수평적 호텔-서촌유희 프로젝트를 한층 더 분명하게 구체화할 수 있었고요. 서촌에 자리한 5개의 지스테이(Z_Stay)를, 곳곳에 점조직처럼 흩어져 있는 숨은 맛집과 카페, 작은 가게들과 수평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유기적 형태로 경험하게 하는 ‘서촌 유희’로 발전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구심점의 역할을 할 서촌유희 라운지로 ‘PH서촌’을 준비 중에 있고요. 앞으로 많은 크리에이터분들과 의미 있는 콜라보를 진행해 서촌만의 경험을 만들고 이웃들과 상생하는 지점을 찾아가고 싶어요.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여행지

서촌창작소

서촌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자 커뮤니티 공간이다. 개인작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목공, 가죽, 조향, 드로잉 등 하루 한 가지 공예, ‘일일일작’(一日一作)이라는 공예수업과 메이커와 함께하는 특별한 강연도 아울러서 진행한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아주로

서촌에서 늦은 시간까지 편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스몰디쉬 앤 바이다. 서촌의 고스마(Gosma)를 운영하는 셰프님이 비스트로 콘셉트로 최근에 오픈한 공간으로, 이탈리아 해안가를 뜻하는 이름처럼 이탈리안 음식과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참바

일독일박의 주음야독을 히든 메뉴로 시킬 수 있는 서촌의 바이다. 서촌의 골목길 한옥과 위스키 바의 신박한 조합을 느낄 수 있는 곳.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한권의 서점

매달 하나의 단어를 선정해 그에 맞는 한권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다. 머무르게 하는 서촌의 서정에 어울리는 ‘좋은 시선’을 담는다. 지스테이에 머무르는 이들에게는 숨은 컨시어지 역할을, 서촌 골목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안내소 역할을 한다.

서촌도감

서촌의 지속가능한 생활양식 상점. 서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예가, 또는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한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카페

대충유원지

서촌의 전경을 한눈에 담고서 정성껏 내린 커피와 차를 맛볼 수 있다. 공간 구석마다 정제된 세련됨을 느낄 수 있는 곳.

STAY

책으로, 또 나에게로 돌아가는 공간

헛헛한 일상,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때 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책 한권을 손에 쥐고 한 문장씩 의미를 되새기며 밀고 나가다보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어느새 다시 모아지고 마음 속 불안을 잠재운다. 디지털 읽기가 보편화되고 미디어 지형이 영상 중심의 플랫폼으로 전환되었다고는 하나 천천히 책을 읽으며 숨을 고르는 일은 생채기 난 마음을 어루만지며 일상 속 궤도를 되찾게 한다. 결국 내 생각을 벼리고 자라게 하는 것은 한 곳에 앉아 시간과 마음을 들여 눌러 담은 책장의 글귀였다. 『읽기의 말들』에서 말하듯 책을 읽는 일은 나를 읽고 삶을 짓는 일이지만 동시에 몸이 하는 일이라 큰 자극 없이 책이 펼쳐내는 다른 세상에 들어가기 위한 장소가 이따금씩 필요했다.

책을 읽는 공간에 대한 갈급함이 컸던 내게 일독일박의 오픈 소식은 그야 말로 단비처럼 다가왔다. 그것도 서촌에 있다고 하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서촌과 책의 조합으로도 충분했다. 서촌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니어도 내 삶의 일부분을 연결하고 일관성을 유지하게 하는, 친근함을 주었다. 계절 따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서촌이어서 가능했다. 일독일박은 그러한 서촌 골목길 안 깊숙이 자리해 있었다. 누군가 무심히 놔둔 걸상들과 화분에 다시금 서촌의 소박한 정취를 느끼며 일독일박에 들어선다. 정갈하고 아늑한 느낌의 디귿자 한옥은 자작나무 한 그루와 비밀스런 중정을 품고 있었다. 나무의 단단한 결이 느껴지고 서까래가 보이는 높은 천창 아래, 전통 창호와 격자무늬 문양이 처마 지붕선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방의 구분 없이 흐르는 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동선이 있고, 무엇보다 책을 평소 잘 읽는 사람에게도, 또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책에 편안히, 자연스레 다가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스테이라하면 보통 서가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의 무거운 존재를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일독일박은 한권의 서점에서 세심히 선별한 책들로만 곳곳에 놓여 있어 책 한권 한권에 더 호기심이 일게 했다. 신박하게도 책을 읽기 좋은 어느 곳에 엉덩이를 틀고 앉아도 내 손 닿는 곳에 적절한 책이 놓여 있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책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책에 몰입하기에 좋은 조도, 온도, 음악, 향, 가구 등이 세심히 조율되어 있었고, 책을 사이에 두고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가능했다. 책을 ‘잘’ 읽는 일은 책을 읽기를 멈추고서 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책과 나 사이를 서성이는 일이라는데, 일독일박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한 ‘사이’에 고요히 머무르게 하였다. 마룻바닥에 수놓는 빛의 그림자들에 시간의 흐름을 읽고, 종이책의 질감을 느낀다. 일독일박에서 묶는 고립과 몰입의 시간으로 나는 “아직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책을 건져 [올리며]”(강민선, 『상호대차: 내 인생을 관통한 책』) 나를 들여다보는 마음의 힘을 키웠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한권의 책을 읽는 사색적 머무름으로 일상을 가다듬는 공간

