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_pixel
소설53
why

근대 적산가옥을 통해 역사의 상흔을 되돌아보다.

건축은 시간과 이야기들의 퇴적이자 “기억 장치”이다. 건축은 과거의 한 시대를, 또는 시대의 일부를 고정된 땅과 물질에 새겨 물질적, 시각적으로 증언하는 역할을 하는가하면, 모든 것을 움켜쥐는 기억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건축은 지나온 역사의 진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역사적 망각으로부터 우리를 구한다. 피상적이고 편파적인 판단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의 망각을 강력하게 극복하게 한다”는 “건축의 기억력”에 기대 과거를 현재와 멀리 떨어진, 격리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시선’으로 중첩시켜 깨워낼 필요가 있다(김광현, 『시간의 기술』).

한국근현대사의 굴곡과 쓰라린 역사를 함께 한 건물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 가옥이다. 전국 곳곳마다에 산재해 있을 적산가옥은 말 그대로 적국의 재산을 뜻하지만, 보통은 해방이후 일본이 남겨 놓은 집이나 건물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적산 가옥을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자 상흔이 깃든 공간으로 반추하고, 청산이 아닌 ‘보존’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식민의 역사가 싫어 조선총독부 청사를 폭파시킨일이 1995년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은 전국적인 일제잔재청산 운동으로 이어져 수많은 일제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증축과 신축의 과정을 겪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다 찬탈 당한 수치의 역사도 역사라는 인식이 다시금 퍼지게 되면서 최근에서야 멸실되어가던 근대 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존해 나가기 시작했다.

역사의 상흔을 제대로 들여다 보거나 마주하는 일 없이 삭제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치욕적인 과거를 대면하고 반추하는 방향으로 마침내 선회했다. 군산과 목포 일대의 근대문화유산거리와 공간은 ‘도시재생’ 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이같은 인식의 전환 가운데 생겨난 결실에 다름 아니다. 적산가옥을 온존시키려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 적산가옥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문화유산으로 남겨야할 가치가 충분히 있음에도 생활의 편의에 맞게 고치거나 증축한 표식들 때문에 무관심 속에 방치되거나 철거 위험에 놓이게 되는 적산 가옥들이 적지 않다.

남다른 디테일의 끝단과 건축적 미감으로 부티크 호텔의 개념을 새로이 써내려간 바 있는 소설호텔의 주인장 서영우 대표는 그러한 문화재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수의 적산 가옥을 구명하여 53번째의 객실로 만들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유산으로서만이 아닌, 80여년의 긴 세월동안 주인과 쓰임새가 바뀌면서 수많은 삶의 실타래가 엉켜 들어갔을 이 역사적인 터를 어떤 식으로든 남기고 싶었다는 그는 문화재라는 제도화된 기록 방식이 아닌, 의미 있는 머묾을 통해 옛 근대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여수의 적산가옥을 매만졌다. 앞으로 침탈의 역사를 글로 배울 세대와 그 역사를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들은 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장을 꽃피우고, 새로운 역사와 기억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호텔의 53번째 객실, 소설53을 완성시켰고, 2019년 7월에 비로소 선보이게 되었다.
people

과거의 상처를 위무하고 되새기는 공간으로 매만진 소설호텔 주인장, 서영우 대표.

