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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어
why

다름을 원하던 목마름 끝의 해갈

언제까지 새로울 수 있을까? 밀려드는 새로운 맛집과 카페, 스테이까지. 현대인들은 새로움에 자석처럼 끌린다. 새로운 것을 손에 쥐고, 또 한두번 경험하고 나면 지나간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새로운 공간이 끝없이 생겨나고 있다. 멈춤이란 없다. 매일매일 눈으로 좇을 수도 없고, 그 정보를 다 알아낼 수도 없을 만큼의 수많은 새로운 곳들.

스테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오래 차단됐었고, 많은 사람들은 제주로 향했다. 여전히 제주로 향하고 있다. 국내의 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이 제주로 존재하는 제주. 제주는 국내 여행의 0순위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이국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신비로움과 유일무이한 매력이 느껴진다. 이처럼 보물섬인 제주도 역시 수도 없이 많은 스테이들의 범람에 휩싸여 있다. 비슷한 색과 결과 분위기를 한 스테이들이 더욱 늘어나는 중이다. 일상으로의 탈출구가 필요해 떠난 제주에서 진정한 다름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일 수도 있다. 새로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복붙한 듯 쏟아지는 비슷한 스테이의 정글을 벗어날 한 줄기의 빛, 어둠 끝의 탈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뭔가 정말 다른 것이 필요한 갈증의 시기다. 이럴 때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은 곳이 태어났다. 노을빛에 휩싸인 채 마음속 깊은 곳에 노을빛이 서리는 스테이, 사색의 공간 '서리어'라는 단비가.
people

가슴에 서리는 노을빛을 기억하며

지랩은 제주 눈먼 고래로 국내 스테이의 저변을 넓힌 바 있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스테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제주 눈먼 고래라는 조천읍의 돌집을 리모델링한 독채 스테이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제는 국내 스테이의 격을 한 단계 아니 여러 단계 격상시킨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연구소. 기존의 건물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을 자연스레 엮으며 갈고 닦은 여러 프로젝트에 비해 신축 프로젝트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러나 양양 브리드 호텔, 제주 어라운드 폴리, 잔월 등 새로 지어 올린 프로젝트 역시 매우 유연하고 매력적이다. 로컬 문화를 건물과 공간과 이야기로 녹이는 지랩의 탁월한 능력이 훨씬 더 발휘되는 현장을 목격하곤 한다. 서리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름을 품고 먼바다를 바라보는 사이트 위에 서서 이들은 가슴에 서리는 노을빛을 기억하며 기획하고 설계했다. 빛은 사라져도 여운은 길게 남는, 노을의 한 장면 같은 스테이를 만들기 위해 자연을 읽고 날씨를 읽고 동네를 읽어가며, 잘 어울리되 유난스럽지 않고 그러나 흥미로운 자세를 갖춰 눈길이 오래 머무는 서리어를 만들고야 말았다. 그들의 원칙인 ‘제주다움을 재해석한 시공간을 만드는 일’을 이번에도 제대로 지킨 것이다.

location

아름다운 오름을 등지고 서쪽을 넌지시 바라보는

제주도는 서울의 3배 면적이다. 생각보다 크다. 가로로 선을 그어 섬을 반으로 나누면 위로는 제주시 아래로는 서귀포시로 나뉜다. 제주 사람들은 세로로 선을 그어 제주 서쪽과 동쪽으로도 구분한다. 애월읍 금성리는 제주시의 서쪽 일주 도로를 따라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로, 아름다운 서쪽 바다의 풍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계절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이 일대는 노을로도 유명하다. 노을의 아름다움에 몰입할 수 있는 오름을 등지고 서쪽을 넌지시 바라보는 위치에 서리어가 있다. 길보다 조금 올라선 위치에 있어 정면으로는 저 멀리 바다가 아련하게 보이고, 뒤로는 오름을 가까이 면하고 있어 자연의 소리가 밤낮 할 것 없이 가깝게 들려오는 곳. 제주의 어떤 지역보다 농촌에 가까운 시골 하면 떠오르는 평온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

