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빠르고, 짐작할 수 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려 애를 쓴다. 나의 삶. 그러나 종종 이 삶의 속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이 통제를 벗어난 속도로 내달리다 우리는 문득 멈추어 선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쉼의 방식마저도 SNS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긴밀히 이어진 이 시대에서 때로는 의도적인 단절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어야 할 때다.
아주 깊고 넓은 동굴을 찾아 떠나자. 온전히 혼자가 되어,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고요한 동굴을 찾아 떠나자. 그곳은 선인장으로 가득 둘러싸인 월령리의 이국적인 터, 그 가운데 우두커니 선 잿빛의 공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름은 월령CAVE. 습하고 서늘한 땅과 돌의 감각이 느껴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체는 수평과 수직으로 얽혀 견고한 하나의 성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의 하루를 아주 단단하게 지켜줄 것만 같은 공간이다. 큰 고독을 결심하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예상치 못한 환대에 발걸음을 멈춘다. 어둑한 공간을 가로지르자 별안간 눈 앞에 제주의 자연이 가득 차오르는 것이다. 8미터에 이르는 압도적인 높이의 벽 사이에 제주의 노을과 바다, 신비로운 선인장 밭이 펼쳐져 있다.
시각부터 촉각까지 원초적인 자연의 기운을 가져다 주는 월령CAVE. 나를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으나 외롭지 않다. 기분 좋은 적막함 곁에 제주의 자연이 있다.
people
동굴에서 경험하는 가장 현대의 삶
호스트는 바다에서 한 발짝 물러서, 월령리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는 한적한 땅에 어떤 동굴을 짓기로 결심했다. 공간을 맡기기 전부터 그가 꿈꾸는 스테이의 모습은 무척 명확했다. 자연의 본질을 닮은, 온유하고 부드럽기보다 거칠고 강인한 어떠한 공간. 또한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무채색 공간을 가로지르는 빛의 감각. 이를 아우르는 굵직한 콘셉트는 ‘동굴’이었다.
호스트가 꿈꾸는 월령리의 동굴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를 의뢰한 곳은 제이와이아키텍츠. 여러 지역의 스테이를 설계한 경험이 있으며 주거 공간에 대한 지향점이 확고한 건축 스튜디오였다. 특히 원유민 소장은 월령CAVE의 설계를 시작하며 일상의 주거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다. 현대 주거에서는 키친, 다이닝, 리빙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기능이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나, 이러한 형태는 하나의 공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복잡한 구성을 지닌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울러 욕실 역시 효율성 위주로 설계돼 쾌적함을 누리기 어려운 상황. 이에 원유민 소장은 기본적인 콘셉트인 ‘동굴’ 특유의 감각을 건축 구조와 물성으로 풀어내되, 품격 있는 쉼을 누릴 수 있는 하이엔드 주거를 구현하고자 했다. 각 공간이 지닌 개별적 기능을 강조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이 모두 함께 있음에도 나 자신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옷을 정리하는 등의 사소한 행동양식까지 쾌적하고 고급스럽게 포용하는 동선으로, 실용의 미학을 통한 제이와이아키텍츠만의 하이엔드 주거를 선보였다.
바닷가를 따라 선인장이 줄지어 선 신비로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월령리. 월령CAVE는 해변을 지나 동네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나타나는 여유로운 땅 위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에는 잔잔한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며, 주변은 여유롭고 적막하여 해가 저물기 전부터 이곳은 노을이 아름다울 것임을 확신하게 만든다. 서쪽 하늘이 아름다운, 월령CAVE의 터.