여수 구시가지 한켠에 남겨진 오랜 적산가옥을 소설호텔의 53번째의 객실로 탄생시키기까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닿은 소설53의 적산가옥은 좀처럼 보기 드문 석조외관에 내부는 일본식 전통 목조 구조를 가진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었다. 그래서 놀랐는데, 8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 왔음에도 본래의 틀과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게 이 가옥의 매력에 단단히 홀려, 전 건축주와 큰샘골 주막에서 담근 막걸리를 걸치며 계약서를 쓰고, 건물부터 우선 계약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서 오래된 터와 건물에 쌓였을 여러 역사의 풍경들과 맥락들, 이야기들을 읽고 주변 지형을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소설53의 적산 가옥의 경우 일제 강점기라는 씻을 수 없는 근대사의 아픈 흔적을 품고 태어나게 되었지만, 이곳이 자리한 터와 주변 일대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크고 작은 역사들이 집적된, 여수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이고도 유서 깊은 장소였다. ‘대정’(大井)이라는 큰샘골이 그 방증일 텐데, 여수에서 유일하게 남은 공동 우물이자 가장 큰 우물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저마다의 일상을 이어가게 한 마을 사람들의 중심이자, 이순신 장군과 군사들도 이 물에서 길어 올린 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임약방’이라는 아주 유명한 한약방이 되어 다시금 각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하니 터의 기운이 아주 강력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서영우 대표는 적산 가옥과 이 장소에 쌓였을 이야기들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건물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을 보수, 복원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 비해 쏟아야할 에너지와 시간, 비용 부담이 워낙 컸던 터라 가옥의 복원과 보존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의 방향은 여러 반대에 부딪쳤다. 사람들마다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도 더 효율적일 것이라 입을 모았다. 서영우 대표는 이에 흔들림 없이 처음 닻을 내린 방향을 그대로 고수했고, 그의 선택은 결국 옳았다.

당장의 눈앞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누구보다도 이 적산가옥에 새로운 동시대적 가치를 더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켜 나가고 싶었고, 그에 뒤따르는 예상 밖의 시간과 비용의 지출을 감당한 덕분이었다. 일제가 남긴 흔적을 새로운 영감으로 인식해가는 가운데, 지난한 철거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적인 모습으로 갖춰나가는 과정을 견뎌내었다. “건축물을 통해 일제가 남긴 상흔의 흔적들을 되돌아보고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며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행여 자신의 손길이 이 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헤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매만짐을 더해 갔다.
location

여수밤바다의 낭만 속, 일제가 남기고 간 흔적을 되짚다.

요 근래 여수가 환기시키는 힘과 영향력은 가히 대체 불가할 정도다. 여수라 하면 이제 생각에 미처 닿기도 전, '여수밤바다'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이제는 ‘낭만’이라는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여수만의 지역다움은 한층 더 단단해지고 유일무이해졌다. 365개에 이르는 섬들이 바다에 핀 꽃처럼 떠있다는 여수의 미려한 자연 경관과 더불어서 말이다. 여수의 청정 그대로의 자연과 생태적 가치는 최근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를 뒤잇는 관광지로 주목 받고 있기도 하다.

대체 불가한 낭만과 길항하는 여수의 또 다른 특징은 여수 곳곳에 일본과 오래 뒤엉킨 한(恨)의 역사가 서려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승전지였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업의 전진기지로 개발되어 여수 앞 바다를 강탈당하고, 수탈의 편의성을 위해 1923년 여수항이 개항되었다. 그럼에도 여수가 개항기 문화 유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수 사람들의 강한 역사 의식아래 해방 직후 남겨진 적산 가옥들을 불태우고, 자체적인 잔재청산을 일찍이 거쳤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수 내 근대문화 유산은 ‘흔적’으로만 드문 드문 남아 있다.

또한 여수는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최 전까지는 도로 시설들이나 기반들이 지금만큼 확충되지 않아 오랜 기간 타지 사람들의 유입이 적었던 곳이기도 하다. 여수만의 강하고 개성 있는 지역적 특색이 대체 불가한 매력과 지역다움의 보루로 남아 있지만, 최근 관광객 수의 급증으로 인한 난개발이 여수다움을 헤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주변 지형적 맥락이나 경관에 대한 고려 없이 숙박 시설들과 높은 건물들이 여기 저기 생겨나고 있어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던 여수다움이, 모든 곳을 획일화시켜버리는 자본의 흐름에 그 유일무이함의 매력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는 적산 가옥에 새 숨결을 불어 넣어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공존시키는 소설 53은 옛것에서 새로움을 찾아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시대적 흐름을 여수에 새로이 들이는 것으로 등장한다. 근대문화유산을 둘러싼 도심재생 사업과 '개발' 중심의 관광 산업의 초기 단계라는 서로 다른 두 흐름이 교직하는 상황 속에서 역사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지켜내는 방식으로 출현한 것이다.
MAKING STORY

