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ban Plot(이하, 어반플롯)은 도시에선 종종 잊혀진 질문을 건축으로 되살려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팽창은 삶을 하나의 유닛으로 축소시켰고, 그 안에서 사람과 자연, 시간과 삶은 서로 단절된 채 기능만을 좇아왔다. 하지만 어반플롯은 그 경계 너머를 바라본다.
어반플롯은 이러한 상황에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손에 들린 조그마한 돌멩이에는 그들의 커다란 소신이 담겨 있다. 우리는 작지만 큰 외침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Q. ‘Urban Plot(어반 플롯)’이라는 사명(社名)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Urban(어반)은 ‘도시’, Plot(플롯)은 ‘기획/음모’의 뜻을 지녔어요. 자본이 주도하는 이 경제 사회라는 구조가 제 시선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한 구조로 보였어요. 그래서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어요. 시장 구조에 대해 투쟁하고 싶다는 생각에 독립을 위한 음모자들 같은 의미로 ‘플롯’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어 ‘어반 플롯’이라는 사명이 만들어졌죠.
Q. 서호성 대표님을 부르는 수식어가 건축가이면서 커뮤니티 디자이너라고도 불리는데 커뮤니티 디자인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커뮤니티 디자인은 하나의 정의로 설명할 수 없어요. 이론적으론 지역 상생을 위한 공익적 디자인이지만 제 경험상으로 하나의 변수라도 나타나면 순식간에 의도가 뒤집어지는 불완전 결정체거든요. 아이가 태어나면 이 아이가 어떻게 성장해 갈지는 아무도 모르죠. 마찬가지로 커뮤니티 디자인 또한 하나의 유기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Q. 어반 플롯에서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A. 건축은 우리에게 구조를 세우는 일이 아니에요. 빛이 드는 방향을 읽고, 사람의 삶이 숨쉬는 리듬을 따라 머무를 장소를 짓는 것. 자연과 사람이 서로를 감싸안는 유기적 장소를 꿈꾸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설계는 늘 세 가지 질문에서 시작해요. ‘이 땅이 가진 기억은 무엇인가?’ ‘이곳에 머물 사람의 삶은 어떻게 흐를 것인가?’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자연은 어떻게 숨 쉴 것인가?'
Q. 삶의 서사와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데 중점을 두고 계시는군요.
A. 공간은 형태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풍경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서사적인 축적이 공간을 완성해 가는 거죠. 우리는 기능을 먼저 묻지 않아요. 대신,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머무를 수 있을지, 그 공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를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죠. 스테이는 그런 감정이 드러나는 특별한 장면이에요. 건축주의 태도와 취향이 고요하게 배어들고 그 정서가 머무는 이의 하루를 감싸안을 때, 그 공간은 하나의 삶이 또 다른 삶의 여정으로 이어지는 자리가 되거든요.
사용자의,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어반 플롯은 한두 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1년이 걸린다. 어떤 이는 고작 한두 개에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의 프로젝트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다.
Q. 외부에 싱크대를 마련하거나 암벽 위에 지붕만 올리는 등 보여주시는 공간들 속에 드러난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띕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A. 저는 예전에 학교 다닐 때부터 일부러 잡지를 보지 않았어요. 사진은 특정 구도에서 제일 좋은 장면만 보여주니까요. 계속 보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구조 괜찮네’하는 것들이 쌓이고 설계할 때 내가 낸 아이디어라도 실제로는 머릿속에 맴돌던 장면들이 결합된 결과물인 것이죠. 그럼 카피가 되어버려요. 미연에 그런 상황들을 방지하고자 잡지를 보지 않고 장소감과 사용자를 파악한 자료를 기반으로 설계해요.
Q. 그렇다면 사용자 파악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A. 질문지를 드려요.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말이 가득하죠. 이 질문지는 건축주뿐만 아니라 아이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드려요. 답안지를 작성하면서 모두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주어지죠. 정리된 답안지를 토대로 공간에 반영해요.