제이와이아키텍츠는 이 땅이 지닌 이점을 극적으로 살리기 위해 진입 동선부터 면밀히 고려했다. 한쪽 별지는 도로에 맞닿아 있고 다른 방면에는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이를 고려해 뷰를 확보한 것이다. 특히 인접한 영역을 등져야 했던 한계점을 ‘동굴’이라는 콘셉트를 심화하는 요소로 치환한 점이 흥미롭다. 오히려 닫힌 면의 반대 영역을 완전히 열어 둠으로써 극적인 개방감을 심고 공간의 강약을 분명히 했다. 어두운 공간을 따라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압도적인 크기의 경관을 마주하게 돼 잊지 못할 공간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석양, 바다 등 각 영역에서 강조되는 풍경 요소를 반영해 거실, 룸, 욕실 등의 기능을 나누어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다. 지역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퀀스를 지닌 월령CAVE에서는 내부를 거닐기만 해도 월령리의 다채로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MAKING STORY
공간은 콘크리트 물성이 주를 이루며 모든 매스가 동일한 물성을 띠고 있었기에, 각 영역에 적절한 변주를 주어 입체감을 살리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이에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5개 매스의 콘크리트 표면을 다른 방식으로 정리해 다채로운 소재감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초기에 고려한 선택지는 3가지였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다듬는 기계 치핑, 물을 활용해 약한 부분을 탈락시키는 고압 살수, 그리고 표면을 아예 갈아내어 매끈하게 다듬는 방식. 이중 고압 살수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으나 공간과 맞는 톤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한 솔루션은, 바로 기계 치핑을 병행하되 중간 단계의 패턴을 활용하는 것. 기계 치핑 작업은 여러 단계에 걸쳐 완성되는데, 제이와이아키텍츠는 치핑 완성 전 중간 단계의 거칠고 오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패턴을 활용하자는 실험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총 3가지 톤을 채택해 벽마다 다른 질감을 입히는 데 성공했으며 동일한 콘크리트 소재임에도 섹션마다 다양한 촉각적 심상을 자아낸다. 특히 이와 같은 마감 방식은 변수가 많아 특정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작업하기 어려움에도, 시공 현장 상황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조율하여 마감한 점이 인상적이다.
설계를 통해 제주의 자연이 전하는 원초적 감각을 더욱 다이내믹하게 받아들이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됐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은 공간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8m 높이의 거대한 벽. 일반적인 일상생활에서는 이처럼 높이 솟은 벽 사이에 머무를 일이 없기에, 감각의 왜곡을 줄 정도의 압도적인 인상을 전한다. 그리고 이렇게 계획된 벽은 주변 자연의 모습을 수직의 풍경으로 정리해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보이드와 솔리드, 개방감과 폐쇄감을 부각하는 건축 구조에 주목할 만하다. 외부에서 바라본 월령CAVE는 그 이름처럼 거대한 바위 동굴을 연상시킨다. 도로와 인접한 방향으로는 창을 계획하지 않아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 여기에 입구 역시 자연스럽게 감추어 두어 콘셉추얼한 외관의 특성이 강조된다. 이는 자연을 향해 활짝 열린 반대 영역과 대비를 이루어 공간에 극적인 흐름을 부여한다.
나아가 지역의 자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할 뿐 아니라 가까이 경험하고 느끼게 하는 설계를 의도했다. 공간 곁에 선인장 밭이 펼쳐져 있는데, 이를 거실 바로 앞까지 확장해 자연 요소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실에서는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을 만들어 선인장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물을 매개로 자연과 한층 긴밀한 관계를 다질 수 있다. 선인장밭과 인접한 곳에 넓은 크기의 수영장을 만들어 제주의 작은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2층에는 큰 창을 지닌 샤워실과 야외 욕조를 마련해 프라이빗하면서도 자연과 함께 몸을 정돈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SPACE
아늑한 어둠 속에서 감상하는 빛의 세계
동네 어귀를 지나는데 회색을 띤 거대한 암석이 눈에 들어온다. 동굴 같은 신비로운 기운에 발길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한다면 월령CAVE에 이미 도착한 것. 사원의 입구가 연상되기도 하는 간결한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위를 닮은 거친 물성을 외부에서 이어오듯 어두운 무채색 계열의 내부가 펼쳐지며 기분 좋은 서늘함을 전한다. 공용 공간 위주의 1층은 바닥을 아래로 내려 높고 넓은 창으로 선인장밭을 감상할 수 있는 거실, 실제 돌을 활용한 아일랜드가 인상적인 주방, 온 가족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만큼 큼직한 수영장 등으로 구성된다. 각 공간은 한곳에 통합된 것이 아닌, 교차된 매스 구조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어 내부에 비치는 풍경이 다양하다. 여럿이 방문하더라도 각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설계의 결과다.
