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골목길, 그리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도 만나볼 수 있는 스테이 누하의 대문을 열면 펼쳐지는 작은 인왕산을 품은 한옥이 있다.

개울이 흐르는 물소리와 바위, 그 틈 사이에 피어난 식물과 꽃들을 천천히 걸어 지나치고 공간을 마주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을 라운지와 침실로 크게 나누면서도 구성을 섬세히 나눠 내 어디서 어떻게 이 공간을 충분히 누릴지 고민하며 눈에 다 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라운지 공간에는 제자리를 찾은 듯 들어맞는 가구들과 감도 높은 식기와 잔, 벽난로가 있었다. 불을 붙여 공간에 아늑함을 더하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소파에 앉아 차지 않은 봄바람을 맞으며 잠시 누하의 계절을 만끽 했다. 

눈과 피부로 느끼는 봄, 공간을 채우는 음악과 정원의 소리와 향까지 이 순간의 기분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오래도록 기억될 찰나임을 그때에도 나는 알았다.

라운지 사유함에는 공간을 방문한 이들의 짧은 기록을 담은 한옥에세이가 있어 오랜만에 연필도 잡아봤다. 종이 위로 사각거리는 끄적임은 마치려던 글을 괜스레 길게 늘어뜨리게 만들었다. 나는 공간을 온전히 누리고 있었다.

섬돌에 신을 벗어두고 침실로 향했다. 스파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욕실, 문을 열면 정원이 바로 보이는 포근한 침대가 맞아주었고 늦지 않은 시각에 공간을 즐기기 위해 차를 우려내고 서촌의 유명한 구움 과자도 함께 욕조 트레이 위에 올려두고서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물을 받는 시간 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정원을 바라보기도 라운지 공간에 시선을 두기도 하며 편안하고 아늑한 이 공간을 참 마음에 들어하며 습관적으로 들던 핸드폰은 내려두고 평소 못 누렸던 여유를 즐겼다.

자주 놀러 오던 친숙한 동네 서촌에서의 하룻밤이 이리 설렐 일인가. 붙여두었던 벽난로의 불도 어느새 옅어지며 대문 밖 누하동은 어느덧 조용해졌다. 그저 이곳 스테이 누하의 소리뿐이었다.

이른 아침, 개운한 잠에서 깨어 라운지로 향했다. 마침, 어제는 없던 햇살이 들어왔다. 내게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어느 날에 언제라도 누하의 정원을 떠올릴 수 있게 마주한 소파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공간이 갖춘 여유로운 시선에 동참하고 주고자 했던 충분한 환대를 받으며 누하를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