MAKING STORY

원래 있었던 풍경에 잘 스미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원칙이었고, 그것을 지키며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내야만 했다. 오름과 건물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했다. 건축적이고 디자인적인 선택으로 자연스러움을 위해 지붕 재료를 석재로 했다. 또한 지붕 형태를 오름과 어울리도록 조금 더 길게,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약간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으며, 서리어와 오름이 대비되는 동시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많이 고민했다. 건물 앞 길이 농사를 위한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면서, 농부님들이 자주 걸어 다니는 일상적인 길이기도 해 석축을 약간 높게 쌓았다. 그 높이도 부담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선 처리에 고민이 많았고 노을을 바라보기 위해서 창 크게 열어야 된다는 숙제가 있었기 때문에 도로와의 깊이와 관계를 고민하면서 되도록이면 사람들과 시선이 부딪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따라서 건물이 길보다 올라와 있다. 또 길에서 보면 드넓은 밭 너머의 넘실대는 바다가 마을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오름을 등지고 노을을 바라보는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석축을 쌓아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건축에서 많이 볼 수 없는 외부 주방, 이국적인 휴양지 숙소에서 자주 등장하는 외부 키친을 본채와 별채가 이어지는 회랑의 중간에 과감하게 넣었다. 사색이라는 이름답게 앞뒤로 걸터 앉을 수 있는 형태, 툇마루를 만들었는데 정말 기존에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의 고재 소재가 없는 이야기, 역사를 만들어낸다. 시간의 무게를 담당한다. 중목 구조에 기다란 회랑을 품고 석재 지붕을 머리에 쓴 건물. 금속이 아닌 석재라는 무거운 소재를 선택해 제주의 돌집이 가진 차분한 안정감이 신축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확보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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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었다. 대지를 바라보자 떠오른 단어. 사색이라는 키워드를 제일 먼저 정했다. 처음부터 서리어의 땅이 갖고 있는 두 가지 큰 장점, 서쪽으로 열린 바다가 보이지만 동쪽으로는 키가 큰 나무가 무성한 오름이 펼쳐지는 풍경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노을은 말없이 바라봐야만 하고 오름은 오를 순 없지만 숲속에 둘러싸인 포근함을 주는 공간이기에, 이를 어떤 단어와 경험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사색이라는 단어를 결정했다. 사색이란 단어를 가지고 이렇게도 고민해 보고 저렇게도 고민해 보다가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이 쓴 시구에 시선이 머물렀다. 달이 서린다, 대화에 따뜻한 놀이(노을이) 서린다는 시구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꾸준히 생각했던 사색이라는 경험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 무언가를 서리게 해준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서리어라는 이름이 되었다. 또한 세 가지 사색을 기획했는데 이는 바라봄의 사색, 대화의 사색, 정리의 사색이라는 3가지 키워드이다. 시간대별로 노을을 바라보며, 밤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른 아침에 지난 밤의 대화와 바라봤던 노을을 떠올리고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의 경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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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침묵 속에서 건네는 경험

