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담강원 / 춘천시
2025. 6. 18. by. 최우림
글ㆍ사진 ㅣ 최우림
언니와 단둘이 여행은 오랜만이었다. 마침, 언니가 일을 쉬고 있어서 계획하게 된 춘천 여행.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근교 스테이를 찾다가 호연담을 발견했다.
초록이 가득한 밭을 지나면 하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호연담이 나타난다. 첫인상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스테이 내부는 한옥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어두운색의 나무, 대리석이 어우러져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이었다. 통창으로 빛이 환하게 드리우고, 창밖으로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이 기분 좋았다. 본채는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이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방에서 자쿠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간이 넓어서 도착하자마자 돌아다니며 룸투어를 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을 온전히 누리고 갈 수 있도록 스테이 내에 모든 기계 조작법이 한글과 영어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정갈하게 정리된 커트러리와 접시, 한쪽에 놓인 구급약 상자와 호연담의 이름이 새겨진 수건이 예쁘게 접혀있는 것을 보며, 손길이 닿는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내부 공간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유독 구름이 예쁘고, 맑은 날이어서 정원을 거닐었다. 부지가 넓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본채에서 정원을 지나 별채로 갈 수 있는데, 차를 마시는 공간이었다. 공간을 둘러보며 벽에 있는 장식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티가 담긴 틴케이스였다. 하나하나 열어보며 향을 맡고, 가장 마음에 드는 차를 골랐다.
둘 다 말없이 차를 우리며 부풀어 오르는 꽃잎을 바라봤다. 찻잎을 너무 많이 넣어 맛은 씁쓸했지만, 그마저도 좋았던 시간. 본채와 분리되어 있다 보니 여럿이 왔을 때 독립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마시고 다시 본채로 돌아와 자쿠지에 물을 받았다. 언니랑 일본 온천 마을로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탕을 좋아하는데 마침 큰 탕이 있어서 같이 들어가서 창밖을 바라보며 몸을 담갔다. 새가 지저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지난 여행 이야기를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노곤해져서 낮잠도 한숨 잤다.
나갈까 싶기도 했는데, 스테이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나가지 않고 음식을 주문했다. 춘천 시내 근처라 주문 가능한 음식의 폭이 넓어서 좋았다. 음식이 도착해 예쁘게 접시에 옮겨 담아 기분을 냈다. 접시에 음식을 예쁘게 담는 것만으로도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줬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슬슬 져서 정원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불멍을 했다. 따뜻한 열기가 마음마저 데우는지, 불 앞에서는 왠지 속 얘기를 술술 꺼내게 된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언니와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잠들 시간인데, 잠들기 아쉬워서 빔프로젝터를 내리고 영화를 봤다. 고등학교 때까지 언니랑 같은 방을 써서 자기 전에 영화 틀어놓고 보다가 잠들곤 했던 게 떠올랐다. 따로 떨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그런 시간이 없었는데 이렇게 여행을 와서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푹 자고 일어났다. 커튼을 거두니 환하게 기분 좋은 빛이 들어왔다. 체크아웃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언니가 일어나기 전까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웰컴푸드로 받았던 베이글을 굽고, 커피를 내려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소홀했던 하루들이 떠올랐다. 예쁜 그릇에 놓인 베이글을 먹으며 다시 소중한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체크아웃하고 춘천에 왔으니 숯불 닭갈비를 먹자!하고 <토담>에 들렸다. 날이 좋으니 야외 자리를 잡고 양념과 간장 닭갈비, 들기름 막국수를 주문했다.
닭갈비는 기름이 많아 빨리 타서 계속 뒤집어줘야 해 조금 귀찮지만, 귀찮음을 감수할 만큼 촉촉하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양념 닭갈비가 매콤했는데 들기름 막국수에 올려 먹으니, 매운맛은 잡아주고 감칠맛은 더해줘서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역시 여행은 식도락이지.
이번에 언니랑 춘천을 다녀오면서 언니랑 여행을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이야기하는 게 재밌는 건 언니와 나만이 공유한 추억이 많아서인데, 어린 시절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는 게 아쉬웠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고나면 지금도 어린 시절일 테니 부지런히 더 많은 좋은 추억들을 쌓아서 이야깃거리를 늘려놔야지. 이런 시간 더 많이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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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최우림
우릴수록 진해지는, 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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