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집 두모공제주 / 제주시
2025. 5. 21. by. 고서우
글ㆍ사진 ㅣ 고서우
아직 물이 차가울 텐데, 판포포구엔 알록달록 튜브를 낀 사람들이 많았다. 썰물 때의 물 색깔도 예뻤기 때문에 저절로 눈이 갔다. 갓길에 차를 세워 구경하다 갈지 고민했지만, 순간적인 판단이 사고로 이어질까 그대로 목적지를 향해 전진할 뿐이었다.
오늘의 스테이는 어떤 모습으로 첫인상을 남길까? 궁금한 마음에 자꾸만 시선이 앞섰다. 저쯤인가, 하며 올려다본 곳에 붉은색 벽돌집이 여기라고 마중 나와 있었다.
‘제주집 두모공’에 주차하려는데, 눈앞에 포구가 펼쳐져 있다. 윤슬을 가득 뽐내는 바닷물엔 하얀색 풍차도 서 있다. 바로 가까운 풍경이었기 때문에, 포구에 먼저 다가가 보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어깨를 펴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짭짤한 바닷바람이 향긋하다. 얼굴에 바닷바람을 잔뜩 맞으며 걸어도 산뜻하기만 한 게, 새삼 4-5월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맞다. 그걸 아는 사람들이 포구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저마다의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이 포구는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무슨 포구일까?” 궁금해서 지도를 켜 보았다. 한경면 두모리에 있는 ‘두모포구’. 그리고 ‘두모방파제’라고 한다. 모르고 살던 예쁜 스팟을 발견한 기분에 뿌듯했다. 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가벼운 산책을 했다.
가족이 삼삼오오 앉아서 맛있는 것도 먹고 노는 소리가 시끌시끌 듣기 좋았다. 엄마 손을 잡고 산책하는 아이의 웃음도 윤슬 곁에 더욱 반짝거렸다.
내부가 비교적 어두운 편이긴 했지만, 낮은 조도가 답답함을 주기보다는 아늑함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점이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계단이 많았던 ‘제주집 두모공’의 구조는 한마디로 재밌었다. 1층에는 주방과 식탁, 반 층을 올라가면 계단 복도에 잠시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1층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손님 중에서 청소년기 자녀가 있다면, 아마 이 자리는 자녀들이 가장 좋아할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2층에는 욕실과 거실이 있는데, 거실이 무척 넓은 편이다. 이 거실에서 한라산을 조망할 수 있다. 넓은 만큼 소파도 커다란 게 마련되어 있는데, 앉아보니 눕고 싶은 푹신함이었다. 여기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한라산을 본다는 것! 상상해 보니 여긴 부모들이 좋아할 공간임이 분명했다.
욕실에는 작지만, 몸을 데울 수 있는 히노끼 욕조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반신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환영할 만한 모양이었고, 나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가 눕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꽤 반가워했다.
3층으로 올라가 보면, 함께 놀러 온 이들과 하루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대화의 자리가 있다. 침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작은 주방인데, 4인용 식탁 옆엔 작은 창이 나 있고, 그 창으로 바다와 골목을 만날 수 있다.
1층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이 자리에서 간단한 맥주와 주전부리를 할 수 있어 좋은 구성이라고 느꼈다.
침실에는 퀸베드와 싱글베드가 하나씩 있고, 낮은 조도를 써서 아늑함이 배가되도록 했음이 보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의 침실이어서, 누워 보기도 전에 마음에 들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개인 시간이 보장된 여행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제주집 두모공’을 만났을 때 여행 니즈가 100% 충족될 것이라는 확인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층마다 책을 가득 채워둔 호스트님의 배려가, 서로의 방해 없는 조용한 시간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다시, ‘제주집 두모공’의 1층으로 내려갔다. 폴딩도어를 열어, 바깥 공기를 안으로 들였다. 캠핑 의자가 놓여 있는 곳에 앉아도 보았다. 깨끗하게 가꾼 소정원과 가까운 데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제주도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여행객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동네라서, 이곳에 앉아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주방을 뒤적거리면서 보니, 여행에서 식도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님들을 배려한 호스트님의 마음도 엿보였다. 대량의 물과 종류별로 큰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운 라면들.
웃음이 나와, 친구들 단톡방에 올려 보기도 했다. “즐길 줄 아는 너희가 이곳에 와야 한다.”라며 은근히 부러움을 사려고 들었다.
본인들 대신해서 고기를 구워 먹고, 라면 좀 먹으라는 성화를 못 들어줘서 미안했지만, 이런 숙소가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내 마음은 뿌듯했고, 친구들은 좋아했던 게 생각이 난다. 여행기를 적으면서 혼자 가장 많이 미소를 지었던 곳이 ‘제주집 두모공’인 것 같다.
오롯이 혼자 여행을 만끽했던 나는, 가볍게 조리하려 배불리 먹고 얼른 눕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침실이 무척 궁금했던 것 때문이지 싶다. 급하게 씻자마자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서는 침실 문을 열었다.
포옥, 감기는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턱 밑에 팔을 괴고, 몇 번 눈을 끔벅이다 잠이 들었다. 낮에 보았던 예쁜 것들을 다시 만나던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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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고서우
당신과 나눠 가질 나의 공간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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