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의 어느 샛길에는 60년이 넘도록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한옥이 있다. 이곳의 이름은 고유(高遊), '속세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노닌다'는 본래의 뜻을 담았다. 1956년 하늘의 복과 땅의 온기를 비는 상량문을 올리며 지어진 한옥을 기반으로 고유는 옛 가옥의 전통적인 곡선을 살리면서 편리함을 더하였다. 고유는 한옥의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현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실내에는 커다란 욕조, 거실, 주방이 있고 침실, 화장실, 파우더룸, 샤워실은 각각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욕조가 내부에 있어 계절과 관계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거실의 좌식테이블에서는 차를 마시며 바깥을 관조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주방에는 식사에 필요한 도구들과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실 수 있다. 침실에는 원형의 창을 내어 언제든지 시선이 하늘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였다. 마당에는 전용 수영장과 수경 공간이 자리한다. 수경 공간은 고유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물을 담아 하늘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었다. 맑은 날에는 물 위에 구름이 떠 있고 비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날이면 수면 위로 퍼져나가는 물의 파장이 인상적이다. 옆에는 고고한 소나무와 너럭바위가 있다. 이들은 묵묵히 고유의 마당에 자리 잡아 세월을 함께 보낸다. 마당이 들려주는 자연의 이야기들은 바쁜 도시 생활로 인해 잃어버린 생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고유에서의 시간은 오감을 자극한다. 남부시장의 인근에 있어 전주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창 너머의 풍경을 눈에 가득 담고, 수영장에서 자유로이 헤엄쳐도 좋겠다. 차가워진 몸을 차향의 온기로 보듬고 바람에 솔잎이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비워내고,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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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박기훈 (@arc_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