둥근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서면 탁 트인 시야로 지대를 조망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2개의 더블베드가 배치된 침실은 높고 깊이 뻗은 벽으로 이색적인 공간감을 강조하는데, 내부 마감과 다크 톤이 차분하고 밀도 있어 쉼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또 다른 침실은 외부 풍경을 내부 공간과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한 곳으로, 베드와 마주한 창의 상단을 확장하고 가장자리를 둥글게 다듬어 선인장밭부터 바다와 하늘까지 이르는 수직적 파노라마 뷰를 경험할 수 있다. 욕실 역시 하늘을 바라보며 샤워와 온욕을 누릴 수 있는 구조로 특별한 워터 테라피 시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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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stayfolio
Wollyeong CAVE
안녕하세요, 원유민 소장님. 공간이 자리한 지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주도에서 프로젝트를 세네 개 정도 했는데도 월령리는 제가 처음 가보는 지역이었어요. 월령리에 도착하니까 동네 분들이 선인장 농사를 짓고 계시더라고요. 바닷가를 따라 선인장이 펼쳐진 모습이 상당히 이국적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선인장을 이렇게 자세히, 가까이 볼 일이 없어서 더 신선했어요. 건축주님이 말하신 것처럼 노을 지는 하늘도 아름다웠고요.
지역적 특색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모색하셨나요?
저는 선인장을 멀리 떨어져 지켜보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대한 직접 경험하게 만들고 싶었죠. 선인장의 따끔함을 느껴 볼 수도 있겠고요. 예를 들어 거실 같은 경우에는 지면 레벨에 맞추어 1m 정도를 아래로 내렸어요. 외부의 선인장도 거실 앞까지 연장했습니다. 거실 바로 앞에서 선인장을 가까이 볼 수 있고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직접 만져볼 수도 있게 했어요.
주 이용자층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곳은 4-6인의 가족 혹은 친구 등을 타겟으로 합니다. 하지만 일행과 함께 오더라도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며 스스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요. 거실, 주방, 수영장 등 여러 공간이 가기 다른 방향으로 구분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거실 계단에 앉아 선인장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물을 통해 쉼의 감각을 일깨우고, 또 누군가는 테라스에 기대어 하늘을 감상하는 일이 가능하죠. 모두 하나의 공간에 머물지만 각자 자신만의 프라이빗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사용자 경험 향상을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부분이 있겠지만, 욕실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이 공간은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제 경험상 일상생활에서 만족감 혹은 불편함을 가르는 곳은 욕실과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일반적인 아파트에서 욕실은 물리적 기능을 해결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지, 컨디션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냥 ‘변기를 사용하게 만든다’가 아니라 ‘어떤 컨디션에서 변기에 앉아 있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말이죠.
스테이는 일상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누려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곳에 머무는 분들이 새로운 욕실을 경험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넓은 창으로 자연을 마주하면서 몸을 씻는 경험이 굉장히 기분 좋더라고요. 이곳에서도 자연 속에서 샤워와 온욕을 경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또 옷을 접거나 어메니티를 사용하거나 하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여유롭고 쾌적하게 유도하기 위해 공간을 넉넉하게 구성하고 동선을 가다듬었어요.
내부 역시 동굴 모티브가 분명한 것 같아요. 특히 마감재의 톤 앤 매너가 조화롭습니다.
외부의 콘크리트 소재가 주는 돌의 물성을 자연스럽게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동굴 안이라는 개념을 연결해야 했어요. 그래서 하얀색 벽체나 나무 톤은 최대한 지양하고 무채색 계열로 최대한 통일했습니다. 거실은 선인장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무채색의 바탕에 선인장의 녹색이 대비되어 시각적인 자극을 강화하길 바랐고요. 주방의 식탁은 실제로 돌을 사용해서 만들었어요. 원시적인 제스처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또 물을 사용하는 공간은 다른 곳보다 더 어두운, 검정에 가까운 타일로 마감해서 공간 경험을 구분했어요.
