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당아진제주 / 제주시
2025. 2. 23. by. 고서우
행복의 촉감을 느끼게 해준
온기의 공간
글ㆍ사진 ㅣ 고서우
기념하고 싶은 날이나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만한 날에는 언제나 스테이폴리오의 숙소들을 떠올리곤 한다. 보기 좋게 정리돼 있는 숙소 라인업을 스크롤 하다, 멈칫하게 되는 그곳에 예약하면, 날짜를 카운트하는 그때부터 여행하는 기분으로 마음이 방방 들뜬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될 무렵. 기분을 내려 ‘송당아진’을 예약했다. 있을 곳 하나 정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착, 착, 착 진행이 빨라졌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는 컬러를 입은 한 권을 골라 가방에 넣어놓고, 어떤 영화를 볼까 장르를 선택해 두었다.
이윽고 체크인 날짜가 다가왔다. 오후 네 시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평소 따뜻한 커피보다는 시원한 커피를 즐기는데, 기분이 이끄는 대로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들이켰다. 그러다 손목시계를 보니, 천천히 일어나 출발해도 좋을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오늘 나의 쉴 곳, 목적지를 향해서!
제주 감성 숙소 ‘송당아진’에 도착하자, 사진에서 느껴지던 규모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 키 낮은 저 오름은 이름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였던 것 같다. 핸드폰을 꺼내들어 지도를 살펴보니 ‘안친오름’이란다. 가까이에서 보려고 우선은 ‘송당아진’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익숙하면서도 기분 좋은 향기가 나를 맞이했다. 파인 스테이에서 종종 맡아볼 수 있는 차분하고도 그윽한 우디 향. 너무 짙지 않아, 오래도록 맡아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송당아진’은 신발을 벗고 선 곳을 기준으로, 좌우 공간이 나뉜다. 눈에 먼저 띄던 쪽이 좌측, 주방 방향이었기에 발길이 이끄는 대로 들어갔다.
복도에서 보이던 주방이 마련돼 있고, 아주 넓은 거실을 만나게 된다. 거실의 크기만 한 통창과 함께. 저 오름을 가까이에서 보려면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내 상상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날씨는 해가 있다, 없다. 거의는 흐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초록이 반사하는 따뜻함은 ‘그림 같다.’고 표현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양말이 미끄러지듯 그대로 턴하여 뒤로 돌았다. 거실과 주방을 나누는 단차에는 초록의 자연이 자라고 있다. 푸릇푸릇한 작은 것들에 잠시 햇살이 내리쬔다.
나는 그것을 놓칠세라 부랴부랴 카메라를 꺼내,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곶자왈을 아주 작게 만들어서, 실내에 가지고 들어온 듯이 아름다웠다. 나도 나중에 내 집에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또 피어올랐다. 아무튼 파인스테이를 하나, 둘 만나볼 때마다 마음 한쪽에 욕구가 쌓이고 있다.
6인용 식탁이 있는 주방은, 여럿이 모여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식탁에 어울리게 이것저것 없는 게 없었다. 원래는 시간이 맞는 대로 우리 부모님과 셋 아빠(제주도에서 둘째 아빠를 셋 아빠라 칭한다.) 식구들과 함께 오고자 했었다. 갑작스러운 마음에 예약하게 된 탓에 동행할 수 없었지만, 그 아쉬움이 그대로 환영처럼 보였다.
분주히 식사를 준비하고, 어른들을 간간히 통창 너머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저마다의 느낌을 내뱉는다. 감탄사랄까! 상상할수록 아쉬워, 손사래로 상상을 깼다. 식탁에 앉아 저녁 먹을거리를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볼 따름이었다.
이어, 2층으로 올라가려 반대편 복도로 향했다. ‘송당아진’에는 반 층 공간이 하나 있는데, 마치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었다. 한 권, 한 권의 표지가 이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호스트의 섬세한 셀렉이 돋보였다랄까.
천천히 오르며 살펴보는데, 작은 거실을 또 만났다. 빈백과 낮은 테이블이 놓여 있는 모습에서 나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는 생각인가 싶어도 정말 축 늘어뜨린 채로 포크에 좋아하는 과일 하나 끼우면 그만일 공간이었다.
다수가 모이면, 이 공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효율성 있게 활용해 볼 수 있을 만도 했다. 커다란 TV 화면에 프로젝트를 띄우고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눈다거나, 각자의 취향이 이끄는 대로 자리를 잡고 푹 쉰다거나 등.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좋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이 공간에서 들었다.
혼자서 연말을 보내러 온 나는 그저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이곳에서 영화를 보며 딸기나 먹어야지.’ 할 뿐, 신나는 발걸음으로 3층 복도로 올라갔다.