1층의 경우 이곳에서 생활했던 가족의 생활 방식에 맞게 개조한 부분들이 있어 스테이라는 성격에 맞게 온 가족이 함께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을 더한 반면, 2층은 수십년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아 원형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2층은 ‘보존’을 최대한으로 하되 다다미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고 우리네 정서와 생활 방식에 맞게 바닥 난방으로 바꿔 공사하였다.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없어 새로 만들었고, 목조 건물의 특성상 건식 욕실을 두었다. 또 목조 건물이다 보니 사고나 화재, 단열에 취약할 수 있어 설비 공사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소설53의 독특한 특징은 전형적인 일본식 구조지만 재료들은 거의 모두가 한국의 것이었다고 했다.

한국의 모양새가 흔적처럼 남아 두 다른 성격의 문화가 한 공간에 절묘히 녹아들어 있었다. 그래서 소품을 두는데 각별히 신경을 썼고 그 조화로움이 깨지지 않도록 했다. 대부분이 서영우 대표가 기존에 모아온 수집품들이다. 일본식 가옥에 한국적인 정서를 더하면서도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도록 세심한 감각을 더했다. 특히 조명의 경우 소설 53이 지어진 시기와 공명하는 시대의 오브제들로 특별히 골랐는데, 바우하우스 시대의 루이스 폴센이다. 그렇게 서영우 대표와 도요 건축은 일본식과 한국식이라는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봉합시키기 위해, 또 새로운 가치의 옷을 덧입은 우리네 공간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과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이 모든 여정은 서영우 대표와 동고동락하며 소설53을 함께 디자인해 나간 정경훈 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경훈 소장은 서울토박이지만, 소설53의 완성도 있는 시공을 위해 일 여년의 시간을 여수에 직접 머무르며 여수의 삶에 녹아든 채로 공사를 진행해갔다. 숨은 뒷단의 고심과 노고가 맞물려 지금의 완성도 높은, 가치 있는 건축물로 태어날 수 있었다. 소장님은 다른 어떤 일보다도 주변 현지 사람들에게 이 오래된 적산 가옥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더한 힘듦을 느끼셨다고 했다. 한결같이 ‘왜 힘들게 가옥의 원형을 그대로를 지켜나가려 하느냐’와 같은 반응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전해지는 것이에 크게 조바심 내지 않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긴 고민 끝에 서영우 대표와 정경훈 소장은 이곳을 여수에서 3대가 함께 머물면서 옛 역사의 흔적과 근대 문화유산을 접하는 여수의 특별한 스테이로 기획했다. 처음에는 소설53의 위치를 고려해 많은 사람들이 가벼이 드나들 수 있는 카페나 역사가 깃든 이색적인 복합 문화 공간을 염두에 뒀지만, 행여나 단기간에 적산 가옥의 오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염려 되었다. 건물의 내부가 일본식 목조구조이다 보니 파손에 노출되기 쉽고 화재 위험까지 있었다. 그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머무름의 경험을 제공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전체 방향을 틀었다. 온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여수에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착안했고, 가족 단위의 소규모 사람들이 함께 머무는 것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생겨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설계 과정을 수정하고 보완해나가는 작업을 거쳐 나갔다.#
SPACE

3대가 함께 머무는 스테이로, 교차된 역사의 편린들을 보듬다.