공간의 진정한 힘은, 공간으로써 존재할 때가 아니라 이야기가 들려올 때다. 서리어의 공간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침묵 속에 말이 있다. '사색'이라는 콘텐츠를 그곳에 하나 둘 셋 심는 순간, 공간은 침묵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사원 또는 숲속의 집에 들어선 듯, 적조된 석축이 앞을 가로막는다. 걸음을 멈추고 작은 나무 문을 연다. 계단으로 오르면 외부 라운지가 있고, 그 너머로 새소리가 들려온다. 어도 오름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서리어의 첫인상이다. 곧바로 자연을 품기 전에 한번 거쳐야 할, 마치 해자를 지나온 뒤 긴장을 놓고 마음을 풀게 만드는 고즈넉한 정원이 있다. 외부 라운지 너머로 정원 그리고 자연. 찬물에 바로 들어가면 심장이 놀라니 심장 근처에 찬물을 조금씩 끼얹는 일련의 준비 운동 같은 배치. 첫인상을 보고 그 자리에서 일단 한 번 더 멈추게 된다. 중목 구조의 긴 본채 건물은 오래토록 앉아 있고 싶은 툇마루를 갖고 있는데 지붕이 툇마루의 폭을 모두 덮을 정도의 그늘을 만들어주니 선선한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바람이 든다. 바람을 느낀다. 한옥 같은 따뜻한 인상을 받고서 디딤돌을 딛고 본채에 들어선다. 크고 시원하게 가로로 길게 찢은 창문 가득 밭 뷰가 아름답게 담긴다. 불 멍만큼이나 좋은 초록 멍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이 프레임에 담긴다. 함께 온 이와 마주앉아 맛있는 음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과 엄선한 LP가 진열된 거실 공간을 지나서 외부 회랑과 비슷한 분위기를 품은 내부 복도를 걸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욕실과 침실이 순서대로 나온다. 건물 끝 침실은 높은 층고를 가져 개방감이 충분하고, 그곳 역시 삼면이 큰 창을 갖고 있어 커튼을 젖히면 밭과 밭 너머의 제주 바다가 넘실넘실 아련하게 보인다. 안정감과 개방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외부 회랑을 쭉 따라 걸으면 불 멍을 즐길 수 있는 외부 화로 옆, 세 네 개의 계단을 내려가게 된다. 그곳이 별채다. 본채에 비해 아담한 크기지만 여러 단차를 갖고 다실과 침실, 욕실 등의 공간을 분리해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없는 동선이 이어지고 따라서 색다른 경험이 일어난다.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실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좌식과 입실의 중간 지점에 있는 나무 의자와 유리장에 진열된 다구. 그옆의 미닫이 덧창을 젖히면 곧바로 야외 욕조가 나온다. 깊이가 깊어 몸을 깊게 담글 수 있다.
밤이 되면 까만 어둠이 오름 앞, 길게 난 본채의 툇마루와 나란하게 난 정원 길에는 은은한 빛이 내려앉는다. 그곳을 가로질러 욕조에 닿고 그곳을 거닐다가 불 멍 앞에 자리한다. 어느 자리에 서도 어느 공간에 멈춰도 아련하게 들려오는 듯한 이야기의 공간이다. 주제는 머무는 이들이 정할 수 있고, 이야기의 경중도 그렇다.
INTERVIEW