여럿이 모여 워크숍을 해도 좋을 만한 숙소답게 ‘송당아진’에는 3개의 방이 있었고, 침실은 어느 한 곳 서운하지 않게 널찍한 구조였다. 한 침실에는 퀸베드가 두 개 들어가 있었는데, 4인 가족이 한방에 머물러도 편안할 면적의 모습이었다.
가장 컸던 그 방에는 그물을 엮어 만든 대형 해먹이 있는데, 편하게 기대어 앉거나 누워 1층에 있는 사람에게 장난을 치기도, 고개를 돌려 저 오름을 바라보기에도 매우 좋아 보였다. 호기심이 일어서, 잠깐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 발, 한 발 발을 디뎌 그 위로 올라섰다.
조심히 몸을 뉘어 누워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편안하게 몸을 받쳐주어 무서움도 긴장도 달아났다. 더운 계절이면, 에어컨 틀어놓고 여기에 누워 낮잠 한 숨을 자도 좋을 법했다. 호기심에 드러누웠던 몸을 일으켜서 마저 공간을 둘러보았다.
사실 3층에 올라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널찍한 3개의 방도, 큰 해먹도 아니었다. 다수가 모여 티타임을 나눌 수 있게 마련된 다실이었다. 잠시 햇살이 다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맑게 빛나며 해를 반사하는 찻잔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다.
‘송당아진’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여럿이 함께 오지 못해 아쉬움이 커졌다. 영상통화로 보여주며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함께 할 수 없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하고자 했던 대로 가족끼리 와야겠다는 다짐을 새겼다.
내가 찾은 계절은 날씨가 추워서 이용할 수 없었지만, 제주 감성 숙소 ‘송당아진’에는 넓은 풀장도 준비돼 있다. 하절기에 시원한 물로만 운영하고 있다고 안내돼 있었는데, 여름이면 바다로, 호텔로 수영장을 찾아 돌아다니는 우리 조카들이 이곳에 오면 프라이빗하게 더욱 긴 시간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 여름의 ‘송당아진’에서 바라보는 ‘안친오름’은 그 푸릇푸릇함이 더욱 짙겠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배꼽시계가 울렸다. 나는 가까운 구좌농협하나로마트를 찍었다. 그곳에서 회를 한 접시 사고, 회를 싸 먹을 깻잎과 상추도 구입했다. 그리고 잊지 말고 데려가야 할 딸기도 굵직한 것으로 골랐다.
어둠이 내려앉은 ‘송당아진’. 커텐을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따뜻한 조명이 나를 다시 반겨주었다. 낮보다 훨씬 거세게 바람이 불었고, 그만한 추위가 몸을 에워쌌다. 숙소 문을 열자마자 몸을 재빨리 안으로 들였다. “아! 따뜻해!”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오던 기억!
낮에 이곳을 둘러보며 상상했던 그대로, 식탁 위에 회와 영화를 세팅했다. 먹느라 영화의 앞 장면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회 한 접시를 비웠다. 먹고 나니 아까 그 빈백으로 얼른 옮겨갈 생각만 들었다. 지체하지 않고 먹은 것들을 치우고, 딸기를 가득 담아서 계단을 올라갔다.
빈백에 누워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달콤새콤한 딸기를 입에 베어 무니, 연말이 지나감에 아쉬움은 전혀 느낄 새도 없이 행복 가득이었다. “이대로만.” 지금처럼 추운 계절엔 따뜻하게, 더운 계절엔 시원하게 누워 좋아하는 한 가지의 과일과 무료함을 없애 줄 영화 한 편이라면 이 이상의 만족을 찾을 필요 없을 것이다.
석 달째 이어진 기침에 많이 지쳐 있기도 했는데, 시원한 딸기로 채운 배를 따뜻한 물 안에서 녹이며 반신욕을 즐기고, 그대로 따뜻하게 데워진 침실에 누워 자니 불현듯 아침엔 기침이 나오지 않음을 깨닫기도 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매트리스 너무 편안하다!”
매트리스가 어떤 건지 알고 싶어 몇 번 뒤적이다가, 꽁꽁 숨은 라벨을 못 찾겠어서 포기했다. 여담이지만, ‘송당아진’에서 하루를 머물고, 그날 내 집에서 다시 밤을 보낸 뒤, 나는 일어나자마자 매트리스를 구입하러 갔다. ‘송당아진’에서의 매트리스 그 촉감을 기억해 내려 애쓰면서 얼마나 누워 보고 상담했는지 꼭 쓰고 싶다. 그 정도였다고. 그리고 나는 정말 ‘송당아진’에서의 기억 때문에 곧장 매트리스를 배송받았다는 후문까지.
즉흥으로 만들어진 여행에서 진정 편안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든 게 한 단계 성숙해져 버렸다. 피로할 때마다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떠올리게 될 ‘송당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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