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제주다움을

느끼게 하는

글ㆍ사진 ㅣ 김용성

세상엔 많은 여행에 방법이 존재한다. 쉼을 위한 여행, 일상을 탈피하기 위한 여행, 특별한 경험을 위한 여행 등 각자의 여행법을 통해 멀리 떠날 이유를 찾는다. 그런 과정 속에 도심지로 떠나기도, 광활한 자연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기도 하며 정해진 답이 명확하지 않은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난 일상과 출장을 반복하며 보내며 여행과 일에 모호한 경계에서 줄 서 있었다. 그것을 반복하며 줄타기하는 나를 되돌아보니 조금은 지친 듯하였다. 마침 설 연휴를 핑계로 꽤 긴 시간이 비어 여행으로 채우기로 했다. 촬영이 아닌 여행, 말이다. 

나에게 여행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무작정 좋아하는 곳을 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정착지가 바로 이곳, 눈먼고래다.

눈먼고래는 조천 바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치 그 천장이 유려한 곡선이 두 마리의 고래가 표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여 눈먼고래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숙소 근처에 방문하고 보니 저 멀리 작은 고래 등이 보여 단번에 숙소를 알아볼 수 있었다. 괜히 나를 반겨주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곳 눈먼고래가 탄생하기까지 가장 큰 컨셉은 제주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숙소 내부를 둘러보면 그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이 숙소를 느끼는 데 있어 매우 유용했고 재미있는 요소였다.

전체적으로 형태 자체도 최대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으며 아름다운 조천의 풍경을 위해 창을 더해 자연을 끌어들였다.

내부는 기존에 존재했던 벽들을 제거 함으로써 예전의 흔적들이 가득한 다양한 옛 구조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이 이 눈먼고래를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다. 숙소에서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이 구조가 대신 다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세월감이 느껴지며 무언가 마음에서 공간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특이한 포인트는 내부 공간 분리를 위한 낮은 벽들이 모두 현무암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제주를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빛과 바다를 담아내는 창 사이에 자리 잡아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점들이 공간에 대한 집중도를 올려주었고 옛 제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되어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후에 알았지만, 철거에서 나온 대문과 마룻바닥으로 가구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예스러움이 강조된 공간에서 가구들의 세월감이 상당히 자연스러웠었다. 이런저런 서사들이 숙소에 가득한 것이 나를 즐겁게 했다.

이것이 공간이 주는 강한 매력인 것을 다시금 느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존의 것을 어떤 식으로 다듬으며 존중해나갈 것인지는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오롯이 제주다움을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호스트의 마음과 옛것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디자인이 한데 모여 큰 시너지를 만들고 지금의 눈먼고래를 만들었다.

그렇게 공간을 즐기고 집중하는 사이 해는 뉘엿뉘엿 떨어져 갔다. 이곳 조천바다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데 이날의 노을은 너무나도 컸다. 강하게 펼치는 황금빛들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었고, 하늘은 그에 반항이라도 하는 듯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강렬한 풍경을 마주 보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맘은 더욱 차분해지고 있었다. 

늘 직업 때문에 번쩍인 도심지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어쩌면 색이 없는 회색빛 도시들 사이 차가운 온도 속에서 자연에 다양한 빛들과 따듯한 빛의 온도가 그리웠을지 모른다.

내 여행 첫 번째 머무름이었던 이곳, 눈먼고래에서 밤은 나에게 있어 충분히 여행이라고 칭할 수 있었다. 아니, 온전한 여행이었다. 제주를 향해서 제주를 온전히 느꼈고 도시에서 결핍됐던 빛과 온도들을 몸소 몸으로 받았다. 이보다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그렇게 이곳에서 든든한 고래들과 함께 내일의 여행을 위해 아름다운 밤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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