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햇살과

찰랑이는 봄의 속삭임

글ㆍ사진 ㅣ 고서우

“봄이 오려나?”

하늘을 보며, 바람의 온도를 느끼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게 되던 날씨였다.

바람은 무척 셌지만, 햇살이 따듯해서 겉옷을 벗어도 춥지 않았던 그런 날이었다.

산방산이 보이는 지점에 다다르자,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멈추었다. ‘자단연원’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차를 세웠다. 이 길목은 자주 지나치는 곳인데, 늘 어딘가와 어딘가를 잇는 길목으로 빠르게 지나가기만 해 왔지, 이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숙소가 숨어있을 줄이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언제 쌓았는지 모를 오래된 돌담 그리고 굵은 줄기에 이끼를 가득 묻힌 나무들이 빽빽하게 보인다. 또한 유독 산비둘기들이 많았는데, ‘자단연원’으로 들어가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단연원’의 대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이 발보다 시선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본다. 얕에 깔린 물 위로 햇살이 반짝인다. 물결이 출렁이는 쪽으로 눈을 돌리니, 새들이 이곳에서 노닌다.

‘자단연원’의 정원은 마치, 산새들에게 잘 알려진 놀이터인 양 너도나도 차례를 지켜가며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가니, 그 모습이 내 눈에 보기 좋았다. 햇살이 반사되는 물 위에 자연이 다녀가는 모습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따뜻함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예쁜데?”

아직 이곳을 다 둘러보기도 전이었지만, 첫눈에 반하고 나니 지체할 것도 없었다. 천천히 걸으며, ‘자단연원’의 정원을 산책하였다. 아이처럼 들뜨는 기분으로.

마당 한 편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다도 공간이 있었는데, ‘자단연원’에 연박하는 손님이라면 필히 오전을 차 한 잔으로 보내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분위기였다. 아침의 햇살이 가득한 정원을 마주 보며, 따뜻한 녹차를 마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도실에서 얼마간 머물며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정원을 바라보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다도 말고도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경험들을 위해 그 자리를 나와야 했다.

겨울의 누런 잔디가, 여름의 푸릇함으로 뒤덮이면 또 얼마나 예쁠까 싶긴 했어도, ‘자단연원’ 특유의 차분함은 오히려 추운 계절의 이 색깔이 더 잘 어울리는 듯 느껴졌다.

특히, 매우 고요하고 무엇 하나 나서지 않는 와중에서 유독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물빛만을 보고 있으면, 겨울이나 봄의 매력을 눈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밖에서 보고 느낄 게 풍요로워서, 비교적 늦어서야 실내로 들어갔다. “좋은 향기가 나.” 여기도 우디한 향기가 현관에서부터 퍼졌다.

스테이폴리오를 통해서, 나무의 색을 닮은 숙소들을 몇 곳 여행하다 보면, 어떤 색의 공간에는 어떤 향이 어울리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특히 짙은 나무의 색이나 초록이 느껴지는 곳은 우디한 향이 현관에서 퍼질 때, 그 공간을 또렷이 인식하게 만드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자단연원’은 넓은 거실과 주방, 6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식탁이 있고, 한 개의 침실과 침실 안에 마련된 욕실, 매우 넓은 수영장, 수영이 끝나면 추운 몸을 녹이게 되는 순서대로 수영장 끝자락에 자쿠지까지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뒷마당에는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바비큐 시설까지 알차게 있으니, 여럿이 방문하여 논다면, 이 안에서 하루를 모두 써 가며 놀아도 지루함이 없을 모습이었다. 

‘자단연원’을 검색하면, 단연코 수영장이 사람들의 후기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다.

나도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는데, 그냥 넓다는 수준의 수영장이라고 표현되기에는 아름다운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치 형태를 따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터널은 곧 자쿠지와 연결되는데, 온수풀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와 함께 보면 꼭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함께 노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아도, 몽환적인 이미지이다. 이곳의 수영장은 넓고, 아름다우며, 기록의 가치가 있다.

튜브와 썬베드도 준비돼 있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사람들도 튜브를 타고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수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또한 썬베드에 누워 책을 읽거나, 음료를 마시는 것으로 함께 기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폴딩도어를 모두 젖히면, 불어오는 봄바람이 더욱 신나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친구가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추천해 줄 수 있냐고 물어 왔었는데, 겨울에도 따뜻하게 놀 수 있는 실내 수영장이면 좋겠다고 했다. 생각하다, 모든 조건을 갖춘 숙소가 몇 곳 없어 괜스레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자단연원’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겠다는 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늦게라도 추천을 해 주었다. 다음 기념일엔 이곳으로 정하라며.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나오면, 바로 샤워실에서 간단한 샤워를 할 수도 있다. 샤워 후에는 따뜻한 물을 받아놓은 자쿠지 안으로. 그것이 꿀잠 자기 전 필수코스이다.

자쿠지 안에서 콧망울에 송글송글 올라오는 땀을 좀 닦을 때까지 기다리다, 밖으로 나와 깨끗이 씻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한다. 여긴 비교적 주변 식당이나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서 더욱 좋았다. 포장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서, 직접 고기를 사와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다는 점! 그러고 보니, 바비큐장과 넓은 식탁 동선이 짧았다. 밖에서 고기를 굽고, 접시에 고기를 담아서 내부 식탁에서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워서 바비큐 해 먹기를 고심하는 사람들의 선호도를 받을 만했다.

즐길 거리가 무척 많았다. 다도, 수영장, 자쿠지, 바비큐, 거실에 편안한 자세로 감상하는 음악과 영화. 하루가 새까매지도록 머물러도 모두 다 할 수 없는 것들에 즐거운 피로가 쌓였다.

양치를 하고, 침실에 누웠다. 침대 프레임 하단에서 새 나오는 빛 덕분에 잠들기 직전까지도 편안하게 핸드폰을 할 수 있었다. 손을 뻗으면 바로 그 불을 끌 수 있도록 스위치의 위치가 머리맡이라는 점은 내게 감동이었다. 다양한 곳을 여행할수록, 작게 혹은 크게, 내 집을 어떻게 구성하고 싶다는 밑그림이 그려지는 것 중 하나로 남았다.

정말 푹 잤다. 따뜻한 방 안에서 푹 자니, 이른 아침에 눈이 쉽게 떠졌다. 뒤척이다 욕실로 들어갔는데, 블라인드 아래로 햇살이 또 예쁘다. “아, 날씨 흐리면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또 욕심을 부리게 만든다.

씻고, 침실 밖으로 나와 보니 중정에 내린 아침 햇살과 오늘도 찾아온 산비둘기들이 어제보다 더욱 아름답다. 거실에 완벽한 통창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알았다.

그날, 그날, 오늘의 날씨를 거실에서 마주 볼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물론, 오로지 자연만을 담아내는 창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고마웠어. 다음에 또 만나.” 숙소를 나올 때마다 꼭 현관 앞에서 하는 말이다.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며, 나와 기꺼이 놀아주고 대접해 준 집이, 왠지 나를 배웅하고 있는 것 같아서.

천천히 걸어 나가는 걸음에 아쉬움이 잔뜩이다. 차라리 흐려서, 어제보다 덜 예쁜 얼굴을 하고 있지, 생각했다. 아무 때나 왔다 가는 산비둘기들이 부러워지던 아침. 다음 기회가 된다면, 눈 내린 ‘자단연원’을 만나보고 싶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Traveler 고서우
당신과 나눠 가질 나의 공간기억

▶️ 작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