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부산 / 해운대구
2025. 4. 16. by. 영지
글ㆍ사진 ㅣ 영지
무거운 겉옷을 벗고 떠날 여정. 가벼운 옷차림을 고르고 있자니 봄이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길어진 해와 따뜻해진 낮 기온에 마음이 설렜고 안 그래도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찾아보며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붐비는 5번 탑승장에서 8호차 기차를 기다렸다. 목적지는 부산행이다. 얼마 만에 부산인지, 기차에서 낭만 있는 여유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트북에 간식까지 챙겼지만 조용한 기차 칸 덕인지, 옆자리에 앉으신 중년 신사의 책장 넘기는 듣기 좋은 종이 소리 덕분인지 앉자마자 눈을 감았다.
부족했던 아침잠을 채우며 도착한 부산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스크린도어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렸고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역마다 지하철 들어오는 알림음이 다르다더니 뱃고동 소리라니, 부산으로 여행 온 것이 실감 나며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스테이 ‘스토브(stov)'는 여정 중 두 지점 사이에서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는 ‘stopover'의 준말로 오늘의 쉼이 되어줄 공간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미드센추리와 현대적이며 기능성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스타일. 스토브만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눈에 띄는 곳이었다.
한 팀만을 위한 스테이로 요청 시 바베큐파티도 즐길 수 있는 마당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보이는 식물들이 봄을 맞아 푸르름과 꽃을 이제 막 피워내고 있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이었다.
공간에 들어서면 보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과 깔끔한 화이트 인테리어는 볼수록 탐이 나는 부엌이었고 조식을 만들어볼까 고민케 하는 커피머신과 토스터, 파스타 면까지 구비되어 있어 평소 잘 하지 않는 요리 욕심까지 생겨나는 주방이었다.
거실을 지나쳐 나타나는 스토브의 다이닝룸은 잘 꾸며낸 스튜디오 같았다. 하얗고 넓은 식탁에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품들과 음악, 앞으로 어디에선가 비비드한 오렌지 컬러를 보게 된다면 이곳 스토브를 떠올릴 것만 같은 심플한 공간을 책임지는 포인트 컬러까지 센스있는 공간에 감탄했다.
다이닝 룸 안쪽, 작은 반 층에는 아담한 소파와 TV가 있었는데 아늑한 공간까지 살려내 알차게 공간을 즐길 수 있었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어줄 스토브의 침실은 양쪽 모두 무선충전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충전기는 필수로 챙기는 편이었으나 두고 오는 바람에 살 참이었는데 말이다. 하얀 침구에 앉아 마주 보는 파우더룸에도 클렌징 오일과 폼, 렌즈 식염수와 치실 등 호스트의 섬세한 준비가 맞아주었다.
공간을 둘러보며 짐을 풀고 숙소와 가까운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숙소 바로 앞에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가 지나가는 선로가 있어 작고 귀여운 열차도 보며 걸어갔다. 흐린 날씨였지만 부산에서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는 휴식의 큰 일부가 되어줬다.
대체로 여행의 순간 중 나는 딱 지금, 이 순간을 좋아한다. 조금 어색한 타지에서 사진으로 익히 봐둬 익숙함을 주는 포근한 숙소에, 무거운 짐을 내려두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여행지를 둘러보러 나온 지금의 설렘이 참 좋다.
모래도 밟고 바다도 눈에 가득 담고 바닷바람도 실컷 맞았다. 모래 장난을 치는 아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거니는 사람, 서프보드를 세워 모랫바닥에 푸욱 찔러두고 파도를 보며 때를 기다리는 서퍼 등 각자의 방식으로 부산의 봄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어둑해질 즈음 금방 익숙해진 동네에 정감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왔다. 주방 맞은편에 있는 빔프로젝트를 내려 평소 보던 드라마를 틀어두고 기분 좋은 피로를 풀기 위해 잠들 준비를 했다.
내일 비 예보가 있었는데 여지없이 늦은 밤부터 옅은 빗방울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쯤 마당을 짙게 적셨으려나, 모자람 없이 편안한 이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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