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 까치전라 / 전주시
2023. 9. 27. by. 신재웅
글ㆍ사진 ㅣ 신재웅
유독 더위가 크게 느껴졌던 이번 여름, 그리고 더운 날씨 속 반복되는 일상에 번아웃이 올 때쯤이면 기가 막히게 힐링이 필요하다고 신호를 주는 나의 몸. 그럴 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푹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이 든다. 더욱이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보다는 약간의 낯섦이 섞여 있는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쉼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요즘 사회인에겐 어느 약보다 나은 처방전이 되지 않을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맑은 날의 여행을 기대했었는데, 비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산을 쓰고 한옥마을의 골목골목을 지나 까치가 그려져 있는 간판을 찾았다. 까치라는 새가 예로부터 희소식을 전해주는 길조이다. 그래서인지 스테이 입구에서부터 맞이하고 있는 까치 스탠드 간판을 찾아 들어오면, 시끌시끌했던 한옥마을의 분위기는 순간 음소거가 되고 오롯이 공간에 집중할 수 있는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다.
친절하신 호스트의 안내를 받았다. 간단하게 공간의 히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신다.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한옥스테이 ‘까치’는 60여 년 된 전통 한옥을 리노베이션하여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세련된 감각이 더해진 매력적인 한옥스테이다. 스테이 네이밍 또한 집같이(까치) 편안한 공간을 생각하며 나온 이름이라 하였다. 여러 스테이를 돌아다니며 느꼈지만, 이런 공간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공간의 쓰임에 더욱 신중해지고 소중해지는 느낌이랄까! 히스토리가 있는 공간에 내가 있다는 그 오묘한 느낌이 남다른 것 같다.
‘까치’에 들어오는 순간 보이는 툇마루는 옛 시골 할머니 댁에서 뛰어놀던 추억도 생각나게 해주는 매력적인 소스이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마루에 앉아 회전되는 선풍기 하나로 밥도 먹고 수박도 먹던 추억이 생각나기도 했다. 1박 하는 동안 실제로 은근히 여기에 나와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기도 하였다.
숙박하는 게스트 한 명 한 명 이름을 써주시며 편안한 시간 보내라는 사소한 이 메시지 하나가 쉼이라는 목적으로 모인 게스트들에게는 호스트의 따뜻한 인사가 진심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짐을 풀기도 전에 툇마루에 앉아 담 너머 보이는 풍경을 보며 한숨 돌리고 있을 때쯤 신기하게도 까치가 내려앉아 이곳에 왔냐고 반기듯이 꺅꺅거리며 한참 앉아 있는 것을 쳐다보기도 했다.
공간을 마주하는 데에도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딱 들어갔을 때 약 수십초 내에서 느끼는 감정의 폭이 숙박하는 내내 이어진다고 본다. 내부에 들어오자, 코를 간지럽히는 좋은 냄새와, 공간의 따스한 이 설명 안 되는 높은 감도가 이곳이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한옥의 쉐입이지만 내부는 브랜딩이 잘 된 고급스러운 호텔의 느낌이랄까.
깔끔한 호텔 느낌에 한지를 찢어 만든 듯한 조명과 큰 통창을 가려주는 커튼에서 오는 전통적인 요소들이 현대적인 레이아웃에 포인트를 찍어 주듯 한 끗을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 멋졌다. 그리고 ‘까치’에는 내부 곳곳 창을 내어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한옥의 백미는 차경이란 말이 있다. 거실에 앉아 툇마루로 이어지는 통창을 통해 한옥마을 너머 산과 하늘이 안마당처럼 들어와 풍경 놀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며, 여기서 오는 사색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욕실에 들어가는 세면대조차 창을 내어 바깥을 바라볼 수 있게 해놓았다. 라부르켓 태그에서 나는 자연적인 향과 몸을 씻어내는 어매니티 또한 이솝인 것을 보면 호스트의 향 감도를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욕실 들어가는 벽면에 Cigarette After Sex 테이프를 작품처럼 전시 해놓을 줄이야! 이렇게 공간을 즐기는 힌트를 주시는 건가요?!
침실은 프레임 가구로 매트리스를 높인 게 아닌 원목으로 단을 만들어 매트리스를 올려두었다. 이곳에 누워 발밑으로 내려보는 앞마당 또한 너무 좋은 액자가 아닌가! 정말 혼자 책을 읽든 낙서하든 집중하기 좋은 침실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잠시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 조명이 켜진 앞마당에 나와 괜히 걸어보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했다. 자쿠지는 아니더라도 족욕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도 있고, 다 같이 마당에 앉아 즐길 수 있는 소파도 있고, 환한 조명이 아닌 은은하게 비춰내는 마당의 조명이 비에 맞은 이곳의 감도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잠시 비가 안 오는 시간을 틈타 어두워짐으로써 더욱 밝아진 한옥마을을 구경하며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낮에 보았던 느낌과는 다른 실내를 느낄 수 있었다. 큰 펜던트 조명 하나로 공간 무드를 잡고 음악을 조용히 듣고 있으니, 이곳에서 보내는 밤이 왜 이렇게 아쉽던지! 호스트께서 준비해주신 와인과 치즈를 가볍게 즐기고 멋도 부려보며 아쉬운 밤을 보내었다.
다음날이 되니 비는 그쳤지만, 맑은 날의 ‘까치’는 구경하지 못했다. 사실 사진에 담기 위해 맑은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비가 오는 ‘까치’를 즐기고 나니, 뭔가 이 공간은 분명 맑은 날도 좋겠지만 이런 빗소리를 즐기며 보내는 시간도 쉼이라는 목적 아래 너무 훌륭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깨알같이 리모컨 박스에서 찾아낸 GBH 윷놀이 세트.
호스트께서 냉장고에 넣어주신 과일과 주스, 그리고 드립백까지! 준비해 주신 모든 것을 툇마루에 앉아 아낌없이 먹으며 ‘까치’의 아침을 즐겼다. 비가 온 후 아침이라 그런지 한여름임에도 덥지 않은 이 기분이 참 좋았다.
‘까치’를 나가는 길이 아쉬웠던 것을 보니 스스로 꽤 만족스러웠던 공간이었나보다. 아무래도 일상에 루즈함과 일에 대한 번아웃이 올 때쯤 방문한 곳이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 이곳은 이 결을 아는 사람이 온다면 무엇을 하든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의 쉼을 즐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혼자와도 좋고, 둘 이와도 좋고, 호스트의 첫 소개처럼 집 같은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말이 확 와닿았다. 당분간 여기서 보낸 휴식의 시간을 연료 삼아 한동안 다시 일상에 복귀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시간을 제공받은 것 같아 기분 좋게 ‘까치’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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