stayfolio
SEORIER
서리어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서리어는 네이밍 과정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네이밍보다 사색이라는 키워드가 먼저 정해졌습니다. 처음부터 이 땅이 갖고 있는 두 가지 큰 장점, 서쪽으로 열린 넓은 방의 바다가 보이는 반대로 동쪽으로는 키가 크고 숲이 무성한 오름을 가진, 두 가지 특징을 고려했기 때문이에요. 노을은 말없이 바라봐야만 하고 오름은 오를 순 없지만 숲속에 둘러싸인 포근함을 주는 공간이기에 이것을 어떤 단어와 경험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사색이라는 단어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사색이란 단어를 가지고 이렇게도 고민해 보고 저렇게도 고민해 보고 하다가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이 쓴 시구 중에서 달이 서린다, 대화에 따뜻한 놀이 (노을이) 서린다 이런 시구들을 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사색이라는 경험이 결국 우리 마음속에 무언가를 서리게 해주는 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어져 서리어라는 네이밍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획 과정이 궁금합니다.
최근 들어 모든 디자이너, 그리고 지랩이 하고 있는 고민은 결국 어떻게 다른 걸 만들 거냐 그동안 해왔던 것과 어떤 차별점과 특징을 만들어 줄 것이냐 라는 점에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 큰 숙제고 이에 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어요. 여태까지 해 왔던 결과물도 마찬가지지만 결국에는 땅이 갖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된다는 점도 있었고요. 숲과 오름을 등지고 노을과 멀리 바다 그리고 밭담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에 서리어가 위치한다는, 이 점을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을 하고 거기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건물을 보면 크게 열린 창은 완벽한 서쪽을 향해 있어요. 오후 4~5시가 되면 노을빛이 따가울 정도로 느껴지는 그런 창이 있고, 반대로 아침 이른 시간이 되어도 해가 들지 않는 오름이 있는 뒷마당이 있죠. 어두운 마당에 어울리는 공간과 거꾸로 노을 지는 창을 받아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과 달라진 부분들이 있었을까요?
서리어는 특히나 처음 디자인했던 첫 아이디어 PT 와 거의 달라진 게 없는 프로젝트였어요. 모든 것들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 노을을 바라보고 오름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사색을 즐기는 이미지들에 모두 공감했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변화보다는 재료를 선택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금 덜 부딪치면서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노대표의 이야기를 빌려 설명하자면, 중목 구조와 석재 지붕 두 가지를 서리어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석재로 지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디테일에 무척 공을 들였는데, 이 뿐만 아니라 금속 지붕이 아닌 석재가 주는 분위기가 뒤쪽의 오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무게감을 잘 잡아줄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오히려 시선이 덜 가게 되는 그런 공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있던 것처럼 어우러지는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설명 부탁드려요.
오름과 건물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된다는 점은 처음부터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디자인적, 건축적인 선택이라고 하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지붕 재료를 석재로 한 것과 지붕의 형태를 오름과 조금 어울리게 더 길고 높지는 않지만 약간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름과 가장 대비되기도 하지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고민했던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인근의 길은 농사를 짓기 위한 작업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면서 농부분들이 자주 걸어 다니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집 석축을 약간 높게 쌓았는데, 그 높이를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선적인 처리에 고민이 많았어요. 동시에 노을을 바라보기 위해서 창을 크게 열어야 된다는 숙제가 있었기 때문에 도로와의 깊이와 관계를 고민하면서 되도록이면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시선이 부딪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과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한옥이나 전통가옥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을 의도했다기보다 깊이 들어오는 노을 때문에 처마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회랑을 만들기 위해서 기둥과 기둥 사이 그리고 건물과 기둥 사이의 간격들을 지붕이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통 가옥이라기보다는 디자인과 기능들을 잘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기본 구조가 목 구조 특히 중목 구조를 했기 때문에 내부의 기둥이 어떻게 보면 조금 두꺼워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거실 부분이라든지 중앙 부분에 기둥이 없어서 더 넓고 조금 더 여유 있는 공간들을 만들기 위한 구조와 디자인이었습니다.