소설 53은 적산 가옥의 본래 틀과 원형을 그대로 가져간다는 원칙 아래 매만져 졌고, 1층과 2층의 사뭇 대비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교차하며 교호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그리고 일본식 주거양식과 한국적 미가 은밀하지만 절묘히 녹아들어 역설의 미학을 뽐낸다. 소설 53는 일본 제국주의가 남기고 간 적(敵)의 공간이 끊임없이 다른 시간들이 만들어지고 겹쳐들었떤 ‘집’이라는 사실을 적절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화장실’이라 크게 쓰인 옛 문(지금은 창고로 사용하는)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해방 이후, 시간에 걸쳐 이곳에 쌓였을 여러 삶의 흔적들까지 아울러 기억하기 위해서다.

1층은 온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오래 머물러 있어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을 공간이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둘러앉아도 넉넉할 긴 테이블이 전경에 따라 펼쳐지고, 어느 곳에 앉아 있어도 바깥 풍경이 편안히 시선에 닿는다. 가파른 계단을 수고스레 오르내리는 어려움이 없도록 어르신들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침실 공간을 1층에 따로 마련했다. 앞마당의 긴 데크와 야외수영장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수영장 옆으로는 육중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원형 모양의 히노끼 탕까지 함께 두어 노천을 즐기거나 행여나 야외 수영 시,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닿는 걸음마다에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계단 오르는 재미를 느끼며 2층에 들어선다. 2층은 반듯하게 분할된 직선의 미가 돋보이며, 일본 전통 주거 양식과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길고 곧게 이어지는 좁은 복도 옆으로는 장지문으로 철저하게 구획된 다다미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안팎으로 시원하게 나 있는 내부의 창들 덕분에 빛과 바람이 잘 스며들어 개방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특히 방마다 겹겹이 둔 장지문은 단순히 출입을 위한 여닫이문이 아닌, 연이어 있는 방을 다양하게 쓰기 위해 목적에 따라 두 공간을 트거나 분리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어딘가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듯한 느낌을 동시에 주는 것은 일본의 무사 문화 영향 때문이라고 하니 공간을 통해 일본인의 정서를 엿보고 경험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외부의 수영장과 히노끼 노천탕은 이색적인 하루를 가족과 함께 보내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적 장치이다. 적산가옥이 주는 시간의 흔적과 대비되어 연결되는 수영장과 히노끼탕, 그리고 마을의 조망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적 경험을 선사한다. 해가 지는 노을과 아침 동트는 여명 안에 저마다 빛과 달리 반응하는 시간은 때때마다 다르게 느껴지기에 꼭 추천하고 싶은 공간 경험이다.
INTERVIEW

소설호텔 서영우 대표님과의 인터뷰

stayfolio
sohsul53
이곳, 여수의 적산가옥을 발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의 느낌과 인상은 어떠셨나요.
우연한 계기였어요. 소설 호텔을 완성시키고 나서,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오래되고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는 숨은 고택들과 가옥들을 찾아다녔어요. 건물이든 물건이든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보존되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근대 문화나 역사적 기억이 새겨진 건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철거되어 다른 상업용 건물들로 지어지는 것을 보고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누군가 그 건물이나 가옥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서 동시대적 용도에 맞게 새로운 역사와 기억으로 채워지는 공간으로 태어나길 바랐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과 수탈의 역사지만, 그 역사도 잊지 않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53의 적산가옥도 그렇게 발견했어요. 평상시 제 마음가짐이 결국 이곳에까지 닿게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제 고향이 지금은 여수시로 편입된 율천이라는 곳이거든요. 생각만큼 여수에 자주 오지 않았는데, 친한 지인이 여수로 오게 되어 여유 있게 둘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다 이 건물을 보게 된거죠. 빛바랜 주택들과 좁고 휘어진 골목길 끝에, 석재로 마감한 독특한 외관의 이층 높이의 건물이 한 눈에 확 들어왔어요. 동물적인 감이라 해야 할까요. 뭔가 범상치 않음을 단번에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건물에 대해 물어보게 되었고, 누군가 팔려고 매물로 내놓았다고 해서 관심 있게 들여다 본 것이 지금의 소설53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일제 강점기 때 지어져, 80여년의 세월을 견뎌온 적산 가옥이었던 만큼 이곳에 쌓인 이야기도 많을듯합니다. 간략하게나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오래전부터 이곳은 여수 사람들에게 ‘임약방’으로 잘 알려진 곳이에요. 여수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으레 다 알고 계실정도로 해방 이후 전라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한약방이었다고 해요. 또 건물 옆에는 ‘대정’이라는 큰샘골이 있는데, 여수에서 유일하게 남은 공동 우물이자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장소에요. 여수에는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는데, 나머지 8개는 없어지고 가장 큰 우물인 지금의 큰샘골만 남은 거죠. 오래전부터 한 곳에서 여수와 여수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일상을 이어가게 한, 삶의 원천과도 같은 곳이었어요. 전라좌수영이 설치된 이후부터 백성들은 물론 이순신 장군과 군사들도 이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하니 여수 사람들에게는 오랜 역사와 삶이 배인 상징적인 터라 할 수 있어요. 위치적으로도 구시가지의 군자동, 충무동, 교동이 갈라지는 지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모여드는 중요한 장소였던 것이죠.