Q. 한 가족을 알아가는 데 굉장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요.
A. 맞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스타일이 그래요. 어릴 적 꿈을 돌아보고, ‘가족이 생기면 이렇게 살 거야’ 하던 것들도 생각이 나고. 질문지를 작성하는 것만해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저녁도 같이하고 바다도 놀러 가면서 계속 만나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꾸준히 접촉하면서 실사용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나가는 거죠.
Q. 어반 플롯이 작업한 스테이와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A. 예컨대 ‘자단연원’의 다실은, 목공예 작가로서 건축주의 새로운 시작을 담은 공간이에요. 처음 만든 작은 다기 세트,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늘어가는 가구들, 그 모든 것이 방문자와의 자연스러운 교감으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는 ‘삶의 태도가 공간의 프로그램이 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응원했어요.
‘청수풀’은 부부가 제주로 이주하여 만들게 된 스테이로, 자연을 향한 사랑이 깊이 깃든 건축이에요. 건축가와 건축주는 친구가 되었고, 함께 대지의 레벨을 손으로 더듬고, 두 그루 나무에 서로의 이름을 지어주며 설계 이상의 신뢰를 나누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갔어요.
신뢰는 건축과 사람, 대지 사이에 놓인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죠. 지금도 그 공간은 제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환대하는 풍경으로 존재하고 있어요. 사람과 장소가 서로에게 조용히 스며드는 순간을 목격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것은 우리에게도 깊은 기쁨이에요.
‘집’에 대한 정의
거주하는 공간을 돌아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집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형상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전부 다른 이가 그려낸 집임에도 어딘가 그 모습이 닮았다. 어쩌면 사회가 정의한 ‘집’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일지도.
Q. 어반 플롯의 공간들을 살펴보면 실내외가 통하는 문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이런 요소를 동일하게 적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여기가 제주도니까 자연환경 속에 건물이 있을 확률이 되게 높아요. 건축적으로도 풀어낼 방법이 다양하죠. 액자처럼 자연을 바라볼 것인지, 자연 자체를 바라볼 것인지. 저희는 기본적으로 대형 창들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벽으로 막으면 공간 자체는 거기서 멈춰요. 하지만 유리로 바뀌는 순간 확장 공간같이 실내외 경계가 애매모호해져요.
Q. 경계가 허물어지면 실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요.
A. 맞아요.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고 밖에서는 밖에서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경계가 허물어지면 실내에서 가능한 것들이 실외로 나갈 수도 있고 실외에서 가능한 것들이 실내로 들어올 수도 있죠. 일례로 저희가 작업한 공간들은 싱크대와 인덕션 모두 외부에 있어요.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사람과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소통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집에서 고기를 구우려면 기름이 튀거나 냄새 때문에 어려움이 많으니까요. 바깥에 시설을 배치해 편하게 소통하며 자연 속에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를 더하고 싶었습니다.
Q. 재미있네요. 소개해 주실 또다른 아이디어도 있나요?
A. 빈티지제주는 안쪽 바닥이 흙이어서 원래 식재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했어요. 나무가 꼭 마당에서만 자라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부와 외부’ 라는 정형화된 공간의 개념을 허물어 버리면 공간을 보는, 체험하는 방식이 달라지죠.
Q. 말씀주신 공간들은 가족 단위의 사용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A. 모든 시작은 가족이에요. 가정 환경이 자라는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잖아요. 책도 읽고 동식물들을 관찰하고 뛰어놀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아이들은 자라난 후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환경을 지킬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Q. 대표님은 가족 분들과 어떤 공간을 나누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지금은 제주에 내려와 있지만 서울에 있을 땐 방문을 모두 떼어버렸어요. ‘문’이라는 개념은 과거엔 방과 방, 자연과 실내의 확장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지만 현대의 우리에겐 주로 단절의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벽식구조의 기성화된 아파트가 세뇌시킨 것이니까요.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죠. . 문의 경계가 약해지면 가족 구성원 간의 교류가 늘어나요. 공용 공간 중심으로 우리의 환경이 세팅되면, 가족 구성원들의 안정감과 소속감으로 이어지고 가정의 기능이 고립되지 않게 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질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 기대할 수 있죠.