서리어의 동선과 공간을 설명해 주세요.
처음 큰 길가에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오는 부분에서 꼬불꼬불하게 한 15 미터 정도 지나면 서리어의 지붕이 보여요. 그래서 서리어가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도착하면 높은 벽, 석축이 우리를 막고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석축에 있는 공간을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계단을 자연스럽게 오르게 되고 사실 계단에 오르면 뒤로 바라보이는 풍경이 서리어의 첫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처음으로 외부 라운지라는 걸 만들었는데 입구에서 진입해서 계단을 올라 처음 도착한 라운지에서 먼저 한번 주변을 둘러보면서 어떤 공간인지 인지를 하고 나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어두운 마당이 우리를 맞아주죠.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열리는 쪽으로 걸어가면 거기가 본채이고, 반대쪽으로 여기도 있었지 하고 돌아보면 별채가 있는 구조입니다. 본채는 양쪽이 다 큰 통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저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창 너머로 노을과 밭과 멀리 바다까지 보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고요. 입실하는 시간이 보통 오후 4~5시 정도일 텐데 사실은 조금 더 늦게 입실 하기를 바랐어요. 왜냐면 노을이 먼저 그분들을 반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조금 늦은 시간에 입실해서 노을 지는 시간에 들어간다고 하면, 훨씬 더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을 깊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낮게 만들어진 주방 공간과 반대로 복도 끝에 있는 더 낮은 침실 공간 이렇게 해서 지붕은 높지만, 좀 아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별채는 사실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공간도 나눠져 있고 재료도 다르고 느낌도 많이 다릅니다. 처음에 공간을 디자인했을 때는 큰 기능이 다실이었어요. 왜냐면 뒤에 있는 노천탕과 다실 안에서 차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서 더 차분한 경험들을 유도하고 싶었거든요. 길게 세로로 찢어진 창들이 있는데, 바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될 게 회랑인데 회랑은 다음날 새벽 해 뜨기 전에 어둑어둑할 때부터 어수룩하게 해가 밝아올 시간까지가 제일 좋은 시간대에요. 거기에 앉아 있으면 새 소리가 정말 크게 들리거든요. 오름이 단순히 숲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서리어의 가장 큰 자원은 새 소리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 꼭 앉아서 바람과 새 소리를 느끼면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세 가지 사색을 경험할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설명 부탁 드릴게요.
세 가지 사색은 단어이자 행동으로 표현돼 있어요. 바라보고 대화하고 정리하는. 그렇지만 사실 이 단어들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시는 게 더 좋아요. 바라봄의 사색은 처음 입실에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노을 너머에 자신의 마음을 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대화의 사색은 늦은 밤 또는 저녁 시간에 같이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정리의 사색은 다음날 아침에 회랑에서 고요하게 또는 새소리를 들으며 지난밤 나눴던 이야기와 내가 바라봤던 노을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사색이라는 이야기를 시간으로 표현했어요.
서리어에서 하루를 보내신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어떤 하루라기보다는 제가 꼭 경험하고 싶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어요. 새벽 5~6시쯤, 어떻게 보면 해가 뜰랑 말랑할 때쯤 일어나 회랑에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습니다. 사실 시간 때문에 이 공간이 만들어진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서리어에 머무시는 분들은 꼭 한번 일찍 일어나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귀와 눈으로 담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수리코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내추럴 와인바.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땅속으로 반쯤 파묻힌 듯한 돌집을 개조한 와인 창고와 신축으로 지은 바 공간이 이색적이다. 낮과 밤으로 구분된 부담스럽지 않은 양의 맛있는 플레이트, 페어링을 위해 추천받은 내추럴 와인 한 잔이면 특별한 제주의 시간을 또 한 장면 갖게 될 것이다.