이곳에 머무는 분들에게 한 마디 남기신다면.
프라이빗한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가족 단위로 여행을 가면, 특히 아이들과 함께 놀러가면 정신이 없잖아요. 집이 더 편하죠. 하지만 월령CAVE에서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각각의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감각과 경험을 느낄 수 있어요. 설계 초반부터 일관되게 해왔던 생각인 것 같아요. 이곳에 오셔서, 가족과 함께 하면서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과 나만을 위한 휴식을 경험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레스토랑
싱싱잇
특유의 힙한 분위기로 협재해수욕장 인근을 뜨겁게 달군 바 싱싱잇. 화려한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는 칵테일, 하이볼, 와인 등 다양한 음료뿐 아니라 감각을 자극하는 DJ의 세련된 선곡, 기존 골조를 살린 러프하고 개성적인 인테리어가 싱싱잇에서만 가능한 공간 경험을 만든다.
섬고래
그 이름부터 낭만이 묻어나는 식당 섬고래는 제주 바다의 향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철 생선과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일식을 제안한다. 가족이 직접 잡아올린 생선을 활용한 제철생선회, 숙성 연어와 신선한 아보카도가 조화 이룬 연어아보카도덮밥, 퓨전 스타일의 전골 요리 흑돼지스키야끼까지. 든든한 한끼로도 좋고 낭만적인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예술가의 집을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인테리어는 더욱 기분 좋은 식사를 완성한다.
스테이가 추천하는 주변 카페
카페이면
다양한 핸드드립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감각적인 로스터리 카페. 원하는 원두를 직접 시향한 후 메뉴를 고를 수 있고, 커피는 각양각색의 사랑스러운 빈티지 잔에 담겨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림 속 집 같은 담백한 외관과 균형 있는 박공형 지붕도 그 자체로 발길을 잡아끄는 공간 요소. 내부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 아래 설치된 실링팬, 쉬폰 커튼이 살랑이는 큼직한 창, 그리고 창가에 마련한 고즈넉한 자리가 나타나며 카페이면만의 감성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STAY
새살이 차오르는 나의 오감
아주 무뎌져 있었다. 바쁜 현대인을 자초하며 일상의 굴레에 잠기다 보니 감각이 무뎌 있었던 모양이다. 월령리에 자리한 이 현대적인 동굴에서의 하룻밤은 나의 감각을 다시 재생하기에 충분했다. 자연의 물성이 전하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느끼며, 제주가 품은 독특한 풍경을 천천히 음미한다. 어둠이 스민 공간 가운데 기대어 찬란하게 빛나는 창 밖의 세상을 감상하는 경험.
이곳의 어둠은 한없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동굴 속으로 도망친 것이라 해도 그저 기꺼울 뿐이다. 모든 것에 맞설 필요는 없다. 나의 피난처, 나의 안식처가 있으므로. 잘 쉬고 난 자리에는 금방 새살이 차오를 것이다.
4:00 pm
경계 없는 거실
선인장밭과 그 너머 펼쳐진 하늘을 향해 열린 거실. 압도적인 높이의 천장 아래에서 풍경을 바라보니 그 자체로 이색적이다. 푸른 선인장을 멍하니 감상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거실 앞마당으로 달려나간다. 선인장은 생각보다 부드럽구나.
7:00 pm
노을과 함께 물장구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이 수면 위에 비친다. 온 가족이 들어가도 넉넉할 크기의 수영장에 몸을 담그니 제주의 땅과 같은 눈높이다. 바로 앞에 펼쳐진 돌담이나 선인장밭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8:00 am
아주 근사한 아침
높이 솟은 거대한 벽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압도적인 크기의 프레임 너머, 한적하고 여유로운 동네 풍경이 눈에 담기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지난 밤을 편안하게 지켜준 이 동굴에 고마움을 느끼며 기지개를 켠다.
10:00 am
촉각이 살아나는 주방
평범한 식사의 경험도 풍부하게 만드는 주방이다. 거대한 돌 여러 개를 쌓아 올린 아일랜드는 묵직한 미감을 전하고, 세심하게 계획한 조도는 더욱 운치 있는 식사 시간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