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워터하우스서울 / 종로구
2025. 5. 22. by. 전욱희
글ㆍ사진 ㅣ 전욱희
5월의 연휴 마지막 날, 남편과 함께 삼청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사 준비를 하느라 어질러진 집과 마음을 여행의 기운을 빌어 짧고 강하게 환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삼청동은 자주 오는 동네지만 매번 새로운 발견이 생기는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도 신선한 영감이 우리를 깨워주길 바라며, 지하철을 타고 삼청동을 향했다.
안국역에서 북적이는 골목을 지나 사잇길로 올라가다 보면 오늘 우리가 머물 스테이, 더 워터하우스의 대문이 나타난다.
대문을 열자 작은 중정의 작품들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5월의 햇살이 내려앉은 도자기의 색과 실루엣은 한옥의 기둥, 지붕과 어우러져 더없이 단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옥의 구조와 매력이 녹아든 화이트 & 우드톤의 공간이 펼쳐진다. 큰 창으로는 중정의 작품, 밖의 풍경이 실내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놓인 화분, 휴지 케이스, 식기와 그릇은 누군가 정성스럽게 이 한옥에 맞추어 고른 듯했다. 또, 덴마크 브랜드인 & Tradition의 가구와 조명이 한옥과 이렇게 멋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니.
더 워터하우스는 크게 공간이 ㄷ자로 이어져 있다. 중정을 향해 통창이 나 있어 한눈에 공간이 눈에 들어오지만, 다가가면 또 달리 보이는 공간의 모습에 어느새 스테이 안을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자꾸 걷게 된 데에는 인왕산과 종로 일대가 모두 내려다보이는 창과 스테이 곳곳에 놓인 작품 때문이기도 했다.
창밖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저곳이 어디인지, 어떤 추억이 있는지 함께 온 남편과 하나둘 얘기하는 재미도 있었고, 정성스럽게 큐레이션 된 동시대 작품을 머무르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욕실의 세면대에는 향이 좋은 핸드워시와 바디 로션이, 욕조에는 배스솔트와 함께 친환경 어매니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풍경뿐만 아니라 스테이 곳곳에 깃든 세심한 배려와 탐나는 물건들의 브랜드를 발견하며 한참 시간을 보냈다.
햇살도 좋고, 봄의 기운이 만연한 탓에, 우리는 좀 더 이 동네를 걸으며 느껴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군것질도 하고, 전통과 트렌드가 어우러진 골목길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목적지 없이 한참을 걸었다.
이 정취가 가득한 삼청동을 내일도 만날 수 있다는 기쁨 덕분인지, 봄 날씨 덕분인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계단 길 위에 있는 로마네꽁띠를 찾았다. 오늘은 우리 부부에게 아무것도 아닌 날이었지만, 이 귀엽고 소박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덕분에 어느 기념일의 하루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해 질 무렵의 깊은 햇살, 창밖으로 보이는 등나무 꽃, 와인 한 잔, 그리고 고심해 시킨 메뉴들이 우리 둘의 입맛에 딱 맞을 때의 그 기쁨과 행복. 오늘의 즐거움이 겹겹이 쌓여, 마치 기념일처럼 매년 이맘때쯤 떠오를 추억이 된 하루였다.
다시 스테이로 돌아오는 길, 한옥의 돌담 위에 앉아 있는 귀여운 고양이를 만났다. 해가 지고 난 후 돌아온 더 워터하우스는 이제 빛을 내고 있었다.
남편과 거실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일상을 함께하는 남편이지만 여행을 떠나 낯선, 그러나 영감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낮에는 인왕산과 삼청동이 다 담기던 창에 우리의 모습이 비친다. 낮 동안 오랜 시간 걸어 다닌 탓에, 포근한 침대에 눕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평소와 달리 아침에 눈을 뜨니 서까래가 보인다. 침대에서 내려와 둘러본 실내에는 차분하고 짙은 아침 햇살이 가득 드리우고 있었다. 중정에 있는 나무의 그림자가 멋스러워 이른 아침부터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바쁘게 감상했다.
조명을 켜지 않고 기분 좋은 아침 햇살을 만끽하고자 인왕산이 크게 보이는 거실에서 차를 우려 마셨다. 음악을 작게 틀어두고, 차가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걸 느끼며 연두색이 곳곳에 피어난 산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했다.
어느 세심한 컬렉터의 집을 하루 빌린 것 같았던 더 워터하우스에서의 하루.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일상에서 벗어나, 작은 발견에도 매번 활짝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올봄의 더 워터하우스와 삼청동 여행. 잘 쉬고, 잘 채웠다. 우리, 종종 가끔 좋아하는 동네로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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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전욱희
여물지 않은 것을 다루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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