판포미인

제주에서 의외로 오래된 맛집을 찾기 쉽지 않다. 판포 미인은 오래된 맛집 중의 맛집. 남자 사장님이 내주시는 솥밥으로 유명하다. 전복 솥밥, 돌문어 솥밥에 계란장을 비벼 정갈한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먹으면 그만이다. 계란 장이 모자랄 때는 따로 추가할 수 있다. 조금 욕심을 내서 돌문어 볶음까지 맛보기를 추천한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카페

제레미 애월

제주 서쪽의 손꼽히는 로스터리이자 카페. 코로나19로 소박하고 빈티지하게 꾸며진 내부를 이용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얼마 전부터 내부에서도 커피와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한 잔씩 정성껏 내려주시는 사장님의 커피는 여행을 마친 후에도 두고두고 생각나는 맛.

STAY

시간의 품에 안겨 깊이 생각하다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사색'이라는 단어의 뜻이다. 그런 시간을 일부러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고,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무서운 일을 겪을 지도 모른다. 서리어는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기기 전에 노을을 바라보고 오름의 품에 안겨 시간별 사색을 차례대로 경험하게 한다.

입실 후 노을이 지는 이른 저녁, 붉게 물드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바라봄의 사색. 늦은 밤에는 야외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몸을 담그거나 다이닝 공간에 둘러 앉아 미룬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사색. 이제 막 동이 튼 이른 아침에는 다이닝 테이블이나 침실 또는 회랑에 걸터앉아 비치된 종이와 문구류로 정리의 사색을 즐길 수 있다. 마음에 서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각각의 사색마다 이용하는 장소를 달리할 수 있고 자연의 품에 안기거나 물의 온기에 안기거나 혼자만의 시간에 와락 안길 수 있다. 본채의 창 쪽의 빛과 오름 안쪽의 서늘한 빛이 좋은 균형을 이뤄낸다. 길게 뻗은 내외부, 정원의 길을 거닐면 더할 나위 없는 평온함이 찾아든다. 정원의 조경을 관람하며 걸음을 디딜 때마다 이는 바람을 느끼며 작고 작은 돌조각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 오름의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는다. 자연의 품에서 마음에 서리는 시간을 누리자.
4 POINT OF VIEW

ORIGINALITY

가지런히 따라가고, 바르게 걸으며

시간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한 장치인 세 가지 사색은 그 어느 스테이에서 해본 적 없는 경험이다. TV가 없어 심심함으로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는 뻘쭘한 상황을 맞은 적이 있을 것이다. 서리어는 시간을 배치해 뒀다. 시간을 따라 공간과 사유를 다르게 하면서 자리를 바꾸고 시선을 돌린다. 정성껏 지어낸 건물에서 진심을 다해 배치한 생각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DESIGN

길고 깊게 드는 빛과 그늘 그리고 자연

일부러 의도된 것이 아닌 처마를 깊이 내야 했기에 생긴 그늘, 가로로 길게 낸 서쪽 풍경을 바라보는 통창, 선선한 바람을 그대로 들인 무성한 숲의 오름. 빛과 자연의 품에 안겨 보낼 수 있는 공간 안에 이야기가 서린다. 일렁이는 온기의 결을 가진 물과 불, 볕을 곁에 두며 보내는 공간은 품위가 있다. 툇마루와 회랑, 길게 뽑은 길을 걷는 동안 뒷짐을 지고 오름의 그늘을 걷는다. 본채를 물들이는 주황빛 노을이 외벽과 마루와 조경의 식물에 닿으면 시간은 느리게 가고, 이내 생각에 잠긴다. 의도치 않은 전통 가옥의 분위기와 의도된 사색의 어우러짐.

Hospitality

친절한 안내로 닿은 내면

내면으로의 여행, 사색은 산책과도 같다. 걸으면서 비우고 채우는 행위가 동시에 이뤄진다. 가슴에 서렸던 이야기를 꺼내고 감정을 꺼내고 뒤엉켰던 생각을 고르게 빗는다. 앉고 걷고 담그고 마시고 듣고 바라보는 각각의 행동을 유연하게 따라만 가면 타인의 친절한 안내로 이내 자신의 가슴속에 다다르게 된다. 그곳에서 진짜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PRICE

시간을 벌고 마음을 비우며

생각을 고르고 바르게 하는 시간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많은 자극,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움으로 넘쳐나는 일상 안에서 그것은 매우 어렵기만 하다. 시간을 내 이곳에 다다랐으나 시간을 벌었다. 시간에게 휩싸이지 않고 스스로 시간을 이끄는 사색의 시간. 여러 번 반복해도 모자랄 값진 경험이다. 시간은 벌고 마음은 비웠다. 마음은 비우면 금세 차오른다. 숲과 노을의 품에 안긴 채로.

스테이명
서리어

숙소타입
민박

연락처

주소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어도봉길 127 (금성리 1149-48)

인원 / 객실수
4~5명 / 1객실

가격대
₩550,000 ~ ₩650,000

체크인 / 아웃
16:00 / 11:00

편의시설
취사, 반신욕

PHOTO BY 이병근 | WRITTEN BY 김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