그러한 자리에 지금의 일제식 가옥이 지어진거에요. 구시가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 앞 지역 일대가 모두 바다였다고 하니, 당시에는 여수 앞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이자 위치였을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일제강점기 시대, 이 가옥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저 공간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고, 추정을 거듭해나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소설53의 내부에 주방이 없다는 것도 철거 과정 중에 알게 되었어요. 주방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 이 주변에 음식을 따로 만들고 준비했던 다른 서브하우스가 있었다는 것인데, 일반 가택은 아니었다는 것이겠죠. 그보다는 일본 고위 관직들이나 일본 주둔군을 위한 숙소가 아니었을지 추측하고 있어요. 해방이 되면서는 유명한 한약방으로, 이후에는 한 가족이 쭉 소유하게 되면서 크게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질 수 있었어요.
여러 역사의 켜가 쌓인 이 적상가옥을 어떤 공간으로 기획해야할지 고민이 많으셨을 듯합니다.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만지셨을지 궁금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80여년의 세월을 지키면서 여수 사람들에게는 ‘임약방’으로 잘 알려진 이 적산가옥을 두고서, 처음부터 무엇인가 뚜렷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니었어요. 큰 규모의 건물도 아니었고, 이 가옥의 중요한 틀과 원형을 있는 그대로 가져가려면 투입되어야할 에너지와 시간, 비용이 상당했거든요. 그만큼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소설53의 경우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53의 적산가옥은 독특한 건축 양식을 구현하며 지나온 역사의 일부와 일본 근대 건축의 특징을 담고 있어요. 대한 제국말 당시 일본제국이 받아들였던 혼합식 유럽스타일로, 내부는 나가야 양식의 일본 전통식 목조 구조인데 외관은 돌을 사용해 석재로 마감한 보기 드문 양식이었습니다. 서구화와 근대화를 둘러싸고 일본 (건축) 역시 과도기를 거쳤던 것이죠. 그러한 과정이 공간에 고스란히 남겨진 것이고요. 흔히들 건축을 공간의 예술이라 하지만, 이런 과도기적 시대나 시간의 흔적들을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시간’의 예술이자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때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역사의 진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욕심을 내서라도 이 집의 중요한 틀과 원형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었어요.
오랜 기간, 적산가옥의 원형을 최대한 지켜나가는 방식으로 보수· 개조하는 과정을 거친 만큼 어려운 점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별히 어려웠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시간도, 비용도, 노력도 예상했던 바의 몇 배가 들어 저 역시도 또 저와 이 모든 여정을 함께 한 정경훈 건축 소장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다른 부분들이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지만 해당 기관처에 등록을 할 때 방의 개수를 두고서 때 아닌 논란이 있었어요. 2층 방의 개수를 두 개로 신고했는데, 해당 직원 분은 방이 네 개가 있다고 주장해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죠. 사실 2층은 큰 방 두 개가 일본 전통 주거방식에 의해 구분되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주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보기엔 방이 네 개인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일본식 전통가옥은 보통 침실 앞에 전실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방에 일반적으로 미닫이문과 미닫이창을 두어 공간 내 바람을 투과시키고 닫을 수 있는, 여러 겹의 문을 사이에 둔거죠. 주거문화에 있어 일본은 여름철의 고온다습한 기후를 먼저 고려했기 때문에 난방보다는 통풍이 잘되는 구조로 설계하는데 중점을 두었어요. 통풍이 잘되는 목재를 이용해 집을 짓고, 개방적이고 소통이 잘되는 열린 공간이 되도록 만든 것이죠. 겨울철에는 반대로 안쪽 침실을 둘러싼 칸막이 역할들을 하는 여러 겹의 문들이 방풍역할을 했었어요. 