쉽지 않을지라도
어반 플롯의 공간들은 대부분 기존의 공간을 재해석한 결과물이 인상적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 유에서 유로 보완하는 편이 여러 가지 구조물이 존재해 더욱 세밀한 기술을 요한다. 이토록 까다로운 작업을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 놓지 못하는 걸까.
Q. 어반 플롯은 공간을 새로 짓는 것 못지않게, 기존 장소가 지닌 시간성과 정서를 존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인데요. 그런 관점이 잘 드러난 프로젝트를 소개해 주실래요?
A. ‘고산별곡’은 우리가 만난 오래된 풍경 중 하나였어요. 100년 된 제주 돌집. 그 안에는 바람을 막아내던 벽이 있었고, 가족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죠. 우리는 그 집을 다시 짓기보다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고산별곡이 지나온 100년의 가치를 인정하고 또다시 100년을 버틸 수 있게끔 가치를 부여했어요. 돌집은 단지 구조가 아니라, 제주의 환경에 순응해 살아온 생활의 지혜이자 그 시대 사람들의 태도와 정서가 녹아 있는 물리적 기억이에요. 우리에겐 그런 공간이 마치 살아 있는 박물관처럼 느껴져요. 그 안에 담긴 서사는, 새로 지은 건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지키고, 지금의 삶과 잇는 다리로 복원하고자 했어요. ‘시간이 머물다 가는 집.’ 그것이 우리가 고산별곡에서 지으려 한 건축이에요.
Q. 전통 가옥을 바라보시는 대표님의 생각이 굉장히 의미있네요.
A. 많은 분이 돌집은 불편하고 벌레나 냄새가 나기 때문에 부숴 달라는 요청을 하세요. 그러면 저희는 신축보다 더 멋진 공간으로 만들어 드릴테니 보존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요. 우리에게 옛집은 개인과 시대의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진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보여져요. 특히 제주집에는 돌집이라는 개성 넘치는 물리적인 실체 뿐 아니라 제주라는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제주사람들만의 독특한 생활방식과 정취가 그대로 녹아 있어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주는 풍요로운 다양성에 감사하고, 더 탐구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오래된 집의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할 때 주된 어려움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A. 어려운 점은 엄청 많죠. 리모델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최초의 계획과 실제의 구축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에요. 현장을 해체 하다 보면 돌벽하고 서까래, 나무 기둥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방수나 단열 그리고 나무가 가진 곰팡이, 균류 등에 대해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죠. 기반이 약해 장비가 투입될 수는 없으니, 삽으로 일일이 주춧돌 하단부까지 삽으로 바닥을 다 드러내요. 거의 발굴 현장 같아요. 모두 꺼낸 다음 방수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니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요.
Q. 어반 플롯이 지향하는 건축은 단지 공간을 짓는 일을 넘어 사람과 사회, 자연이 더 나은 관계를 맺도록 돕는 하나의 실천이자 태도처럼 느껴져요. 이러한 철학과 태도가 담긴 공간을 이용자가 어떻게 느끼길 바라나요?
A. 우리가 건축을 통해 던지는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예요. 그 돌멩이는 파문을 만들죠. 조용히, 그러나 깊게. 건축은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빛이 스미는 방향을 바라보고, 나무 그림자가 움직이는 속도를 느끼는 순간, 사람은 자연과 연결된 자신을 다시 만나게 돼요. 우리는 그 울림이 삶의 속도를 바꾸길 바라요. 함께하는 사람에게 더 따뜻해지고, 나와 세상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길 바라는 거죠. 그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어쩌면 건축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어요.
Epilogue
이야기를 끝마치고, 새로운 건물들이 무분별하게 올라가는 지금에 대해 마침내 해답을 찾은 느낌이다. 새로운 건축이 옳은 건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반 플롯같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처럼 빈틈없이 서 있는 자본주의에게 언젠가 작은 돌멩이가 커다란 흠집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가 온전히 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이 세상에 많아지길. 허물어진 외관이 아닌 지나온 시간을 통해 공간 속에 새겨진 스토리가 주목받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어느새 내 손에도 작은 돌멩이가 들려 있다.