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틈새를

막아주는

글ㆍ사진 ㅣ 고서우

여행이라는 것은, 자고로 집에서 멀어질수록 그 기분이 나는 것이라 했다. 어릴 적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나는 종종 "멀리 가자!"라는 말을 했었고, 그 말을 할 때면 늘 들떠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들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또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를 비행기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곳, 제주공항 근처에 위치한 '코코로 오보에'는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가까운 위치가 마치 그냥 옆집 친구네 놀러 가는 기분을 줬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이 짐을 싸며 여행을 준비했었다. 소풍 전날, 마음이 방방 뜨던 초등학생 때와는 다른 중학생의 차분함 같았다. 여행 당일, 익숙한 큰 도로를 달리다가 여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골목길로 방향을 바꿔 '코코로오보에'를 마주했을 땐, 이유를 모르게 내 생각이 변하는 듯했다.

눈 부신 햇살이 내리 닿던 코코로 오보에의 외관. 그 예쁜 모습에 감탄했다. 어쩌면 집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으로 설렘을 찾으려 했지만, 멀지 않더라도 그 설렘을 마주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숙의 따분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기대했던 것이다.

경계가 모호한 대문을 힘껏 열었다. 열고 들어선 자리에서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새하얀 침구류가 들여다보이는 둥근 창과 아치형 게이트, 그리고 오래된 금속판의 제주도 지도. "밖에서 볼 때보다 더 예쁘네!" '코코로오보에'의 첫인상은 울타리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완성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창문 프레임 속 마을의 골목길 모습이나 그 뒤로 먼 이호테우해수욕장의 파란 물빛이 익숙해서 좋았다. 익숙함 안에서도 분명한 설렘이 있다는 것을 재차 알게 하는 것들이었다.

아침부터 커피를 못 마셔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친구가 커피를 내렸고, 나는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컵 안에 반 잔씩을 남겨놓고 공간 곳곳을 구경했다.

너른 자쿠지와 오랜만에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볼 수 있는 거실 평상, 햇살이 잘 들어오는 아담한 침실도 좋아서 미리 누워 봤다. 마당 뒤로 돌아나가 다시 만난 자쿠지는 밤을 기대하게 했다.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 덕분인지 낯선 공간이 쉽게 편안해질 때쯤 잊은 채였던 허기가 몰려왔다. 베이글 샌드위치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자쿠지 물을 틀었다. 햇살이 물에 닿으며 반짝거리는게, 마치 해수욕장 모래알 같았다.

따뜻한 물이 일렁이며 턱 끝을 만지작거릴 정도로 몸을 담그니, 그냥 여기서 잠이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젖혀졌다. 체온이 오르며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생각의 피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탕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소가 함께 있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팔을 휘젓기 좋을 정도의 큰 탕과 그 안에 채워진 적당한 온도의 물, 눈앞에 보이는 나무와 창밖 푸르스름한 저녁 하늘, 하얗고 동그란 자갈, 이곳이 제주임을 보여주는 작은 소품들. 

머릿속을 잠시 떠나줬으면 하는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오려 할 때마다 틈을 막아주던 쉼의 공간. '코코로오보에'의 자쿠지는 내게 그런 기억이 되어주었다.

가운을 묶고, 식탁에 앉아 기분 좋은 적막을 즐기다 침실로 들어가서 조도를 낮추고 음악의 볼륨은 조금 높였다. 잠이 들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뒤척거렸다. 움직임이 잦아들고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 손을 더듬어 음악을 껐다.

정말이지 마침 딱 잠들기 좋은 분위기였다. 아침이 되어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타원형의 빛 점을 찍어내던 시간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을 수 있었던 편안함. 이것은 스테이 '코코로오보에'의 공간 중 마지막 기억으로 남았고 어쩌면 침실은 스테이에서의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어야 할 부분이 때문에,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지 싶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