방을 연이어서 두고 복도를 길게 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이는 우리나라 주거문화와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인거죠. 우리나라의 경우 구들장을 사용한 온돌문화라면, 일본은 실내 마루방 입구에 이로리라는 이름의 전통식 화로를 두어 난방과 취사에 이용했기 때문에 통풍 시키는 것 못지않게 막는 것도 중요했어요. 이러한 일본의 주거 문화적 측면을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등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당시는 꽤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여러 일들 중 하나였는데, 지나고 보니 소설53만의 독특한 공간적 특징이 이러한 해프닝도 만들어낸 것 같아 저희들에게는 어려웠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로 남았습니다.
이곳 소설53 역시 여수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 지역의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고민을 거듭해나가셨을 듯한데, 소설53으로 인해 이 곳 여수의 구시가지에 찾아들었으면 하는 변화나 방향이 있으실지 궁금합니
소설 53은 소설호텔의 연장선상에서 그 지역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를,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을 잘 다듬어 경험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곳에 원래 살고 계시는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이 오래된 터와 건물을 매입하여 고치고 달라지게 해 타지 사람들의 유입을 더욱 끌어들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원하지도 않을 거고요. 누군가 신기한 눈으로 들여다보는 이 오래된 골목길과 집터가 그들에겐 삶의 일부이자 일상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소설53이 자리한 위치는 여수시가 지정한 골목길 투어의 시작점이라 지역주민들은 이미, 자신의 삶 일부가 타인들에게 노출되고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계실거에요. 사람이 모여들수록 교통은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는 건 자명하기에 피로감이 누적될 수밖에 없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거나 지역가치를 도모하는 일에 저희가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디에나 있는 호텔이나 펜션 등에서 숙박을 하기보다는, 여수에도 이러한 적산가옥과 같은 근대사 역사의 흔적이 새겨진 공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아픈 역사이고 치욕스런 과거지만 이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하는 여수만의 스테이를 만들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하고 솔직한 속내일 겁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앞으로 소설53만의 가치가 조금씩 전해지고, 여수의 한 부분으로 잘 녹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공간의 프로그램 역시 스테이, 즉 숙박 공간으로만 하셨는데요. 카페나 식당 프로그램도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숙소로 기능을 한정지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카페’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가옥의 가치가 단기간에 훼손되는 것이 염려되었어요. 많은 분들이 와서 일본식 전통 가옥의 모습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옥에 새겨진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지켜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랜 고민 끝에 소설53은 가족단위로, 특히 3대가 함께 와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요즘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을 많이들 하시지만, 숙소 잡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가 있는데 숙소를 잡을 때마다 고민이 있었습니다. 숙소 내 쾌적함이나 편안함, 이미 잘 갖춰진 다양한 편의시설들을 생각하면 보통 호텔들을 많이 선택하고 선호하지만, 결국 여러 객실을 예약할 수밖에 없어 가족 간의 단절이 생기더라고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는 차원이 부담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그리 좋은 여행이 되지 않을 때도 있구요.