스마트폰 하나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상시접속(always-on)되는 디지털 환경에 책을 읽는 일은 언젠가부터 숱한 유혹을 이겨내는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주의집중을 흐트러뜨리는 다양한 자극의 환경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책을 읽는 평범한 시간만으로도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되어준다. 책을 보는 방식이 전자책, 스크린 읽기 등 디지털 읽기로 넘어갔다 해도 종이 책이 주는 감성과 위안은 여전하다. 스테이폴리오와 지랩의 일독일박은 책이 피워내는 느림의 자장에 온전히 머무르게 하는 하루로, 지친 일상을 갈무리 하는 쉼의 방식을 제안한다. 책이 여는 세계에 나를 내맡기고 침잠하게 하는 시간으로, 책장을 넘기며 삶의 갈피를 매만진다.

DESIGN

책의 품에 파고드는 서촌의 고즈넉한 한옥

일독일박은 미로처럼 펼쳐져 있는 서촌 골목길 속 디귿자 모양의 작은 독채 한옥으로, 그 고유한 멋과 담박함은 책과 함께 ‘따로 또 같이’ 머무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과 관련한 다채로운 공간 경험을 넘침 없이 담아내었다. 툇마루에 앉아 발을 담그고서 책을 여유롭게 읽는가하면, 2층 낮은 층고의 다락에 작은 소반에 앉아 종이에 새겨지는 연필소리를 들으며 생각의 여운을 적어 내려간다. 한줌의 자연을 들이며 완벽한 고립감을 안기는 중정의 공간이 있으며 나무 창문을 모두 열어두면 중첩되는 창호 나무문 너머로 서로에게 시선이 닿고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아름답다. 일독일박의 한옥에서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Hospitality

책의 이야기로 서촌의 장소성을 새롭게 해석한 사람들

서촌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 정취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만든 공간이다. 스테이폴리오와 지랩은 책이 삶의 일부가 되어 가까이에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한옥을 스테이의 공간으로 다시 매만졌다. 기존의 구조를 그대로 살려 서촌의 오래된 한옥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지키되, 새롭고도 특별한 경험을 불어넣었다. 서촌에 오랜 결로 녹아 있는 책의 이야기를 사가독서제로 길어 올려 스테이로 만들었다. 한권의 책에 온전히 빠져드는 공간 경험으로 서촌의 느린 서정을 이어간다.

PRICE

새로운 대안이 되어줄 머무르는 도심 속 여행

최근 들어 일상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일상을 환기시키고 싶을 때 도심 속 한옥 스테이는 적합한 대안이 되어준다. 일독일박은 서촌 골목길을 걷고 책과 여백 사이에 머무르는 여행을 완성시킨다. 크게 이동하거나 움직이지 않아도 우리를 세상 밖으로 견인해주는 책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담뿍 안기고 일상에 필요한 정신적 고양을 선물한다.

스테이명
일독일박

숙소타입
한옥

연락처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3길 11-1

인원 / 객실수
4~4명 / 1객실

가격대
₩280,000 ~ ₩330,000

체크인 / 아웃
18:00 / 14:00

편의시설
취사

PHOTO BY 박기훈(arcfactory) | arc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