그래서 온 가족이 한 공간에서 함께 머물며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앞으로 여행은 사람들의 일상 안으로 더욱 깊숙이 자리 잡을 것이고 또 그만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잦아질 텐데, 온가족이 함께 와 부대끼며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더욱 필요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수요의 접점에 소설53이 자리매김하길 더욱 바라고요. 또 무엇보다 소설53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의미가 크고, 우리 모두가 다시금 기억하고 되새겨야할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전해야할 이야깃거리들도 있어, 세대 간의 자연스런 소통도 기대할 수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방식으로라도 우리 모두의 상처이자 아픔으로 남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여행지

여수낭만포차

낭만에 흠뻑 취해 밤바다의 바람이 살랑살랑하게 부는 가운데 즐기는 삼합이란.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풍년 실내마차

여수 현지인들만 간다는 로컬 맛집이다. 여수 내 택시기사님들은 거의 다 알고 계시고, 직접 가보니 진짜 여수 분들만 계셨다. 낙지전골, 연포탕 등의 전골류와 각종 구이들이 있다. 그 중 으뜸은 장어구이라고 하니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음식들에 여수 개도 막걸리와 소맥 한잔을 걸치면, 여수다움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하모 유비키

여수 사람이 일러주는 여름철 보양 음식으로 여수 음식중 별미 중 별미다. 하모는 갯장어를 일컫고, 유비끼 육수에 데쳐 먹는 요리이다. 육수에 살짝 데친 하모를 양념장을 넣고 양파 한 겹에 싸서 먹으면 달큰 쌉쌀한 생 양파맛과 하모가 한데 어우러져 아삭하고 쫄깃한 식감과 맛의 하모니를 입안에서 느낄 수 있다. 한상 차려져 나오는 반찬들도 싱싱한 제철 해산물들로 듬뿍 나와 맛있음의 향연을 이어간다. 휴가철 여수에 들른다면 단연 먹어보아야할 음식이다.

여수당

바게트 버거와 진한 풍미의 해풍 쑥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곳. 여수 여행객들이 꼭 먹고 온다는 간식거리를 찾는 이순신 광장에 위치해 있다. 여수당의 바게트버거는 줄서서 먹는다는 건너편 이순신 빵보다 훨씬 더 맛있고, 긴 줄을 기다리는 수고스러움도 덜해 더욱 만족스럽다. 바게트보다 더 한 인기를 끌고 있는 쑥 아이스크림은 바게트 버거와 함께 양손에 들고서 꼭 맛봐야하고 ‘다시’ 생각나는 맛이다. 여수당이 내건 “첫입은 설레고 마지막 입은 그립다”는 글귀는 글자 그대로다. 프리츠 원두를 사용하고 있어 커피까지 맛있는 건 안비밀.

STAY

역사에 대한 감각과 뜻밖의 깨우침을 회복하는 공간

여수의 구시가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모퉁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2층의 석조 건물이 시야에 들어찬다. 이순신 장군의 벽화를 등진 채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치 과거의 시간 안으로 틈입해 들어온 듯하다. 오랜 목조 구조가 주는 옛스러운 아늑함과 정취가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흔적만 남은 일자 형태의 좁은 복도를 조금 걸어들어 오니 밖으로 탁 트인 전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비교적 높은 지대에 지어진 2층 건물이어서인지 여수 구시가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뒷전경이다. 옛 시내 거리는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내를 채운 3-4층 높이의 빌딩들의 뒷모습과 건물 뒤로 촘촘히 들어선 빛바랜 저마다의 다른 지붕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저곳 건물들에 축적되어 쌓인 시간의 흐름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옥의 내부로 다시금 들어서니 느낌이 사뭇 이상하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 적산가옥이라 했다. 너무나 명백히, 또 분명하게 일어났었던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내가 지금까지 역사나 과거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고 주목해서 보지 않았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글과 책, 지식의 일부로서만 접한 역사는 공허했고, 그러한 찬탈과 억압의 역사로부터 나는 ‘멀고도 참 안전했다’.

“건축에는 다른 어떤 사물과 달리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오래 남는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시간의 기술』에서 보았던 그 아늑했던 글귀가 물질적 공간 안에서 전해지는 듯 했다. 그 느낌 속에서 근대라는 시대가 지금과 그리 먼 시대가 아니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소설 53이 적산가옥 본래의 구조와 원형을 단지 되살리고 복원해서가 아니었다. ‘이건 분명 일제의 것’이라 으레 앞서 짐작했던 것들과 달라서였다. 집은 남긴 자의 집이기도 했지만 사는 자의 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공간 안에도, 다양한 삶의 갈래와, 역사의 갈래가 녹아들어 있었다. 적산, 적이 버리고 간 재산은 맞지만, 이는 또 우리 고유한 터에 자리한 우리네 공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적이라 해서 무조건적인 ‘배척’만이 답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공간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역사는 대문자 역사로 닫힌 책이 아니라, 지금 내가 보고 느끼며 살고 있는 순간들의 합들이 모여 만든 작은 역사, 소문자 역사이기도 하더라.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깨어 있는 역사적 감각을 통해 지금의 현재가, 지나간 과거와 중첩된 시간성의 일부임을 잊지 말고, 정치, 역사 사회적 이슈들을 좀 더 주체적으로 응시하며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야 겠다고 다짐했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역사의 상흔을 되돌아보고 치유하는 공간

소설 53은 문화재의 사각지대 틈으로 빠져나가 흔적 없이 사라질 뻔한 적산가옥을 근대문화유산의 일부로서, 또 그것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경험재로 만들어 지켜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상흔이 깃든 공간에 직접 머물면서 억압과 수탈의 역사를 되새기고, 근대사를 먼 역사가 아닌 현재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펴보자.

DESIGN

오랜 적산가옥의 옛 정취와 현대적 감각의 절묘한 조화

소설53은 남겨진 것과 옛것들 사이에서 동시대적인 가치와 숨결을 불어 넣었다. 세련된 디자인을 가미하고 역사가 깃든 소품들을 세심히 잘 배치해 일본식과 한국식이라는 간극을 잘 메우고 봉합시켜 기억되어야할 공간으로 잘 매만졌다.

Hospitality

역사 ‘청산’ 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다.

역사 청산이 역사의 부정이나 망각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아픈 역사이고 치욕적인 과거라 감춘 것은 우리였다. 근대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둬들이고 역사의 상흔을 마주하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건축물은 때로, 망각의 늪으로부터 구해내는 효과적인 기억 장치로 역할 한다. 적산 가옥에 새겨진 이야기들과 시간들을 되새기면서 근대 유산에 대한 폭넓은 시선과 균형 있는 시각을 회복할 수 있는 물길을 터보자.

PRICE

3대가 함께 머무는 특별한 스테이

2층에 이르는 건물 전체를 다 이용한다. 1,2층을 따로 독립된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최대 10명을 거뜬히 수용 가능한 프라이빗 스테이인만큼 여럿이, 또 소담한 규모로도 함께 머물기에 최적의 장소다. 특히 3대가 함께, 또 온가족이 올 수 있는 여수 내 적산가옥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깃든 공간인 만큼 쉼에 역사적 감각을 깨워보는 특별함까지 더해보자.

스테이명
소설53

숙소타입
게스트하우스

연락처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교동북3길 10

인원 / 객실수
4~10명 / 1객실

가격대
₩400,000 ~ ₩600,000

체크인 / 아웃
16:00 / 11:00

편의시설

PHOTO BY 박기훈 | https://arc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